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아파트가 되었다. 문학이 삶을 모방하는 양식이니만큼, 당대의 문학에서는 가장 당대적인 것이 발견되고는 한다. 그러니 문학이 아파트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지난 2000년대의 문학이 그랬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소설의 중심에 서 있던 작가 백민석에 대한 대표적 평가는 그의 작품이 ‘아파트먼트 키드’의 자화상을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문학에 등장한 근대적 주체의 시발점은 향토적 고향과 산업화된 도시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로 표상되어왔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태어나 정다운 세계에 살던 이가 고향을 떠나 각박한 도시에서 생활하며 현대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되는 것이 한국 문학의 전통적인 근대적 주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인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한국 문학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성장과 함께 성장한 이들이 갖는 고유한 감수성이 문학적 형태로 최초로 표현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90년대다. 한때는 존재했던 ‘고향’을 가져본 적조차 없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 나아가 완벽하게 계획된, 반복적 구조물에서 풍겨 나오는 장대한 폐허의 감각 따위가 바로 아파트가 은유하는 세계상(世界像)이다. 

그러므로 문학 속에서 표상되는 아파트는 대체로 무미건조하며, 아득하리만치 굳건한 일상을 드러낸다. 이준규의 시가 그러한 아파트를 그린다. 

“복도는 복도다, 복도는 걸어갈 수 있고, 복도는 서서 끝을 볼 수 있다, 복도는 너를 사랑한다, 복도는 말이 없고, 겨울밤의 복도는 조금 미쳐 있다, (중략) 복도는 복도다, 복도에는 어떤 것들이 흐른다, 나는 복도에서 무언가 망설였다, 창을 열면서, 너를 사랑했다, 창을 닫으면서, 너를 사랑했다, 복도는 망설이는 곳이다, 우주처럼, 복도는 우선 복도다, 복도는 하나의 지평을 가지며, 복도는 두 개의 지평을 가지며, 복도는 세 개의 지평을 가진다.” - 이준규, ‘복도’ 중

복도에 늘어선 여러 문과 거기에서 통하는 수많은 가정, 문마다 붙어 있는 숫자 따위가 자아내는 묘한 살풍경함.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거기 서서 좌우를 살피면 한쪽에는 텅 빈 허공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그러한 광경이 자아내는 허무함과 허탈함, 그리고 고독감. 시인에게 아파트는 시보다 더 시적인 공간이자 영감이 된다. 

해가 지면 “이정현!” 아파트 마당에서 아이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도 “이정현!” 목소리가 들리고 오늘도 “이정현!” 목소리가 들린다. 난 정현이가 누군지 모른다. 여름 저녁 들리던 소리가 가을 저녁에도 들리고 매일 저녁 해가 지면 “이정현!” “이정현!” “이정현!” 세 번 부르고 조용해진다. - 이승훈, ‘해가 지면’

이승훈의 시엔 아파트 단지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종종 먼 데서 들려오는 모르는 이의 목소리와 모르는 이의 이름을 접한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적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나 가깝고, 누구나 아는 사람이던 그땐 근처에 사는 이의 목소리를 모르는 일이란 없었으며, 모르는 이름을 듣는 일도 거의 없었으니까. ‘해가 지면’에 나타나는 저 모르는 목소리와 모르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불가지의 ‘존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고독은 모두 아파트로 은유되는 현대적 사회의 징후다. 작품의 배경으로 아파트를 설정해놓는 것만으로도 그 작품은 아파트라는 공간이 거느리고 있는 사회적 맥락 아래 놓인다.  그런데 사실 2010년대에 들어 문학작품 속에서 아파트는 더 이상 주된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작품에서 아파트가 차지한 비중을 생각하면 주변부로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 까닭은 무엇일까. 더 이상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일까? 물론 아니다. 여전히 아파트를 둘러싼 해묵은 문제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처치 곤란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이며, 여전히 모두가 아파트를 강하게 욕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해묵음이 문제일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게 아파트는 더 이상 매력적인 문학적 사유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아파트는 이제 빈곤한 청년층에게 더 나은 미래의 불가능을 천명하는 거대한 모뉘망이 되었으며, 완전히 고착화된 계급적 문제를 적시하는 거대한 증거물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예술가들은 아파트 앞에서 사유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말을 보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우울한 예감을 느끼며.

About 황인찬은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낸 후 그는 문단의 아이돌이 됐다. 황인찬은 시가 사치가 된 우울한 시대에 희망 없는 청춘들을 위로한다.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아파트 연구> by 발레리 줄레조
1993년, 파리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보고 압도당한다. 그리고 곧 한국의 아파트에 관해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왜 하필 한국의 아파트냐”는 동료들의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 꿋꿋이, 그리고 치밀하게 연구한 그녀가 탄생시킨 두 권의 책. 2004년 출간한 <한국의 아파트 연구>를 수정하고 발전시켜 쓴 책이 <아파트 공화국>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대단지 아파트를 비교 분석하고, 프랑스에서 실패한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에서 매력적인 존재가 됐는지를 살핀다.  후마니타스

By Hwang Inc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