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셰프가 술 마시는 법

내가 1급 발암 물질이라는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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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탈리아 모데나(Modena) 출신 셰프가 갈라 디너를 하는데 이렇게 구라를 풀었다. 

“내 피에는 발사믹 식초와 파르메산 치즈가 흐른다고!”

모데나 특산 라비올리와 이웃의 파르마 햄, 소시지로 만든 팔뚝을 흔들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내 피에는 술이 흐르니까. 최근 페이스북에 몇 장의 사진을 연달아 올렸다. ‘주방장 야식’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 잔의 맥주였다. 그러자 댓글이 달렸다. 음주에 대한 염려였다. 주방장답게(?) 멋진 음식을 올릴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아쉬움의 글도 많았다. 사실, 그렇다. 나는 야식으로 뭔가를 먹겠지만 자랑할 만한 게 없다. 라면이나 짜왕, 아니면 망해가는 빵 자투리와 유효기간이 막 지나서 못 팔게 된 모차렐라를 어떻게 올리겠는가. 여담인데, 그 모차렐라를 쭈그리고 앉아 먹는 사진을 보고 제일 먼저 달린 댓글은 이랬다. 

“쯧쯧, 셰프도 호빵 드시는군요.” 종종 선배들이 술 마시던 시절 이야기도 듣는다. 모이는 시간 밤 10시. 아무리 빨라도 그 시간이다. 마감 시간이 되어서 계산 먼저 해달라는, 그 뻔한(이제 좀 나가주시라는) 홀 직원의 멘트도 알아채지 못하는 손님들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이면 일단 소주는 각 1병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원샷을 하든, 컵에 따라 반씩 나눠 마시든 자유다. 그렇게 딱 한 병으로 거나하게 취한다. 왜? 대중교통 막차 시간 때문이다. 특히 경인선은 일찍 끊긴다. 그쪽에 사는 요리사가 많다. 그러니,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 가벼운 요리사 형편에 택시라도 타게 된다면 무리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자리는, 나라는 인간에 대한 정밀한 자각을 돕는다.
나이 오십이 넘고, 돈은 전혀 못 벌었으면서 술은 좋아하고,철저하게 외로운 인간이며,
유달리 센티멘털한 요리사라는. 그것이 술의 장점이고, 
내가 1급 발암 물질이라는 술을 끊지 못하는 도저한 이유다.


 

여전히 비슷한 건, 밤에 갈 만한 술집이 없다는 것이다. 고깃집은 10시면 마감이고, 이자카야는 대개 비싸다(냉동 제품이나 전자레인지로 돌려대는 집들도 왜 그리 비싸냐). 먹을 만한 전이나 김치찌개, 아니면 삼겹살 같은 평범하고도 무난한 메뉴에 술 한잔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종종 잡지 에디터들이 물어오는 아이템에 대답을 못 한다. 

“아니 셰프들의 단골집이라고? 거 형편을 좀 알고 물어보슈. 야밤에 갈 만한 술집이 어디 있겠소.”

꾸역꾸역 가는 집들이 없지는 않다. 동네(서교동) 기준으로는 김치찌개집이 한 군데 있다. 밤새 한다. 예쁜 처녀 주방장이 있는 집도 하나 있는데, 맛이야 뭐 끔찍하다. 그래도 싸고 밤새 하니 손님이 꽤 있다. 밤 12시나 1시에, 2만원짜리 김치찌개에(고기 추가해서)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집이면 얼마나 감사한가. 옆 탁자에는 찌개 한 냄비에 소주만 연달아 추가하는 가난한 로커들이 주로 앉아 있어서 분위기도 그만이다(청담동처럼 연예인이 아닌 것도 천만다행이다. 그런 집들의 가격을 알지 않는가). 또 하나는 편의점이다. 탁자 앞에 앉아 캔 4개에 1만원 하는 ‘기획 맥주’를 들고, 그렇게 취객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면서 함께 취해간다. 그런 자리는, 나라는 인간에 대한 정밀한 자각을 돕는다. 나이 오십이 넘고, 돈은 전혀 못 벌었으면서 술은 좋아하고, 철저하게 외로운 인간이며, 유달리 센티멘털한 요리사라는. 그것이 술의 장점이고, 내가 1급 발암 물질이라는 술을 끊지 못하는 도저한 이유다. 

아예 가게에서 판을 벌이기도 한다(사장님 죄송합니다). 온갖 ‘기레빠시들’, 그러니까 손질하다 남은 돼지 안심과 등심, 가지 껍질, 거래처에서 반찬에 쓰라고 던져준 닭 날개와 홍합이나 오징어 같은 것들이 금세 요리가 되어서 나온다. 그렇다고 근사한 요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돼지고기는 막 구워서 먹어야 제맛인데, 주방에서 구워 나오다 보니 먹다 보면 딱딱해진다. 그래서 진지하게 홈쇼핑에서 누가 선전하는 ‘전혀 연기 안 나고 들러붙지 않는 당사 최초 공개 5만9900원 금세 매진 원적외선 구이판’을 살까 했었다. 홀에서 구워 먹자면 그런 불판이 하나 필요할 테니까. 

간혹 멋진 술이 있을 때도 있다. 술이 먼저냐 안주가 먼저냐는, 달걀과 닭의 태생적 질문 같은 것들이 유효하지만, 그래도 좋은 술은 좋은 거다. 그런 술은 도매상이나 수입처에서 시음용으로 뿌린 것일 수도 있고, 아는 손님이 먹다 남긴 것일 수도 있다(물론 발음도 어려운 스코틀랜드산 소독약 냄새 나는 위스키도, 라 타슈 같은 고급 와인은 절대 아니다. 그냥 그저 그런 술들이다). 술이 있으니 한잔한다. 손님이 다 사라져버린, 쓸쓸한 홀에서 말이다. 손님들이 친교하고,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성토하며 마시던 서너 시간의 긴 시간을 압축해서 단 30분 만에 마셔 없앤다. 알코올이 식도를 자극하고, 혈관을 돌아서, 종내 혀의 말단 신경을 구부러뜨리는 순간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신은 그토록 좋은 술을 왜 몸에 나쁘게 설계한 것일까, 하는 원초적 물음도 함께. 그것은 신의 한 수 내지는 농간이라고 수긍하면서. 

 

about 박찬일은 서울의 알아주는 문장가이자 요리사다. 먹고, 마시고,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보통날의 파스타>, <백년 식당>, <뜨거운 한입> 등 다수의 책을 썼다. 글만큼 맛있는 그의 음식은 ‘로칸다 몽로’에서 맛볼 수 있다. 

 

CREDIT

EDITOR : 박찬일PHOTO : 일러스트 이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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