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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신호등을 바꿉시다

보행자용 신호등처럼 자동차 도로용 신호등도 정지 예고 시간을 알려주면 어떨까?

2018.03.08

 

앉은키가 조금씩 자라나더니 이든이는 이제 뒷좌석에서도 아빠 어깨 위로 신호등이 보이나 보다. 얼마 전, 신호 대기 중 공기압을 살피느라 계기판을 들여다보던 내게 “초록불이 켜졌어요, 아빠!” 하며 민폐남이 될 뻔한 상황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노란불이 바뀌는 찰나 교차로에 진입하기라도 하면 바로 꾸중을 듣는다. 


어느 나라건 신호등은 직관적이고 한눈에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시인성이 좋은 적색, 황색, 녹색의 세 가지로 단순하게 구성한다. 이중 점등 시간이 가장 짧은 황색등은 정지 예고를 뜻한다. 경기 출전을 위해 방문하는 독일에서는 정지 예고를 포함해 출발 예고 신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적색등이 녹색등으로 바뀌기 전에도 황색등이 들어온다. 이 신호에 따라 미리 기어를 넣고 출발 준비를 하면 타이밍이 딱 맞는다. 황색등은 통상 3초 내외로 켜진다. 하지만 보행자용 신호등은 황색등이 없어지는 대신 녹색등이 점멸하는 것으로 그 기능을 대신한다.

보행자 신호등은 아이 관점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교통 신호다(물론 이든이가 세 살부터 운전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 보행자 신호등은 녹색등이 켜지고 곧이어 깜빡이기 시작한다. 보행 신호 시간보다 정지 예고 시간이 더 길다. 사람들에게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가라는 취지인지 모르겠으나 원래의 신호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건 분명하다. 길을 건널 때마다 아이는 다급해진다. 녹색등이 깜박거리면 곧 적색등이 들어온다는 뜻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분명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보행자 신호등에 잔여 신호 시간을 표시하는 추가 장치가 달린 곳도 늘고 있다. 덕분에 보다 안전하게 길을 건너기 수월해졌다. 도로 위로 진입할 것인지부터 어느 속도로 걸어가야 적색등이 켜지기 전에 건널목을 다 지나갈 수 있을지까지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잔여 시간 표시를 왜 보행자만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우리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우리 집 앞에는 제한속도 시속 70킬로미터인 6차선 도로가 있고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 교차로가 있다. 시속 70킬로미터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당 19.4미터다. 신호등을 약 50미터 앞둔 위치에 오면 신호등이 바뀌지 않을까 극도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정지 예고 점등 시간은 평균 3초. 이 지점에서 황색등이 들어오면 멈춰야 한다. 신호 변경에 대한 인지 시간과 제동 반응 시간을 감안하면 정지 상태까지 가기 위해 약 초속 7.8미터 이상의 감속력이 필요하다. 이는 중력가속도 0.8G 수준으로 꽤 격정적인 급제동 상황을 뜻한다. 차 안에 한바탕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그저 노란불로 바뀌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그냥 지나가면 이든이의 잔소리가 날아오고, 멈추려고 하면 이든이의 장난감이 앞좌석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럼 정지 예고 시간을 늘려야 할까? 아니다. 정지 예고 시간이 늘어나면 결국 보행자 신호등 같은 문제가 일어난다.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신호가 돼버린다. 여기에 잔여 시간 표시 장치가 달린다면 얼마나 평온하고 안전할까? 연말에 다녀온 세부에서 이런 신호등을 보았다. 거의 모든 운전자 신호등에 진행 신호의 유지 잔여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건 아니다. 극소수 지자체에서 이런 신호등을 시범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 입장이라면 정지, 정지 예고, 좌회전, 진행인 현재 4구 신호등 구성에 또 하나를 늘려 5구 형태로 만드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잔여 시간을 표현하는 한 칸이 더해지면 정지 예고 신호는 삭제해도 된다. 5초 미만으로 남았을 때 숫자가 황색으로 변하게 하면 기능적으로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 


여러 색상을 내는 LED 광원은 요즘 어려운 기술도 아니다. 신호등의 크기는 지금과 동일하고 운전자들은 신호등에 접근하는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기 편해진다. 적색등의 잔여 시간도 표시하면 좋겠다. 예측 출발 금지란 문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테니까. 언젠가 도로 위에 무인 자동차가 가득한 세상이 오면 교차로에 주렁주렁 달린 신호등도 사라지리라 예상한다. 신호주기는 각 차량들과 직접 통신으로 공유되고 신호등을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들을 위한 보행자 신호만 남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 손주 세대는 신호등을 적색과 녹색으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모터트렌드, 자동차, 자동차칼럼

CREDIT

EDITOR / 강병휘 / PHOTO / 최신엽(일러스트레이션)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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