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새로 출시한 폭스바겐 파사트 GT는 사실 여러모로 불편한 위치에 있다. 국내에서 경쟁해야 하는 모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슷한 크기와 고만고만한 가격대의 자동차가 국산, 수입 할 거 없이 차고 넘친다. 

현대 그랜저를 비롯해 토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와 맥시마, 혼다 어코드, 푸조 508, 볼보 S60 등과 비슷한 크기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구동 방식은 다르지만 BMW 3시리즈, 벤츠 C 클래스 등의 독일 프리미엄과도 가격이 겹친다. 렉서스 ES도 가시거리에 놓일 수 있다. 

시장에 경쟁 모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판매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막 판매를 재개한 폭스바겐으로서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만약 폭스바겐이 처음으로 출시하는 차가 골프나 티구안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두 차는 시장에서 독보적으로 많이 팔리면서 꾸준하게 각 세그먼트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던 차다.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그다지 비관적일 것도 없다. 경쟁 모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그랜저 구매를 고려했던 소비자 중에는 이제 파사트 GT 브로슈어를 뒤적거리는 소비자가 생길 것이다. BMW 3시리즈를 염두에 뒀으나 차체 크기 때문에 고민했던 소비자들 또한 뒷자리가 넓은 파사트 GT를 곁눈질할지 모른다.  

새 차를 구입하기 전 경쟁 모델들과 비교하는 건 소비자들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파사트는 경쟁 모델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파사트 GT와 경쟁의 여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차를 모아 파사트와 직간접적으로 비교했다. 가격은 물론 차체 크기, 동력 성능, 프리미엄성까지 다각적으로 접근해 파사트 GT의 국내 위치를 가늠했다.   

Nissan Altima 2016년 출시한 알티마는 2990만원부터 시작하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웠다. 지난해 알티마 전체 판매량 4566대 중 4549대가 2990만원부터 시작하는 2.5리터 엔진이다. 3.5리터 엔진(3880만원)은 단 17대밖에 판매되지 않았다. 가격 대비 가치를 내세워 박리다매를 노렸지만 일본 3사 가운데 판매량이 가장 낮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차체도 일본 경쟁 모델들에 비해 약간 작다. 

Honda Accord 혼다 어코드의 최고 가격(4320만원)은 파사트 GT의 최저 가격과 같다. 차체 크기도 어코드가 약간 더 크다. 하지만 휠베이스는 파사트 GT가 11밀리미터 더 길다. 파사트 GT의 패키징이 더 밀도 있다는 말이다.  파사트 GT는 이전 7세대보다 길이가 4밀리미터 짧아졌다. 앞뒤 오버행을 줄였기 때문이다. 긴 휠베이스는 직진 안정성이 높고 뒷자리 공간이 넓다. 오버행이 짧다는 것은 주행 중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였다는 뜻이다.

Toyota Camry 캠리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친근성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 중 하나다. 파사트 GT와 비교하면 가격은 낮고 차체는 크다. 캠리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디자인인 반면 파사트 GT는 누구나 수긍하는 스타일이다. 더불어 파사트 GT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보행자 모니터링 시스템, 트래픽 잼 어시스트(상급 모델) 등 캠리엔 없는 첨단 편의 및 안전장비 시스템을 갖췄다. 

Peugeot 508 2010년 파리 모터쇼에 출시돼 2014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올해로 8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으니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떨어질 때가 된 것이다. 국내에선 파사트보다 약간 낮은 가격에 차체는 더 크다. 하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레인 어시스트 등의 최신 운전 보조 장비가 없는 게 아쉽다. 에어백도 파사트 GT(9개)보다 적은 6개다. 물론 훌륭한 연비와 감각적인 핸들링은 여전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

BMW 3 Series 3시리즈의 날카로운 핸들링과 뚜렷한 주행감각은 누구나 엄지를 치켜세운다. F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승차감도 좋아졌다. 하지만 뒷자리 승차감과 편의성에서 3시리즈가 파사트 GT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포츠 세단과 패밀리 세단의 가장 큰 차이점이 두 차의 성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간 활용성과 편의성에서 더 크고 더 많은 편의장비를 갖춘 파사트 GT가 우세하다. 3시리즈는 뒷바퀴굴림 특유의 날카로운 핸들링 감각에선 우위에 있을 것이다. 돈을 더 많이 주고 주행성능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금전적 부담을 줄이면서 편의성을 택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몫이다. 

Hyundai Grandeur 폭스바겐으로서는 한 달에 1만대 이상씩 팔리는 그랜저 고객을 흡수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그랜저 고객의 10퍼센트만 넘어와도 한 달에 1000대가 팔리는 셈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큰 차=고급차’로 여기는 국내 정서에서 그랜저의 벽은 높다. 그랜저의 또 다른 장점은 엔진과 옵션 베리에이션을 잘게 쪼개 시작 가격(3105만원)이 비교적 낮아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높다. 크기와 가격에서 파사트 GT가 그랜저보다 열세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파사트 GT는 ‘독일 프리미엄’이 있고 조종성에서 강점을 지녔다. 뒷자리도 이전보다 40밀리미터 늘어나 역대 파사트 중 가장 넓다. 트렁크 용량(586리터)은 오히려 그랜저(515리터)보다 월등히 넓다. 직접 운전을 많이 하면서 짐도 많이 싣는 소비자라면 파사트 GT를 눈여겨볼 만할 것이다. 

Nissan Maxima  알티마(273마력)보다 출력(303마력)이 높은 3.5리터 엔진을 얹었다. 스포츠 세단이라는 이미지를 어필하려 하지만 앞바퀴굴림 구동계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해 판매량은 고작 764대. 인지도도 낮아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파사트와 비슷한 가격대에서 출력이 가장 높다. 이 가격에 300마력이 넘는 차를 탄다는 만족감을 원한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Ford Mondeo 몬데오는 넓은 휠베이스로 공간 활용성을 내세운다. 가격도 파사트 GT보다 많이 낮다. 리터당 15.6킬로미터나 되는 연비도 장점이지만 지난해 591대밖에 판매되지 않았다. 일본 중형 세단에 밀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고루한 실내 디자인과 작은 모니터, 불편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단점으로 꼽힌다. 몬데오 예비 소비자들이 파사트 GT의 8인치 모니터와 디지털 계기반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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