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와 반란 사이 Elmgreen & Dragset

동시대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듀오를 떠올린다면 그 톱에는 반드시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북유럽 출신의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그리고 잉아르 드라그셋(Ingar Dragset). ‘엘름그린 앤드 드라그셋’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텍사스 사막에 덩그러니놓인 프라다 숍의 모습은 본 기억이 날 것이다. 실제로 컬렉션을 전시해놓았지만 출입구가 없어 아무도 드나들 수 없던 그 공간은 관객에게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안겼다. 2016년 뉴욕 록펠러 센터에 등장해 화제가 된 설치물도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수영장이 똑바로 서 있는 듯한 기묘한 설치물 ‘반 고흐 귀(Van Gogh’s Ear)’ 말이다. 수영장이 들어설 틈 없는 대도시 한복판에 일상적인 수영장을 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고립,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갤러리 페로탕은 이들을 소개하는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몇 년간의 무력한 구조가 미카엘 엘름그린과 잉아르 드라그셋을 국제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로 만들었다.” 이들은 예술, 건축, 디자인의 범주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무력한 구조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과 다양한 가능성을 감지하고 재정의하는 이들의 예술적 접근 방식은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은 구조 자체가 아니라 주어진 구조 안에서 특정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푸코의 이론에 근거한다. 공모와 반란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드는 엘름그린 앤드 드라그셋의 작품을 보고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제대로 감응한 것이다.

1 Eternity, 2014, Photo by Gregory Powell, 국제갤러리 제공  2 Photo by Elmar Vestner, 국제갤러리 제공  3 Van Gogh’s Ear, 2016, Photo by Jason Wyche, Courtesy Public  Art Fund, NY, 국제갤러리 제공

소재로 여는 일상 예술 Studio Swine

일본 건축가 아즈사 무라카미(Azusa Murakami)와 영국 출신 예술가 알렉산더 그로브스(Alexander Groves)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 역시 동시대 가장 핫한 아티스트 듀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uper Wide Interdisciplinary New Explorers’의 약자로 지어진 스튜디오 스와인은 예술, 디자인, 영화를 아우르며 그들 각자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종합한다. 특히 2017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참가해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COS와의 작업 ‘새봄(New Spring)’은 이들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다중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관람객 참여 설치 작품인 ‘새봄’은 안개를 채운 꽃망울을 뿜어내는 조각품을 중심으로, 꽃망울들은 질감이 있는 패브릭에 닿으면 터지지 않지만 피부에 닿으면 한 줌의 수증기로 돌아간다. 이들의 작품엔 늘 스토리가 있고, 재미가 있으며, 또한 미래를 위한 쓰임이 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은 곧 소재에서 온다고 믿는 그들은 버려진 깡통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에서도 작품의 가능성을 본다. 심도 있는 소재 연구를 위해 남아메리카부터 남태평양, 중국 산둥성까지 탐사한다. 폐기물을 명품으로 바꾸는 놀라운 재주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1 Can City Collection  2 Photo by Bruno Staub  3 ‘COS×Studio Swine, New Spring’  4 Can City Collection

과거 혹은 미래 Kahn And Selesnick

사진과 설치 작업을 하는 칸 앤드 셀레스닉의 작업 사진을 보면 도대체 시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아주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미래적이기도 하다.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1964년 각각 뉴욕과 런던에서 태어난 니컬러스 칸(Nicholas Kahn)과 리처드 셀레스닉(Richard Selesnick).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980년 초 워싱턴 대학교에서다. 사진 전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이들은 졸업 후 2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걷다가 페인팅과 설치를 결합한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듀오로 데뷔했다. 본래 고고학자, 건축가,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들은 다양한 분야를 향한 지나친 호기심으로 고민하던 끝에 결국 예술을 선택했다. 이들이 세상으로 연결된 방식인 사진, 그림, 조각은 결국 예술로 흡수될 수 있었으니까. 과거, 혹은 미래로 설정된 가상의 역사를 다루는 사진과 설치 미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세계로의 관심이 엿보인다. ‘칸 앤드 셀레스닉(Kahn & Selesnick)’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브루클린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곳곳에서 150건이 넘는 전시를 진행했고, 책 3권을 출판했다.

1 칸델라 북에서 출판된 칸 앤드 셀레스닉의 가장 최근 책 <100 views of the Drowning World>.  2 (왼쪽 위부터) Bat Procession, Augury Engine,  Death Of Actaeon, Ragnarok, Bridge, Dust Bowl

정당방위 퍼포먼스 G+K 

2003년부터 듀오로 활동해온 브레넌 제라드(Brennan Gerard)와 라이언 켈리(Ryan Kelly)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설치 및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듀오다. 그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핵심 주제는 동성애 의식. 통일되고 일관된 정체성을 강요받기를 거부하고, 성이나 성적 성향은 항상 불안하고 우발적이며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성적 취향이나 취향을 결정하는 뿌리 깊은 기억력 형성에 관한 이야기를 안무와 비디오, 조각을 이용한 작품으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시연해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늘 공간성과 의미가 연결되곤 하는데, 최근 코네티컷의 한 유리 하우스에서 작업한 ‘Modern Living’ 은 그것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1949년에 필립 존슨이 완성한 상징적인 근대 건축물인 글라스 하우스에서,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사는 삶과 아티스트가 규정하는 ‘저절로 사는 것’의 공존에 대해 고찰했다. 결국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려는 아티스트의 치열한 반항이 퍼포먼스로 표현된 것. 대안 가족에 대한 탐구가 그들이 창조하는 퍼포먼스에 깊이 녹아 있다.

1 Modern Living: Schindler/Glass(2017)  2 Two Brothers, 2015  3 Kiss Solo, 2013

조용한 파격 Langlands & Bell

벤 랭글랜드(Ben Langlands)와 니키 벨(Nikki Bell)은 1978년 런던의 아트 스쿨에서 만난 이후 40년간 공동 작업을 해왔다. 그들의 예술은 영화부터 비디오, 인터랙티브 디지털 미디어, 조각, 설치, 본격적인 건축 등을 넘나든다. 카펫부터 거대한 규모의 다리 공사까지 규모나 형태를 가리지 않으며, 단색 조각부터 오사마 빈 라덴 집을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조용하나 파격적인 작품 활동을 줄곧 시도해왔다. 따져보면 이들의 행보는 40년 동안 한 번도 파격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제국전쟁박물관을 통해 911·테러의 여파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은 그들은 터너상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그간의 작업 중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아쉬웠던 일을 모두 ‘터너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라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다. 이후 오사마 빈 라덴 집을 주제로 제작한 3부작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은 이들의 가능성을 세계적으로 다시 알린 기회였다. 숱한 영구 설치 예술 작품 가운데 런던 히스로 터미널 5에 설치한 ‘무빙 월드(Moving World)’와 피카딜리 서커스역의 ‘뷰티< 불멸(Beauty < Immortality)’이 대표적. 그들의 40년간의 협업 역사를 기념한 전시 <Internet Giants : Master of the Universe>가 오는 3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버밍엄의 아이콘 갤러리에서 열린다.

1 Moving World, 2008 ©Steve White  2 Facebook, 2017 ©Peter White  3 Beauty < Immortality, 2016 ©Thierry Bal

보이지 않는 세계의 탐험 Raphael Pluvinage & Marion Pinaffo

라파엘 플루비나주(Raphael Pluvinage)와 마리옹 피나포(Marion Pinaffo)은 메종 오브제 파리 2017 하반기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에서 선발된 듀오다. 오브제를 통한 유희를 즐기고 독특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마리옹, 그리고 기술 시스템에 관심이 높은 라파엘이 만나 기술을 이용하나 기술에 비판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대표 프로젝트는 ‘페이퍼 머신(Paper Machine)’. 점점 사라져가는 종이의 시대에서 라파엘과 마리옹은 절단되거나 채색되고 접어지며 조립되고 찢어지는 14개 종이로 장난감을 만들었다. 전기적 특성에 따라 변경되는 잉크를 사용하거나 자기장을 활용하는 등 단순히 평면적인 종이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종이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접거나 던지거나 잡아당기기 등 기초적이고 상호 작용하는 동작과 전자 원리를 이용한 장난감은 잠시나마 스마트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찌 됐든 디자이너의 이러한 시도가 반가운 것은 분명하다.

영원으로의 도전 Julien Phedyaeff & Christopher Santerre

장인 정신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한발 앞서가는 것을 선호하는 줄리앵 페디예프(Julien Phedyaeff)와 산업 생산 전반에 관심이 높은 크리스토퍼 산테르(Christopher Santerre)는 디자인을 넘어 미래를 고민하는 디자이너 듀오다.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과 패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공통적으로 품어온 둘은 졸업 작품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발표한 뒤 듀오로서 협업하게 된다. 졸업 작품에서 크리스토퍼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식품을 보존할 수 있는 냉장고를 고안해 선보였고, 줄리앵은 바꾸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수리가 가능해 영원히 쓸 수 있는 세탁기를 고안했다. 두 젊은이의 기특한 발상은 가전제품 회사 ‘L’Increvable SAS’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네이버, 아티스트 듀오,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