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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곰탕에 빠진 미쉐린 셰프, 임정식

핀셋을 들고 접시 위의 식용 꽃을 정교하게 매만지던 미쉐린 2스타 셰프 임정식이 돌연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파란 김장통의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옆에는 곰탕이 쉬지 않고 절절 끓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사연일까?

2018.02.15

 

임정식은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셰프로 유명하다. 물론 TV에서도 볼 수 없다. 한 접시의 요리보다 얼굴이 잘 팔리는 요리사에게 ‘스타 셰프’라는 근사한 호칭을 붙이는 세상에서, 그는 한 시절 반짝이는 스타 셰프가 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임정식은 늘 궁금한 사람이었다. 
뉴욕에서 한식으로 첫 미쉐린 2스타를 거머쥔 셰프, 그리고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도 마침내 2스타를 딴 임정식. 미쉐린 별을 떼어놓고 봐도 그는 시작부터 좀 남달랐다. 뉴욕에 진출할 때도 애초에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것에 집착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한국 DNA와 식문화에 기반을 둔 요리로 무장했다. 코리아타운에 숨는 대신 뉴욕 한복판 트라이베카에서 정면 승부를 건 괴짜. 정식당으로부터 탄생한 ’뉴 코리안 퀴진’이라는 장르는 고유 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가 세계 시장에서 저평가된 한식의 지위를 꿈틀대게 한 인물이라는 말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그런 그가 10년이 흘러 인천공항에 곰탕과 평양냉면 전문점 ‘평화옥’의 문을 열 줄이야.
세계적으로 미쉐린 스타 셰프가 세컨드 레스토랑을 차리는 게 트렌드지만 왜 굳이 임정식이, 그것도 가장 서민적인 음식인 곰탕과 냉면을? 미쉐린 1스타를 따면 다음은 2스타, 그다음은 3스타를 탐내는 게 셰프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자 숙명이거늘, 그가 요즘 푹 빠진 것은 오히려 빕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또 하나의 지표다)에 가깝다. “저 자신도 요즘 파인 다이닝을 별로 즐기지 않는걸요.” 그제야 지난 1~2년 사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도배한 평양냉면, 곰탕 사진이 뇌리를 스쳤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노포를 전전하며 치열하게 먹고, 수시로 감탄하고, 고뇌한 흔적은 고스란히 SNS에 기록되어 있다. “밤새우자!”는 메시지와 함께 오랜 시간 탕을 끓이는 고단한 나날도 소상히 남아 있다. 숱한 테스트와 연구 사이로 ‘아이평뽕유’, ‘아이곰냉유’, ‘아이유’ 등 이름도 웃긴 팝업 이벤트가 불쑥불쑥 펼쳐졌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기와 육수가 버려졌는지는, 그 역시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고기만 많이 때려 넣으면 국물이 진해지겠거니,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이상한 맛이 나는 거예요. 육수 끓이는 시간도 중요하고, 육수를 어떻게 식히는지도 중요하다는 건 여러 번의 팝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어요. 양념이나 육수를 바로 먹을 때와 식혀서 다음 날 먹을 때도 맛이 달라요. 김치의 숙성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죠.” 실패, 실패, 그리고 또 실패. 원하는 그 맛이 처음 나온 순간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며, 여전히 연구 중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데도 그의 말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 같은 힘이 있었고,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새로운 한식류(韓食流)를 꿈꾸며 
1월 14일. 평화옥 오픈을 코앞에 둔 임정식을 만났다. 그날은 마침 그의 생일날이었다. 9년 전 오늘, 서른한 살의 임정식은 정식당 문을 열었다고 한다. “정식당을 연 지 9년 차가 되니 제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가 꿈꾸는 새로운 것이란, 차세대 음식 한류를 열어줄 그 무엇이었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 뭔지 떠올려봤어요. 확실한 게 없더라고요. 전 세계적으로는 한국 닭튀김이 유행이지만 BBQ는 조리 방식일 뿐이고, 비빔밥이나 잡채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잡채 맛의 중심인 간장은 우리만의 재료가 아니니까요.” 단순히 맛보다는 한국 고유의 식문화에 주목한 임정식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밥을 탕에 말아 먹는 것, 이를테면 곰탕과 우리만의 반찬 문화였다. 승부수가 되겠다 싶었다. 
남한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곰탕과 북한의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을 사이좋게 대표 메뉴로 내건 새로운 그의 식당에는 평화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자리 잡은 평화옥 1호점은 곰탕이나 평양냉면 불모지인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한 전초기지다. 본래는 일본에 진출하려고 부동산을 알아보던 중, 운명적으로 인천공항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은 세계로 뻗어갈 한국 음식을 평가받을 좋은 장소임이 분명했으니까. 태국엔 얌꿍, 일본엔 라멘, 베트남엔 쌀국수. 아시아에는 어디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국물 요리가 있음에 주목한 임정식은 맑은 곰탕보다는 빨갛고 얼큰한 국물 베이스의 매운 곰탕을 주 무기로 장전했다. 이 밖에도 김치찜, 닭튀김 등 임정식이 평소 좋아하고 잘하는 메뉴도 탄탄하게 구성했다. 

 

 

섹시한 공간, 섹시한 경험 
“관건은 단지 음식 맛이 아니라고 봐요. 음식은 기본이니까요.” 평화옥이 내세우는 비장의 카드는 바로 ‘공간’이다. 직접 만난 임정식은 건축가이자, 실내 장식가이고, 폰트 디자이너이자, 조명 디자이너였다. 평화옥 이름을 짓는 것부터 폰트와 로고, 테이블에 놓이는 그릇, 테이블, 천장 장식까지 핀터레스트를 뒤져가며 직접 구상하고 그린 그는 레스토랑은 총체적인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20만원짜리 코스를 먹든, 1만원짜리 곰탕을 먹든 그 음식을 경험하는 공간의 중요성은 다르지 않다는 걸 그는 안다. 노포는 노포 나름대로, 평화옥은 평화옥 나름대로 곰탕 맛이 있다.  
“평화옥만의 개성을 지닌 공간을 만들려고 공을 많이 들였어요. 한국에 있는 문화를 섹시하게 변주했달까요?”
임정식은 맛이 아닌 무언가를 매력적이라고 말할 때 섹시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곰탕집에서 음식을 나르는 카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김치 카트, 편의점 파라솔 모티프 디자인의 테이블, 항아리 형태에서 재해석한 티타늄 곰탕 그릇마저 그가 정의하는 섹시 안에 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 여행객에 걸맞게 바닥을 고목으로 장식한 위트 또한 그의 솜씨다. 매장 중앙에 기다란 커뮤니티 테이블을 설치하고 반찬 항아리들을 늘어놓아 손님으로 하여금 직접 한국의 반찬 문화를 체험하게 했고, 아랫목에는 한국식 좌식 테이블을 두었다. 이 공간에는 분명 어떤 이야기가 있었다. 임정식과의 대화 후에 평화옥을 찬찬히 둘러본 뒤에야 왜 미쉐린 셰프가 곰탕집을 차렸을까 하는 나의 호기심이 참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임정식이 가늠하고 싶었던 건 한 그릇의 곰탕이나 냉면의 시장성보다는, 총체적인 한국의 식문화가 담기는 평화옥이라는 그릇의 가능성에 가까웠을 테니까.   

1 평화옥의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새빨간 매운 곰탕. 2 평화옥의 상징인 비둘기를 조명으로 제작해 마치 진짜 날아다니는 것처럼 천장에 달았다. 3 제2 터미널 4층에 자리한 평화옥에서는 제2 터미널의 모습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비행기를 탑승하지 않고도 평화옥에 입장할 수 있다. 

 

 

4 평화옥의 야심작 중 하나인 어복쟁반. 5 반찬 항아리를 늘어놓아 직접 배식이 가능하게 할 기다란 커뮤니티 테이블. 6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둥그런 식탁이 위트 있다. 

 

 

 

 

 

더네이버, 셰프, 임정식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이재안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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