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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꿈

표지 덕에(?) 뜻하지 않은 외설 시비에 휘말린 배수아의 아홉 번째 소설집 <뱀과 물>. 해묵은 논쟁 뒤로, 가깝고도 먼 죽음과 삶의 이야기가 짙게 흐른다.

2018.01.16

소설을 다 읽은 뒤 뒤집어 표지를 본다.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보는 느낌. 다 끝났다며 개운하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이 책 속의 세계로 길게 늘어진 너의 꼬리가 보이지 않느냐고. 그게 사실은 뻗어나간 팔이라는 걸 알지 않느냐고, 앙상한 손가락이 네 옷자락을 잡고 있는 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벌거벗었지만 적나라하기보다 어렴풋한 소녀의 몸은 소설의 느낌과 꼭 닮았다. 작가는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이 찍은 이 사진을 직접 골라 출판사에 표지로 써달라고 보냈다고 한다. 이 사진에서 모든 글이 출발했거나, 혹은 글이 끝난 뒤 이 사진을 전생에 헤어진 쌍둥이처럼 발견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소설집을 읽는다는 것은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일련의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검은 강으로 걸어 들어가 검은 강에 물들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작든 크든 꿈에 사로잡힌다. 배수아의 꿈에 사로잡히면서, 그게 사실은 내 꿈이라는 것에 아연해진다. 문학평론가 강지희는 이렇게 말한다. “배수아는 어느 순간부터 죽음이 안개처럼 깔려 있는 이 세계를 해석되지 않는 긴 꿈, 풀리지 않는 비밀, 번역되지 않는 외국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한 번역가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인간의 말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는 동안 최초에서 멀어진 이상한 웅얼거림이며, 원본을 상실한 상태의 무수한 복사본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곤란하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다 뒤바뀌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지 못한다. 과거는 마치 미래 같고 미래는 오래된 과거 같다. 이 소설 속 지명과 인명은 아주 낯설지만 이 소설 속 공간은 우리가 언젠가 살았던 공간이다. 스키타이족의 무덤, 눈 아이, 얼이, 서커스단, 반두, 쥐의 왕, 노인 울라, 흉노…. 낯설게 채이는 이름 사이를 걸으면서 이곳이 전에 한 번 와본 적 있는 곳이구나,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된다. 죽음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도 그렇다. 일곱 편 중 처음에 실린 소설의 제목은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이다. 일곱 편 중 마지막에 실린 소설의 제목은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이다. 아이가 눈 속에서 불타며 꾼 꿈은 죽기 전에 꾼 것일까 죽고 난 뒤에 꾼 것일까.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가고 난 뒤 나는 죽은 아이일까 산 아이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만 느낄 뿐이다. 한숨 같은 죽음의 입김이 볼에 닿는다. 
삶은 마치 흙먼지 아득한 ‘길 한가운데를 느리게 지나가는 거대한 흰 배’(<도둑자매> 중) 같다. 실재일까 환영일까? 작가는 그것이 얼마나 실제다운 실재인지 이야기하기 위해 배 아래 숨겨진 부분에 자동차처럼 바퀴가 달렸음을, 그 거대한 배를 끌고 가는 무수한 흰옷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 햇빛 아래 고깃덩이처럼 붉게 땀 흘리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런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멀리서 보면 거대한 배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죽음은 지나치게 가깝고 삶은 지나치게 멀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를 처음 본 자매처럼 영원히 꼭 붙어 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은 진부하다. 그러나 이 책은 뜻하지 않은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한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걸린 표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쾌감을 ‘별점테러’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성마른 한줄평이 난무했다. “이 책 치워주세요 더럽다” “예술보다는 혐오에 가까움… 눈이 없는지” “마케팅 측면에서 무리수를 두었음” “애들도 들어와서 보는데 빨리 내려주세요.” “벗기기에 급급한 저급한 표지” “얄팍한 상술”. 그들은 소설은 펼쳐 보지도 않고 표지를 논했지만, 그 성급함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이 표지에서 본 것, 혹은 보지 않은 것이 바로 소설의 내용과 같으니까. 소녀의 광물에 가까운 무심한 몸이, 보이지 않는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발등이 외설적이라면 이 소설 또한 외설적일 것이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컬쳐다이어리, 책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도윤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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