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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거장이 돌아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꼬장꼬장한 톤으로 마치 화가 난 듯 호통을 쳤다. “혹시 여러분 잠자고 있는 건가요? 왜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디자인 역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디자인 거장 루이지 꼴라니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내한했고, 그의 호통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2018.01.15

누가 그를 고령이라 했던가. 천하를 호령할 짱짱한 목소리로 호통을 쳐대는 루이지 꼴라니의 펄펄한 기운에 눌린 것은 도리어 젊은 우리였으니. 구순을 앞둔 그는 시차 따위는 남 이야기라는 듯, 간담회 시간을 예상보다 훌쩍 넘기며 스케줄을 거뜬히 소화했다. 그의 나이를 짐작게 하는 유일한 단서는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는 휠체어뿐이었다. 디자인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이름, 루이지 꼴라니. 사실 그의 한국행은 전시 오프닝을 불과 이틀여 앞두고 갑작스레 결정됐다. 1월 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릴 <루이지 꼴라니> 특별전. 어쩌면 마지막 한국행이 될지 모를 그의 방문 소식에 고민 없이 택한 만남이었다. 그는 오늘도 늘 그랬듯 온몸을 흰색으로 무장한 채 등장했다. ‘왜 흰색을 고집할까’라는 원초적 질문은 마땅하다. “색채는 일종의 속도다. 속도를 내면 우리 눈에는 흰색만 보인다. 빨리 돌아가는 빛을 보면 흰색이질 않나, 그래서 흰색을 좋아한다.” 흰색, 바꿔 말해 그는 속도를 좋아한다. 비행기, 자동차, 배, 오토바이 등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 쓱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조형, 회화를 전공한 그는 공기 역학도 공부했다. 예술가와 엔지니어 사이에 있달까. 가구, 그릇은 물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자동차, 비행기까지 그의 디자인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뿐인가. 시대를 앞선 파격적인 디자인 덕에 어떤 이는 그의 작품을 보고 ‘외계인이 지구에 선사한 작품’ 같다고 평했을 정도니.  
“저기, 잠깐 이쪽으로 와주겠어요?” 한참 이야기를 하던 그가 돌연 카메라 기자를 불러 세웠다. 그러곤 그의 손에 든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이게 바로 꼴라니 디자인이에요. 생큐!” 카메라를 전달해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자신의 카메라를 사용해줘서 고맙다는 것인지는 불명확했지만, 그는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그가 가리킨 카메라는 캐논 T90. 1983년 루이지 꼴라니가 디자인한 캐논 T90은 직선을 탈피한 인체 공학적 곡선으로 특허를 획득했고, 카메라 디자인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일상을 누빈다. “바이오라는 것은 자연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자연에서 살아가고 있다. 토끼, 호랑이, 코끼리와 함께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자연에 기인한다. 하물며 그는 ‘영감의 90%는 자연에서, 나머지 10%는 멍청한 번역가 꼴라니에게서’라는 극단의 언어로 위대한 자연 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던가. 이번 전시 타이틀이 단연코 ‘바이오 디자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루이지 꼴라니는 결코 평범한 자연의 번역가는 아니다.

 

 

 

1 1983년에 디자인한 캐논 T90. 카메라 디자인에 곡선이 등장한 것은 T90이 최초로, 오늘날의 카메라 역시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2 귓바퀴 모양의 3D 철학자 스피커(1980). 소니사를 위해 개발한 방사형 스피커로 인간의 귓바퀴를 모티프로 하여 전방부에서 오는 소리를 모아준다. 3 인체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곡선이 매력적인 쿠쉬 소파(1969). 인테리어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산 중이다.

 

 

루이지 꼴라니는, 늙지 않았다
“꼴라니라는 이름은 Tomorrow, ‘내일’이라는 뜻이다. 나의 관심은 모두 머리에 있다. 어떻게 하면 항공기가 빨리 갈까. 어떻게 하면 배가, 자동차가 더 빨리 갈까. 그것이 주된 관심사다.” 그의 머릿속은 꼴라니라는 이름처럼 늘 ‘내일’이 지배한다. 미래를 향한 디자인. 그가 여느 디자이너와 달리 ‘속도’에 더욱 애착을 보이는 이유다. 자동차의 미래를 담은 T600, 곡선의 인체를 속도와 결합한 오토바이 등 ‘속도’를 향한 그의 끝없는 도전과 파격적인 디자인은 실로 경이로웠다. 또 그는 물속에서 완벽하게 움직이는 것은 하늘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창조적인 논리를 발판 삼아, 물속 돌고래를 하늘 위로 건져 올렸다. ‘돌고래 항공기(1968~69)’가 그것으로, 특히 그가 개발한 비행기 터번은 에너지를 줄이는 데 톡톡히 기여하며 여전히 하늘 위를 비행 중이다. 그의 디자인에서 주목할 또 하나는 바로 ‘곡선’. “지구는 둥글다. 우리 인생 전체에서 각이 지거나 딱딱한 곳은 없다.” 고혹적인 눈물방울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곡선의 로젠탈 찻주전자, 인체의 아름다움을 품은 유려한 쿠쉬 소파, 최초의 곡선 카메라 캐논 T90 등 그의 디자인은 유려한 곡선의 결정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실용보다는 파격, 실험에 가까운 그의 디자인은 당시만 해도 충격이었다. 너무 앞선 디자인은 오히려 현재에 더 어울릴 정도니. 사실 평범함은 그에게 애당초 먼 이야기였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완제품의 장난감을 선물한다. 나의 부모님은 완제품을 사준 적이 없다. 그 대신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사줬다.” 영화 세트를 만들던 아버지, 공산주의 정치가였던 어머니. 그들은 어린 꼴라니에게 완제품의 장난감 대신 나뭇조각, 칼, 톱 등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여주었다. 그만의 공작실도 물론이다. 꼬마 꼴라니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창조적인 세계와 만났다. 그리고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 이탈리아에 위치한 밀라노디자인센터. 그곳에는 루이지 꼴라니가 만든 프로토타입 6000여 개가 저장되어 있고, 흩어진 작품을 모으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창고에는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프로토타입으로 존재한다. 사실 그는 예쁜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형체, 조형을 만드는 학자, 과학자에 가깝다. 수많은 프로토타입은 그 실험의 결과물이자 꼴라니가 닦아온 견고하고 창조적인 미래에 가깝다. DDP에서 열릴 이번 전시는 그가 준비한 미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전시가 될지 모른다.  “나는 아흔 살이다. 내가 나이가 많아 지루한 건가? 다들 주무시면 안 된다.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역동적인 영감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맘마미아~!” 그는 놀라움과 한탄의 ‘맘마미아’를 몇 번이고 외쳤고 쉴 새 없이 질문할 것을 다그쳤다. 누군가에게 질문이 몰리는 것도 사절. 그는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질문할 것을 요청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답할 그도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질문이 아니면 가차 없이 ‘No’. “전체 생애에서 질문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여러분도 수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쩌렁쩌렁 호통을 치던 그의 속내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에 성을 하나 샀다. 지은 지 600년이 넘은 성인데, 그것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나는 그냥 그 안에 들어갔을 뿐이다.” 평생을 디자인에 천착한 루이지 꼴라니. 그의 집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특이한 공간으로 꾸몄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는 순간 사라졌다. 인생의 2/3를 전 세계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호텔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는 그. 머릿속을 떠다니는 넘치는 호기심과 질문을 해소하기에도 바쁜 그의 삶에서 집은 그저 심플하고 단순한 자연의 품이면 족했을지 모른다. 자연 곁에서 끝없이 질문하는 예민한 사색가. 구순의 루이지 꼴라니는 아직 늙지 않았다. 그의 호령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쟁쟁 맴돈다.  

 

 

 

 

 

더네이버, 인터뷰, 루이지 꼴라니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박우진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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