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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서재

탐욕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서재다. 취향과 감각이 바로 선 공간 안에 책을 한 권 한 권 채워가는 성실과 끈기가 더해져야만 온전히 제 색을 입은 서재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취향이 확실한 남자의 서재 4곳을 훔쳐보았다.

2018.01.02

독서를 위한 완벽의 공간 디자이너 오준식의 서재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준식의 서재는 이미 ‘스타’였다. 거실 한 벽을 가득 채운 디터 람스 책장과 커다란 책상, 그리고 수준 높은 오디오 시스템과 몸이 파묻힐 정도로 안락한 소파. 흠잡을 데 없는 그의 서재는 누구라도 한 번쯤 꿈꿔봤을 모습에 가까웠으니까. 그는 자신의 서재에 ‘개인의 4시간’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침에 조금 일찍 눈을 떠서 출근하기 전까지 약 2시간,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약 2시간 동안 이곳에서 오롯이 개인의 4시간을 보낸다. 음악을 듣고, 책을 보고, 이런저런 엉뚱한 구상과 몽상도 한다. 테이블의 사이즈가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고 믿는 그의 책상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한데, 이런 그럴싸한 하드웨어는 사실 독서를 위해 거드는 것뿐. 진정한 공간의 주인공은 오준식이 차근차근 모아온 책들이다. 본업은 디자이너이지만 책장에 꽂아놓은 책은 정작 콩밭에 가 있는 느낌이다. 철학과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나 아시아 서적들이 많은데, 특히 아시아 관련 서적은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 나눠 꽂을 만큼 그 종류와 수도 다양하다. 서재를 처음 마련한 4년 전과 비교해 이 공간은 참 많이 변했다. 보는 중심의 책에서 읽는 중심의 책으로, 디자인을 넘어 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향한 새로운 흥미. 서재가 진화해온 만큼 그 자신도 이 공간에서 꾸준히 성장해왔음이 분명하다.

 

 

낮과 밤 두가지 책의 공간 젊은 시인 김경현의 서재 
시인 김경현에겐 두 가지의 서재가 있다. 시집과 정치 책으로 주로 채워진 방 안의 서재, 그리고 한남동의 바 ‘초능력’ 한편에 마련한 ‘다시서점’이 그것이다. 독립 출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는 다시서점을 통해 독립 출판물이 온전히 주인공이 되는 또 하나의 서재를 꾸민 셈이다. 집 안의 서재에서 하루의 절반을, 그리고 제 2의 서재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낸다. 책을 향한 욕심이 대단해 보이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꾸준히 책을 버려가는 중’이라며, 종국에는 서재가 아예 없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에게 서재는 소장의 공간이 아닌 지속적인 순환의 공간에 가깝다. 이를테면 서점처럼. 그는 최근 책을 돌려보는 운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SNS에 올리고 그 책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보기’라는 형태로 빌려주는 것이다. 릴레이성으로, 대여 기간의 제한 없이. 이런 방식은 김경현이 서재라는 공간를 대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누군가에게 맡겨진 책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 형태가 곧 온라인 기반의 서재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 하나 더, 그는 최근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방화동에 또 하나의 다시서점을 열었다. 온라인 판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점에서는 책의 카테고리나 출판 형태에 한계를 두지 않기로 했다.

 

 

거장의 서적과 거장의 작품이 만난 공간 공간 디자이너 정병화의 서재 
공간 디자이너인 밀리그램 디자인 대표 정병화의 서재 사랑은 유난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책으로 장 프루베와 안도 다다오를 익혔을 만큼 건축에 일찍 매료된 그가 지금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서재다. 절대적인 답이 없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건축’이란 학문에서는 앞선 이들의 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는 믿음에서다. 그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은 의심의 여지 없이, 건축의 아버지인 장 프루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회사 이름 ‘밀리그램’도 금속을 다루는 기교와 애정이 남달랐던 장 프루베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묵직한 디자인 서적을 받치고 있는 은색의 디터 람스 책장은 그가 서재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 “평소에 가구를 구입하면 전부 제 손으로 조립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어요. 하나하나 조립해가다 보면 단지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디자이너의 철학과 의도를 이해하게 되거든요. 디터람스 책장도 전부 제 손으로 조립했는데, 그러면서 또 한 번 무릎을 탁 쳤어요. 디터 람스가 왜 산업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이쯤 되면 서재의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책을 펼치며, 조립을 하며 그가 스스로 배워가는 지혜는 그의 서재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오래된 멋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아티스트 허명욱의 서재 
아티스트이자 사진가, 그리고 수집가인 허명욱의 작업실은 갤러리를 방불케 했다. 그의 수집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업실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에디터는 그의 집에 처음 들어선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구부터 바닥재, 소품 하나까지 온통 나무색으로 꾸민 공간은, 이 차가운 계절과는 동떨어지는 온기로 환대해주었으니까. 집도 작업실과 마찬가지로 갤러리처럼 번쩍일 거라는 선입견은 단숨에 사라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은 그 자체로 근사한 서재 공간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거실을 서재로 꾸미려고 한 건 아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러움에서 시작해 자연스러움으로 끝을 맺는다. “일반적인 거실의 이미지는 소파와 TV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런 편견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안락한 의자,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가구, 거기에 앉아 읽기 좋은 책을 모아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서재가 된 거예요.”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라 이곳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사실 얼마 되지 않지만, 영국에서 구입한 빈티지 의자에 몸을 파묻고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그에게 위안이자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다. 이곳에서는 읽는 책의 범주도 작업실과는 조금 다르다. 독일 잡지 <하우스>, <메종 파리>, <월페이퍼> 등 집과 공간을 주로 다루는 잡지를 정기구독하며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 공간을 이야기하는 잡지는 어쩐지 잘 버리게 되지 않는데, 오래된 것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덕분이다.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공간 테마의 책처럼, 허명욱의 서재에 들어서면 왠지 시간 감각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더네이버, 남자, 서재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김잔듸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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