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이 위기다. 근본적인 위기는 생산물량 감소다. 한때 100만대를 생산, 수출했을 정도에 맞춰진 조직에서 연간 생산량이 60만대로 축소됐다. 그럼 인력도 60만대로 줄여야 하지만 현재로는 불가하다. 그래서 위기를 돌파하려면 생산 증대가 필수다. 그런데 생산은 무작정 확대할 수 없다. 팔 곳이 있어야 생산할 수 있다. 내수판매 증대가 가장 효율적이지만, 그러자면 신차 대응이 빨라야 한다. 하지만 GM의 거대함에 맞추다 보면 늘 타이밍이 문제다. 가뜩이나 내수 판매량마저 떨어지고 있으니 위기를 전환할 해결책이 없다. 쉽게 생각해보자. 한국지엠의 위기 탈출 방안은 판로 개척이다. 현재 주력 수출지역인 중앙아시아를 벗어나야 한다. 이 경우 손쉽게 떠올리는 지역은 유럽이다. 하지만 유럽은 쉐보레 브랜드가 이미 철수했다. 이곳으로 다시 들어가는 방법은 GM이 쉐보레를 유럽에 재진출시키는 길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을까? 사실 쉐보레 유럽 철수의 근본적인 이유는 오펠 지원이다. 한국지엠이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한 제품과 유럽에서 오펠이 생산, 판매하는 제품이 서로 겹쳤다. 같은 제품을 오펠과 쉐보레 브랜드로 각각 판매했으니 오펠이 입은 타격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오펠의 생산 원가가 높은 점도 GM이 오펠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나아가 매각 때 높은 가격을 받으려면 오펠의 안정도 필요했던 만큼 GM은 한국지엠 대신 오펠을 선택했다. 그러니 지금 위기의 원인을 한국지엠 경영진이나 노조로 몰아갈 수는 없다. 대주주인 GM의 결정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데 정작 위기는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GM 본사 결정이 번복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니, 현실에 맞는 대책을 찾는 게 최선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 물량을 배정받아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쉐보레의 유럽 재진출이 전제돼야 하고, 그 이전에 오펠을 인수한 PSA의 결정이 선결돼야 한다. 그리고 PSA는 공을 던졌다. 한국지엠이 그나마 공급하던 유럽 수출 물량 14만대를 오펠이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현재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GM 본사도 한국지엠에 물량을 배정하기 어렵다”는 내부 관계자의 설명에 종지부가 찍힌 셈이다. 그래서 이제 칼날은 미국 GM 본사가 쥐었고, 이들의 결정에 운명이 맡겨졌다.  물론 결정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조건은 안정된 노사관계다. 유일한 해외 시장용 제품 공급자인 한국지엠이 불안해지면 GM 또한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리고 여기에는 구조조정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최후의 수단이다. 2021년까지 정년으로 퇴직할 인원만 20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충돌하지 않고 합의로 안정적인 공장 가동을 담보한다면 한국에서 발을 뺄 이유가 사라진다. 사실 GM에게 한국지엠은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반드시’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은 아니다. 필요한 이유는 한국 내 수많은 협력사와 GM 본사도 거래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해외 시장이 기대 이상 성장하면 한국지엠이 공급기지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조립 품질도 좋은 데다 개발 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니 유지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반면 떠나갈 가능성은 오로지 노사가 충돌할 때다. 안정적인 제품 공급 역할을 바라는 GM에게 노사 충돌은 공급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노사가 올해 협상을 마무리하지 않고 미뤄 놓은 것도 GM 시각에선 불안정 요소다. 그러니 노사 협상은 빨리 마무리될수록 위기 극복에 유리하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있다. 최근 GM은 캐나다 공장에 생산성을 높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노조가 반발했고 본사는 생산 물량을 배정하지 않았다. 결국 일감이 대폭 줄어든 노조로선 곧바로 협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비용 문제다. GM은 한국지엠의 생산비용이 비싸도 조립품질이 뛰어난 만큼 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용이 높아지면 마찬가지로 대안 찾기에 들어갈 태세다. 생산과 판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수익은 경영진의 명운이 달린 중요 사안이어서다. 특히 수익은 주가와 연동되고, 주가가 내려가면 본사 경영진도 하루아침에 짐을 싸야 한다. 그러니 GM 본사는 한국지엠의 수익향상이 중요 과제다. 최근 내놓은 크루즈 디젤 가격이 시장에서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어차피 디젤 준중형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지엠으로선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다. 만약 크루즈 가솔린에 마케팅과 가격에 따라 점유율 확대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면 ‘박리다매(薄利多賣)’로 갔겠지만 수요가 많지 않은 준중형 디젤이라는 점에서 ‘다리박매(多利薄賣)’로 갔을 뿐이다. 이를 두고 철수와 연관 지을 필요는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현재 위기 타개책은 한국지엠 경영진과 노조 누구에게도 없다. 나아가 정부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제아무리 한국 대통령이라도 GM 본사 경영에 관여하지 못한다. 한국지엠 임직원은 국내에서 투표하지만 GM 본사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미국 GM 경영진의 인사에 한국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그러니 이 문제를 정치권으로 끌고 가봐야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또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 노사에게 유일한 카드는 협상을 마무리하고 물량 배정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GM 본사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물량 배정의 명분이라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높아진 인건비에 따른 높아진 생산비용은 이후 문제로 넘길 수 있고 해결 방법도 많다. 한국 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다거나 수출 가격을 높이는 것도 방안이다. 하지만 노사 문제는 GM 본사도 어찌할 수 없는, 오로지 한국만의 상황이기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연간 180만대 국내 시장은 이미 정체와 포화이고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생산 확대 돌파구는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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