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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가문의 동질

6세대에 걸친 포르쉐 911의 혈통을 추적하다

2017.12.05

THE LINEUP(왼쪽부터) 2009년 997 카레라, 2001년 996 GT3, 1984년 클럽스포트 프로토타입, 1996년 993 카레라, 2017년 991.2 백00만 번째 생산 모델, 1970년 911S 타르가, 1992년 964 카브리올레

 

“너무 조용하군요. 음악을 좀 틀어야겠어요.” 포르쉐 GT 개발부서 대표 안드레아스 프로이닝어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어딘가에서 아메시스트 메탈릭의 포르쉐 911 카브리올레(964 버전)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폰을 구식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연결한 뒤 음악 목록을 훑어 내렸다. 그가 물었다. “어떤 음악이 좋아요? 그린데이, 키드 록, 메탈리카가 있어요.” 몬터레이로 향하는 캘리포니아의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아메리칸 이디옷(American Idiot)’의 쿵쾅거리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안드레아스 프로이닝어와 함께 보라색 포르쉐를 타고 있지?’ 1963년, 911이 등장한 이후 포르쉐는 100만대가 넘는 911을 만들었다. 이 대기록을 기념하려고 6세대에 걸친 7대의 모델이 독일 주펜하우젠 포르쉐 박물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여행 중이다. 포르쉐 911과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이벤트인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미국의 ‘몬터레이 카 위크’다. 이곳에서 911은 베르크스 리유니언에 출연한 뒤 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마쓰다 레이스웨이 라구나 세카 서킷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계획은 단순하다. 한 무리의 자동차 저널리스트와 포르쉐 임원이 세인트헬레나 호텔을 출발해 경치 좋은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려 몬터레이로 향하는 거다. 우리는 911의 모든 세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경로상의 지정 장소에서 차를 바꿔 탈 예정이다. 내가 고른 첫 번째 차는 멋진 제미니 블루 메탈릭의 1970년형 911S 타르가였다. 간소하게 챙긴 짐을 넣으려고 프렁크(앞쪽 트렁크)를 열었을 때 약간 놀랐다. 구멍 수준의 적재함은 너무 작아 백을 넣기에 부족했다. 2.2리터 수평대향 엔진으로 180마력을 내는 타르가는 우리 그룹을 선도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타르가는 다운시프트를 하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배기구에서 짙은 연기구름을 내뿜었다. 어쩔 수 없이 타르가의 뒤에 있는 차는 창을 닫고 거리를 두어야 했으니, 타르가의 선두는 그냥 자연스러워 보였을 뿐이다. 

 

 

닫을까? 열까? 사진과 달리 911S 타르가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루프를 떼는 것이다.

왕관 911은 처음 생산됐을 때부터 타코미터를 계기반 가운데에 배치하고 있다.
 

모든 911 중에서 이 차가 아마도 익숙해지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 개의 페달이 서로 너무 붙어 있다. 신속한 힐앤토가 가능한지 계속 발 위치를 바꿔보지만 자세를 잡기 쉽지 않다. 변속이 쉽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5단 수동변속기의 포지션이다. 1단이 왼쪽 아래에 있는 개다리(dogleg) 형식이어서,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계속 주지하고 있어야 했다. 변속기는 기어와 기어 사이를 가볍게 움직였다. 하지만 결속감이 약간 모호해서 2단과 후진이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시트 포지션이 최신 911보다 꽤 높다. 그나마 탈착식 루프여서 다행이다. 애초 내 계획은 가장 오래된 차를 가장 먼저 타고 점점 최신 모델로 다가와 마지막에 100만 번째 모델을 타는 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들 흥분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로 달려나갔다. 마치 대형마트에서 배추 대박할인 소식을 들은 아줌마들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난 2001년형 996 GT3를 탔다. 당시만 해도 360마력은 특별한 존재였다. 0→시속 97킬로미터가 5초 미만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즘은 가족용 세단도 그런 성능을 내니 이 GT3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996의 원래 인테리어가 얼마나 시시했는지 떠올려주는 실내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프로이닝어가 996의 개발 중간 단계에서야 합류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앞부분이 너무 가벼운 느낌인 데다 밋밋하고 애매하면서도 휙휙 돌아가는 운전대가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엔진은 대단히 훌륭한 엔지니어링 업적이지만, 토말레스 베이 인근의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 달리던 그룹의 차분한 속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 차는 애초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춘 차다. 그 원초적인 성향 때문일까? 고속도로에서의 크루징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996 GT3가 당대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에 올라탄 폴라 실버 993 카레라 2는 나이를 잊은 느낌이다. 이 993은 주행 기록이 1만200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모든 공랭식 911 중 가장 격정적인 모델이다. 콘솔의 노키아 핸드셋만이 진짜 나이를 드러나게 한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 주행감은 타르가 운전대의 가벼움이 연상되지만 간간이 느껴지는 운전대의 단단함이 반갑다. 스티어링 감각도 훌륭하다. 

 

 

NEW GENERATION OF PERFORMANCE 996 GT3는 카레라 RS의 후계자로 1999년에 등장했다. 공도용의 성능을 높여 트랙 주행용으로 만든 것이다. GT3는 2000년에 노르트슐라이페를 8분 안쪽으로 달린 최초의 양산차였다.

 

이 은빛 타임캡슐을 타고 토말레스를 벗어나자 태평양을 품은 1번 고속도로로 나갔다. 도로가 지면의 등고선을 따라 펼쳐져 있기 때문에 커브가 마치 파도처럼 보인다. 그룹의 중간에 있는 내가 다음 언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띠와 같은 911 행렬이다. 무리의 선두가 치고 나가자 다들 동시에 다운시프트를 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모두 교향악단의 활기찬 지휘자의 손처럼 커브로 달려들었다. 993이 공랭식 시대의 빛나는 유물이라면, 997은 996의 모든 불만을 바로잡으면서 그 이상을 이룬 모델이다. 크림 베이지색의 997은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은밀하면서도 활기차다. 차가 막히는 거리, 고속도로의 꾸준한 질주, 구불구불한 산길 위에서 997은 조용하고 편했다. 통풍시트가 달린 997은 이번 주행에서 가장 지루한 구간을 위한 완벽한 선택이었다. 보라색 964에 자리를 잡은 건 점심이 지나서였다. 조수석에 프로이닝어가 앉았다. 그날 내가 몰았던 모든 차에 비해 964는 너무 육중하고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4단 자동변속기는 엔진 힘에 눌려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느낌이었다. 964는 당시 포르쉐가 겪었던 모든 재정적 부담에 짓눌린 듯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프로이닝어는 지루하게 늘어지는 그린데이의 곡을 껐다. “그 시대 음악을 좀 들어야겠어요. 펑크는 너무 많이 들어서요.” 프로이닝어가 전화기를 만지작거린다. 러버 보이의 ‘주말을 위해 일해’를 틀었다. “이게 좀 더 어울리네요.” 나는 팁트로닉 레버를 앞으로 밀었다. 변속기는 3단 기어를 찾고 엔진은 마침내 자기 소리를 찾았다. 보라색 인테리어 위를 알록달록한 빛으로 덮은 1992년형 964가 힘차게 달려나갔다. 프로이닝어가 음악을 바꾼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운전 분위기를 재설정하는 작업이었다. 음악을 바꾼 후로 말을 잘 듣지 않았던 964가 갑자기 불한당처럼 돌변해 도로를 파고 들었다. 음악은 보라색 964를 즐기는 핵심 요소다. 그린데이는 이 964의 실제 나이에 가깝지만, 진짜 964를 끄집어내려면 러버 보이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레이싱 유전자 996 GT3는 르망에서 우승을 거둔 991 GT1의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도로용으로 바꿔 얹었다. 일반 시트보다 10킬로그램 정도 가벼운 버킷 시트는 몸을 잘 잡아준다.
베르크스 리유니언 몬터레이 카 위크 중 여러 대의 포르쉐 911이 전시됐다.

 

오후 태양이 낮게 걸려 있을 무렵 마지막 운전자 교체를 했다. 100만 번째 생산된 포르쉐의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아이리시 그린 색상에 격자무늬 시트, 우드그레인 트림은 이 차가 아주 특별한 911 카레라 S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토크를 화려하게 분출하고 450마력의 출력을 내는 이 차는 고속도로 위의 완벽한 연인이다. 크루즈 컨트롤이 없는 게 놀라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우토반에서 꾸준하게 속도를 유지하는 건 훌륭한 질주라고 할 수 없다. 아니다. 게다가 이 차는 곧 박물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몬터레이가 가까워지면서 교통량이 늘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 내가 타야 할 911이 한 대 남았다. 그리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몬터레이 카 위크’의 가장 좋은 점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자동차 전시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 주 동안 다양한 이벤트에 전시될 수백 대의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시대에 생산된 흥미로운 자동차들이 거리를 달리거나 주차장에 서 있고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스루를 통과한다. 머플러를 뗀 V8 엔진과 4기통이 내는 거친 기관총 소리가 내 호텔방까지 들렸다. 당연히 나는 911 꿈을 꿨다. 다음 날 아침, 마지막 남은 1984년형 클럽스포트 프로토타입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911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연구용으로 제작된 이 차는 후드와 앞쪽 펜더, 도어를 전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고 범퍼는 유리섬유다. 유리에서도 무게를 줄였다고 한다. 결국 클럽스포트는 1987년과 1988년에 양산됐지만 프로토타입은 단 한 대뿐이다. 아마도 다른 모델을 전부 합한 것보다 가치 있는 모델일 것이다. 대단했다. 엄청나게 붐비는 도로에서 운전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출발하기 직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프로이닝어가 말했다. “나를 떼놓고 갈 생각이었어요?” 그가 조수석으로 기어 들어온다. 머리가 선바이저에 닿을 걱정은 없다. 경량화를 위해 제거했기 때문이다. 프로이닝어가 클럽스포트의 실내를 둘러보고는 오디오가 있어야 할 대시보드를 매만지며 말했다. “오늘은 러버 보이를 들을 수가 없네요.” 그러고는 도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디오가 없는데 스피커는 왜 있을까요?” 참 신기한 일이다.

 

 

시선 강탈자 100만 번째 생산된 911은 베르크스 리유니언에 모인 군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에 내가 몰았던 모든 911은 기술적으로 보자면 이미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것들이지만, 완벽히 정비된 차들이었다. 그리고 클럽스포트는 지난 며칠 동안 열정적인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이 타면서 수백 마일을 달렸다. 즉 아주 쓸모없이 주행거리만 늘린 것이다. 프로이닝어도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앞이 탁 트인 도로를 달리며 그는 내게 더 밟으라고 했다. “레드라인까지 가는 과정에서 힘이 일정하게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은 옳았다. 게이지가 태코미터의 절반까지 오르자 33년이나 된 수평대향 6기통 엔진에 힘이 넘치는 걸 느낄 수 있다. 6000rpm에 도달하는 순간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단단하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는 서스펜션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전달해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차를 몇 시간이고 몰 수 있을 것이다. 포르쉐는 100만 대의 911을 만든 뒤에도 911 가지치기를 늦출 생각이 없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구입이 가능한 911은 무려 22종이나 된다. 지금이야 911이 이렇게나 많지만 33년이나 된 클럽스포트 프로토타입을 몰아보는 경험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이 차는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으니까. 클럽스포트는 최고의 911은 반드시 가장 빠를 필요도, 가장 호화로울 필요도, 심지어 가장 아름다울 필요도 없다는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가장 훌륭한 911이란 약 50년 전 911을 처음 만들었을 때 가졌던 정신을 이어가면 된다. 바로 수동변속기와 연결된 6기통 엔진에 뒷바퀴굴림이다. 몬터레이로 향하기 전날의 만찬에서, 나는 프로이닝어에게 “700마력이나 되는 신형 GT2가 911 개발의 정점인가요?”라고 물었다. 이 뒷바퀴굴림 터보 모델은 1963년의 911 최초 모델보다 출력이 다섯 배나 된다. 911의 출력이 이렇게나 높아진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1980년대에 단종 위기에 있던 911은 지금 포르쉐를 지탱하는 힘이자 대표 모델이라는 것도 믿기 어렵다. 과연 신형 GT2가 궁극의 911일까? “사실 911의 플랫폼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할 겁니다.” 프로이닝어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레스토랑 밖에 서 있는 100만 번째 911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낮게 드리운 햇빛이 911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_Derek Powell

 

 

 

나파에서 몬터레이로 향하는 우리의 행렬은 처음엔 질서 있게 시작했지만 운전자들이 911의 잠재적 성능을 탐구하면서 뒤죽박죽으로 끝났다.
최신에서 최초까지 6세대에 걸친 911이 라구나 세카 서킷 그랜드스탠드 앞에 늘어서 있다.

 

 

 

 

모터트렌드, 시승기, 포르쉐 911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포르쉐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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