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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마음을 잇다

미쉐린 2스타 셰프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떼고 본 이종국은 사실 요리보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요리사다.

2017.11.16

성북동 자택이자 음식발전소에서 만난 이종국.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어느 ‘첼리스트의 된장’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서울대 음대 출신 첼리스트가 돌연 스님과 결혼하면서 강원도 정선 산골짜기에 들어가 메주를 쑤기 시작했는데, 된장에 자신이 연주하는 첼로의 선율을 들려줬더니 장(醬)맛이 좋아졌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 물론 그때는 믿지 않았다. 내가 장의 위대함에 눈뜬 건 그로부터 20년 후였다. 왜 이 땅의 많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된장찌개 한 그릇을 위해 장독대 곁을 떠나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렸는지, 한 시절을 애태웠는지…. 레시피는 무수해지고 요리를 배우는 방법과 수단은 숱하게 다양해진 시대,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방법이나 기술 자체가 아닌 한 그릇의 요리로 가는 여정에 필요한 정성과 땀, 배려와 애정을 말하고 싶은 요리사가 있으니, 바로 이종국이다. 미쉐린 2스타 셰프, 그리고 전 세계를 순회하는 ‘포시즌스 제트기 컬리너리 투어’에서 대표 한식 셰프로 선정되었다는 화려한 타이틀은 그저 ‘타이틀’일 뿐 이종국이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충분한 재료는 되지 못한다. “셰프는 명성을 좇는 스타여서는 안 된다”는 그가 힘주어 말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맛을 본 뒤에야 마음에 새겨지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얘기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대표 부인들이 몇 년째 그의 요리 수업에 기꺼이 참석하는 이유는 ‘어떤 것’에 대한 경외다. 미쉐린 2스타를 딴 레스토랑 ‘곳간 by 이종국’(이하 곳간)을 떠난 뒤 몇 개월 전 포시즌스 제트기 컬리너리 투어를 마친 이종국은 최근 성북동에 레스토랑 ‘백사(白沙)’ 오픈을 준비 중이다. 그의 조상인 백사 이항복의 호를 본뜬 이곳은 다양한 한식의 경험을 선사하는 복합적 미식 공간에 가깝다. 개점 준비로 한창인 이종국의 성북동 집을 처음 방문한 날, 그는 내게 헤드폰을 하나 건넸다. 1000만원을 호가한다는 어느 아티스트 오디오 헤드폰에서는 생생한 첼로 연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집 마당 한쪽에 놓인, 그가 보물단지보다 더 아낀다는 크고 작은 단지가 가득한 장독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1 제비집과 가을 버섯을 사용한 건강 보양식, 제비집 탕수. 2 콩꽃을 우려 색을 낸 우리 송편. 3 가을배, 전복, 대하와 견과류 소스가 올려진 제철 건강식 단호박죽. 

 

백사 오픈 준비로 한창이다. 어떤 공간이 될지 궁금하다. 백사가 자리한 곳은 예전에는 아낙네가 빨래를 하던 마전터였다. 빨래하고 국수를 삶아 먹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1층에는 국수를 다루는 공간과 소스 등을 파는 숍을 두었다. 이곳이 전국에 흩어진 좋은 식자재를 다루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2층은 24절기 제철 재료를 맛볼 수 있는 캐주얼 다이닝, 3층은 파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 4층은 케이터링을 위한 공간, 지하는 주방으로 꾸밀 예정이다. 제대로 된 우리 음식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는 공간, 우리의 숱한 식자재와 음식이 얼마나 창의적 도구였는지 생각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고 싶었다. 레스토랑 이름을 조상의 호에서 따온 이유는 무엇인가? 백사 이항복 선생은 강직한 분이셨다고 한다. 내가 만든 음식도 그렇게 강직함과 의기심도 있길 바란다. 타협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한식을 둘러싼 다양한 공간을 통해 기대하는 시너지가 있나? 제자들이 백사를 통해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곳에서 다양성이 피어나지 않을까?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형태를 바꿔 계속 움직이는 요리를 하고 싶다. 마치 물처럼. 전에 음식발전소에서 오디오 아티스트 유국일과 ‘소리, 음식을 담다’는 컬래버레이션을 한 적이 있다. 백사에서도 그런 협업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백사의 전체적 소리를 유국일 선생이 도맡아주었다. 소리는 단지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음식에 걸맞은 자연의 소리나 계절의 변화를 머금은 어떤 소리를 더하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총체적 음식의 경험으로 가는 방향성을 제시할 것 같다. 소리도 하나의 음식이라는 건가? 그렇다. 식자재로 만드는 요리 하나만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경험하는 공간, 음악, 테이블 위의 꽃 한 송이도 파인 다이닝이다. 하다못해 테이블을 닦는 행위도 음식이 될 수 있다. 요리를 하기 전에는 그림을 그렸고, 인테리어를 했다. 지금도 요리 외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요리를 하고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시장에 간다. 시간이 허락하면 산지에 가는데, 그 지역의 좋은 일꾼을 만나 대화하는 게 큰 힘이 된다. 최근에 젓갈로 유명한 충남 강경에서 황해도젓갈을 운영하는 이현달이라는 기특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에게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천연 발효한 젓갈을 선물로 받았다. 진도에서 만난 산나물 같은 제철 재료를 다루는 박민영이라는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 난생처음 본 재료의 요리법을 소상히 적어주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마켓이나 큰 시장에서 식자재를 구하기 쉬운 세상이지만, 도처에 숨은 좋은 식자재를 발견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2 파인 다이닝 공간으로 이용될 백사의 3층. 오래된 문을 활용한 아이디어와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인테리어가 멋스럽다. 3 이종국이 좋아하는 달항아리와 소반 등 물건이 소담하게 놓인 백사 내부. 

 

이름을 건 첫 레스토랑 ‘곳간’이 작년 이맘때쯤 미쉐린 2스타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 세계를 순회하는 포시즌스 제트기 컬리너리 투어의 유일한 한식 레스토랑에도 선정되었다. 1년 동안 한식의 세계화가 진일보했다고 생각하나? 그런 부분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트렌드에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있다. 셰프는 스타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의 눈물과 땀이 밴 레시피를 만드는 데 좀 더 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열과 열정, 끈기가 담기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레시피가 된다. 한식 파인 다이닝 대부분이 외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한 한식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거부감을 사기도 했다. 날것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던 서양 미식 신에 완전한 날것으로 승부한 일본 파인 다이닝과 마늘을 배제한 한식 파인 다이닝은 대비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먹지 않는 것을 다양한 표현법으로 먹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식에는 ‘법제(法製, 다스려서 먹게 하다)’라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 해로운 자연의 물성을 다스리는 법을 한식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 껍질을 두드려서 공기 떡을 만들었고, 그냥 먹을 수 없는 고사리도 말리고 삶아서 먹을 수 있게 법제화한 민족이다. 이런 지혜가 앞으로 세계적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 지니 조 리에게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달라고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 에어라인에서 진행한 만찬이었는데, 그 친구의 기억 속 된장은 굉장히 냄새가 나고 자극적인 음식이라서 와인의 향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인과 된장이 모두 발효의 산물이듯 좋은 친구끼리 만났다’고. 와인을 통한 풍부한 맛과 음식 속에서도 훌륭하다고 느낄 수 있는 좋은 한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쉐린 가이드>에는 곳간이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담근 지 30년이 넘은 간장과 된장을 첨가해 요리에 깊은 감칠맛을 더한다”고 적혀 있다. 집 앞마당에 둔 장독대가 보물상자처럼 느껴지겠다. 장독대에 얽힌 어머니의 기억이 많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장독대에 대한 애정이 엄청났는데, 기본적으로 간장, 고추장, 그리고 계절을 다스리는 젓갈류까지 장독에는 발효의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쉰다고 했다. 요즘은 밀폐 용기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오직 장독만이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의 약속이 있다. 햇빛이 나면 뚜껑을 열어주고, 비가 오면 뚜껑을 닫아주는 마음이 합쳐 좋은 장을 만들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장 담그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관리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장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그것을 통해 소스를 개발하고 현대적인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선대의 요리법도 자주 참고하는 편인가? 내 미각을 형성한 것은 대부분 어머니의 음식이다. 되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어머니보다 요리는 더 잘하는 것 같지만, 그때 내게 해주시던 배려가 음식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으니까. 된장찌개를 잘 끓이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3년 동안 된장을 못 먹었다. 음식은 만들어서 먹는 사람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께 배웠다. 음식은 순간의 예술이지만 결국 어떤 예술보다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그림이나 음악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만, 사람의 노력과 땀이 담긴 음식은 먹어 치우면 그만이다. 설거지만 남는다. 그 대신 음식을 통해 마음속에 시 한 편을 남길 수 있다. 의식주에서 식(食)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머지가 의미 없지 않나. 음식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죽일 수도 있다. 그보다 치명적인 매력이 어디 있겠나. 음식은 아름다워서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나는 11월이 섹시한 달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유는 11월에 나는 식자재가 무척 섹시해서다. 그래서 백사도 일부러 11월에 문을 여는 건가?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웃음)  

(위) 프라이빗 룸으로 구성된 파인 다이닝 공간. (아래) 자연과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은 보물 같은 장독들. 

 

 

 

 

더네이버, 셰프, 이종국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이재안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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