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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Lifestyle

예술가의 낮과 밤

소설을 쓰다가, 꽃을 만지다가 해가 저물 즈음 주방으로 들어가는 예술가들의 심야 식당.

2017.11.07

 

플로리스트 김슬옹의 낮과 밤

어머니는 동양꽃꽂이 선생님, 누나는 서양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 김슬옹에게 꽃이란 그저 들판에 피는 것이 아니었다. 늘 곁에 있었다. 대학에서는 검도와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도 다녔지만 결국 꽃에 정착한 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그런 그가 밤에는 술집 주인이 된 건 무슨 사연일까? “부암동에 작은 꽃집을 마련하면서 불면증이 생겼어요. 그러다 밤에는 꽃집을 ‘바’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마침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도 알게 됐고요. 처음에는 허세 좀 떨어보겠다고 프랑스 가정식도 고려했지만 결국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걸 하자 했죠. ‘오뎅’이었어요.” 그전까지 오뎅을 먹지 못했던 그는 부산의 한 오뎅을 먹고 ‘이거다!’했다. 오뎅이 저렴하다는 인식을 깨려고 육수에 구운 황태, 북어, 새우, 무를 아낌없이 넣었다. 화학 조미료는 물론이요, 오뎅의 순수한 맛을 해치는 후추도 넣지 않았다. 김슬옹의 본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포장마차 주인이 꽃을 만진다고?’ 수군대기도 했지만 근본인 플로리스트의 업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김슬옹은 최근 부암동에서 통의동 보안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실제로 여관으로 운영되었던 이곳은 시인 서정주와 김동리 등 많은 예술가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구관에 이어 신관을 새롭게 오픈하면서 이곳 건물 전체의 꽃 스타일링을 맡고, 저녁 8시부터는 신관 지하 2층의 보안술집 주인이 되는 것. 이전 오뎅바의 단골인 보안여관 주인의 제안이었다. 보안술집은 낮에는 찻집, 그리고 책방으로 운영된다. 추사 김정희의 생전 집터인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한 바닥에 파란 조명을 비추어 놓았는데, 그 위를 걷는 느낌이 무척 기이하다. 물론 플로리스트가 끓여주는 오뎅탕은 더 기이하지만.

 

1 추사 김정희 생가 터의 흔적을 살린 보안술집. 곳곳에 놓인 다양한 소품이 공간의 격을 보여준다. 3 검도를 전공한 이답게 훤칠한 김슬옹은 대형 꽃 작업에 능숙하다. 

 

 

 

 

짭조름한 염장 대구에 산미를 더한 샐러드와 스페인의 흔한 가정식인 토르티야로 푸근한 밥상을 차렸다.  

 

소설가 천운영의 낮과 밤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17년 전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가 천운영은 첫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천운영은 자신의 스페인 음식점 ‘돈키호테의 식탁’에서 소설가에 이어 또 하나의 꿈을 이룬 셈이다. 계기는 이러하다. 4년 전,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말라가에 머물다가 <돈키호테>에 매료됐고, 그러다 책에 나온 음식의 목록을 만들어 400년 전 스페인의 음식을 찾아 나섰다. 처음엔 문학 기행으로 시작한 게 나중엔 문학과 스페인의 미식을 탐험하는 여행이 되면서 스페인 요리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한데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다. 10년 넘게 함께 산 반려견의 죽음이었다. “스페인에 다시 문학 기행을 떠나기 꼭 일주일 전이었어요. 죽기 이틀 전에 발작을 했는데 몸을 주물러주니 좀 괜찮아져서 계란프라이에 밥을 비벼 줬더니 아주 잘 먹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배변까지 시원하게 보고 이틀 후에….” 곧 떠날 것을 알았는지 곁에 있을 때 숨을 거둔 게 고마웠지만, 쉬이 달래지지 않는 슬픔은 “누군가에게 밥을 해줘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 다짐이 돈키호테의 식탁으로 실현이 되기까지 1년 반 남짓 걸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분명 노동이라고 말하지만, 늘 집들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의 소설을 읽거나 그와 가까이 지내는 작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든다. “식당을 운영하는 게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게 과연 좋은 선택이었는지…. 분명 다른 근육을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천운영이 차려준 밥상에는 스페인 사람이 숱하게 먹는, 그래서 저마다의 요리법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토르티야와 염장 대구 샐러드가 올랐다. 스페인의 집밥에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잘 모르지만, 이 푸근한 요리들은 스페인의 숱한 가정집에서 담소와 함께 테이블 위에 오를 것임은 분명했다. 언젠가 돈키호테의 식탁이 불현듯 문을 닫는다고 슬퍼하지 말지어다. 그때는 천운영이 다시 소설에 전념하고 싶어 미치기 시작한 때일 터이니. 

 

1, 2 소박한 스페인 식당에서 느낄 법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3 만화가 천계영이 선물한 오브제. 4 소설가, 그리고 요리하는 천운영. 

 

 

 

 

 

 

더네이버, 고메, 심야 식당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김잔듸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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