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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HBOR_Lifestyle

나는 걷는다

‘걷기’. 이 얼마나 쉽고 평범한 행위인가. 하지만 리베카 솔닛의 생각은 달랐다. 걷는 행위에 담긴 철학적이고 창조적인 여정, <걷기의 인문학>이다.

2017.10.18

그냥 걷기와 의미를 위해 걷기 
“수트로 배스는 꼭 찾아가봐. 너라면 정말 좋아할 거야.”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었을 때, 한 친구가 열렬히 그곳을 소개했다.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 그냥 걸어봐. 좋아할 거야.” 그래서 걸었다. 숲이 있었고, 절벽이 있었고, 버려진 유적 같은 수영장이 있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금문교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뒤섞여 몰려왔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지나갈 뿐, 호젓하다 못해 황량한 길이었다. 그러다 분홍색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유방암 퇴치를 위한 걷기 행사였다. 경찰도 핑크빛 리본을 달고 그들의 움직임을 돕고 있었다. 왜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캠페인을 하는 걸까? 사람들이 붐비는 피셔맨스 워프나 케이블카 주변으로 갈 것이지. ‘그냥 걷던’ 나는 ‘의미를 위해’ 걷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솔닛은 걷기에 대한 글을 쓰다 막히자 샌프란시스코 서쪽 해안을 걸었다고 한다. 내가 걸었던 길의 조금 북쪽이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쓴 책은 내가 여행길에 슬쩍 품은 물음을 인류의 오랜 물음과 연결시킨다. 수만 년이 넘는 인류 보행의 역사는 그 주제를 꾸준히 반복해왔다. 성지 순례, 미로 정원의 산책, 높은 곳을 정복하려는 등산, 흥겨운 대로의 행진, 금지된 길을 향한 탈출. 들숨과 날숨, 왼발과 오른발처럼 ‘그냥 걷기’와 ‘의미를 위해 걷기’가 번갈아 발을 내딛는다. 걷기는 그렇게 우리를 어딘가로 보내고 돌아오게 한다. 때로는 그냥 걷다가 어떤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의미의 씨앗을 사방에 흩뿌리기 위해, 낯선 곳으로 걸어가고, 그 길에서 동반자를 얻기도 한다. 솔닛 역시 반전과 평화의 길을 찾는 의미 있는 걸음을 통해 자신을 바꿔왔다. 하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위해 무작정 먼 거리를 행군하는 일에는 고개를 젓는다.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책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을 즈음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보았다. 검프는 어느 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 달렸다. 매스컴은 거기에서 의미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지만 검프에겐 어떤 이슈도 없었다. 나는 검프처럼 달릴 자신이 없다. 그러나 솔닛처럼 도시의 가장 한적한 곳을 찾아 걸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무작정 걷다 어떤 의미를 찾으면 더 오래 걸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집을 나서봐야겠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남자의 걷기와 여자의 걷기 
밤산책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밤에는 낮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북적이던 길은 고즈넉해지고 그저 지나가기 바빴던 풍경이 의미를 띤다. 밤공기는 확대경처럼 내게 작고 연약한 것을 보라 한다. 밤공기는 확성기처럼 산책의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야행성인 내게 밤은 무엇을 하든 적당한 시간이다. 목적과 효율은 자러 가고 틈과 공간이 남는다. 나는 밤공기를 가르고 밤공기는 내게 바람이 통하는 구멍을 내준다. 선선하고 명징한 밤바람에 세례 받는 시간. 그러나 밤산책은 일종의 투쟁이다. 가까운 이들의 걱정과 충고를, 의심스러운 눈길을 뚫고 나가야 한다. 밤산책은 위험한 동굴로 뛰어드는 일이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매번 기적 같은 일이다. 비교적 방범이 잘된 도시의 밤거리가 위험한 이유는 하나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 실비아 플래스는 이렇게 썼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리베카 솔닛은 이 책에서, 여자들의 걷기가 왜 제약받는지 분명히 말한다. “실제로 여자들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 그런 해석대로라면 여자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걷고,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남자의 경험을 위해서 걷는 셈이다.” 솔닛이 이 책에서 걷기의 역사를 살펴보며 거듭 확인하는 것은 여자들의 걷기 잔혹사다. 여자가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체포 가능한 범죄인 적도 있다. 길은 여자들의 공간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길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의도가 의심되는 ‘여자’의 몸으로, 나는 다른 여자들이 걸었던 길을 걷는다. 여성 혐오 범죄가 빈번한 요즘 한층 커진 걱정의 장벽 앞에서 중얼거린다. 내 걷기는 독립 투쟁과 같다고. 밤산책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더 특별하다. 남보다 더 제약받는 것이 당연한 삶에서 걸어 나간다는 것. 내 두 다리로.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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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션 / PHOTO / 김도윤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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