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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페라리 그 영광의 역사

수많은 사람이 페라리를 찬양하는 이유는 지난 70년간 오직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2017.10.13

마라넬로는 페라리 마을이다. 페라리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에 드라이빙 체험장이 있다. 마라넬로에서 자란 이 어린 친구도 나중에 젠틀맨 드라이버가 될지도 모른다.

 

가끔 나이를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호적에 늦게 올랐다거나 생일이 빠르다거나 핑계도 다양하다. 뭔가 열등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람뿐 아니라 브랜드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헤리티지에 무게를 더하고 싶을 때 창업주가 사업을 구상한 단계를 시작으로 보는 등의 수법으로 나이를 속인다. 반대로 나이를 줄이는 건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싶은 경우에 쓰이는 수법이다. 이성에게 많이 써먹는데, 그래서인지 페라리 앞에 서면 나는 열일곱 소녀처럼 얼굴이 불그스레 변하고 만다. 페라리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엥? 70년밖에 안 됐나? 하고 찾아봤더니, 엔초 페라리가 모데나에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한 게 1929년, 알파로메오의 워크스 팀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 1933년이다. 1939년에는 공작기계와 비행기 부품을 생산했고, 1940년에는 독자적인 레이싱카를 만들어 처음으로 밀레밀리아에 참가했다. 1943년에는 마라넬로로 공장을 옮겼고, 1947년에는 최초의 공도용 자동차인 125S를 만들었다. 페라리는 레이싱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회사면서도 페라리라는 이름으로 레이싱을 시작한 해가 아니라, 최초의 노란색 페라리 엠블럼을 단 125S가 생산된 1947년을 창립된 해로 여기고 있다.엔초 페라리는 125S를 마지못해 만들었다. 레이스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젠틀맨 드라이버들의 레이스 참가를 돕는 일로 처음 시작된 회사였고, 수익 모델은 레이스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부자들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페라리를 사랑하는 부자들은 레이스트랙뿐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멋지고 빠른 차를 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만든 게 125S였다. 엔초 페라리에게 ‘공도를 달리기 위한 차’란 그저 레이싱카보다 느리다는 의미일 뿐이었고, 그는 그걸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레이스에 사용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125S를 당시의 레이싱카와 거의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스펙을 갖추고 만드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레이싱카의 주류가 직렬 8기통이었음에도 125S가 더 정교한 1.5리터 12기통 엔진을 실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 혹은 종교
페라리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넬로는 페라리 모자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페라리 박물관을 보고 페라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페라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페라리 테스트드라이브 체험장에서 페라리를 직접 경험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F1이 열리는 주말이었다면, 이곳은 몇 배나 되는 인파가 몰렸을 것이다. 유럽의 레이스 팬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 서킷을 따라다니며 응원하는데, 그 숫자가 중국 관광객 저리 가라다. 그들 중에는 페라리 오너도 있고, 페라리를 손에 넣을 가능성은 적지만 그들의 정신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페라리의 창립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지난 9월 9~10일에는 그 모든 사람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페라리를 구입하고 수익을 내도록 만들어주는 핵심고객은 여전히 이탈리아와 영국, 독일, 프랑스의 귀족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새로운 차를 구입하는 고객이 아니라 페라리 헤리티지를 함께 만든 사람들이다. 미국 시장이 페라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것은 사실이고 중동의 부호들이나 중국의 신규 고객들도 무시할 숫자는 아니지만, 유럽의 페라리 애호가들은 이미 고객이라기보다는 가족에 가깝다. 이날 피오라노 서킷에 모인 수많은 클래식 페라리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는데, 그들은 대대로 페라리를 구입하고 수집하고 레이스 활동을 지원해왔다. 페라리 한정판 모델이 등장할 때 기존 페라리를 여러 대 구입한 경력이 필요한 이유도 더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신규 시장의 부호들에게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수도 있는데, 페라리라는 차가 워낙에 그들만의 리그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할 뿐 아니라 레이스에서 선보이는 이미지가 막강하다 보니 일반 팬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페라리처럼 자신들만의 차로 콩쿠르를 열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1940년대부터 시작해 레이싱카와 다를 바 없었던 1950년대의 페라리, 1960년대 미국 시장을 노리고 만들어진 풍요로운 GT, 1970년대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스포츠카들, 세계적인 슈퍼카 붐을 일으켰던 1980년대의 영웅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초고성능 슈퍼카까지. 다양한 연식과 모델이 모여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차를 정비하고, 어머니와 딸이 왁스로 광을 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페라리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내가 카메라를 가져가면 먼지를 닦고 보닛을 열어주거나 포즈를 취한다.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차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물론 보는 사람조차 즐거워진다. 이 콩쿠르는 가장 아름다운 차를 선정하는 게 목적이기는 하지만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아름다운 차들이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을 즐기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와 클래식카 경매 전문회사 RM이 함께하는 페라리 경매 행사였다. 250GT SWB가 790만 유로에, 1958년산 250 GTO 카브리올레가 470만 유로에 낙찰됐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알루미늄 보디로 만들어진 365 GTB/4는 180만 유로에 낙찰됐다. 생산이 발표되자마자 매진된 라페라리 아페르타 한 대가 이날 경매에 올랐는데, 830만 유로를 기록해 21세기에 생산된 차 중 가장 비싼 경매 낙찰가를 기록했다. 경매 수익금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이런 클래식카들이 경매에 나오는 이유는 형편이 나빠지거나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자식이 아버지가 평생 사랑했던 차를 그만큼 사랑해줄 수 있는 이에게 넘기고, 수익금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데이토나에서 열린 경매에서 700만 달러에 낙찰된 라페라리 수익금도 중부 이탈리아의 지진 피해자를 위한 성금에 기부됐다. 페라리 충성고객들에게 한정판 페라리는 재테크 대상이 아니라 헤리티지에 일조할 기회인 듯하다.  
페라리의 지난 70년은 승리와 영광의 역사였다. 엔초 페라리는 고객과도 자본과도 스스로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전 세계 티포시(페라리 열성팬)가 그 모습을 지켜봤고 기꺼이 동참해왔다. 그것이 바로 어떤 자동차 브랜드와도 다른 형태의 사업을 다른 형태로 지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빠른 차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빠른 차를 빨간색으로 칠한 후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70년간 자세를 바로잡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페라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앞발을 들고 하늘을 향해 발길질하는 자세를 취할 것 같다. 글_신동현(자동차 칼럼니스트)

 

 

 

 

 

모터트렌드, 자동차, 페라리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Ferrari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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