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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페라리식 감성의 결정체

가슴을 파고드는 울부짖음. 페라리의 그 전통적인 사운드는 마지막 자연흡기인 12기통 엔진이 지키고 있다

2017.10.12

이제 딱 하나 남았다. 페라리의 자연흡기 엔진 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다. 캘리포니아에 터보 엔진이 올라갔을 때만 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막내인 데다 실용성도 중요한 모델이니 말이다. 그런데 458 스페치알레가 내뱉은 단말마의 비명을 뒤로하고 터보 엔진의 488 GTB가 나왔을 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페라리 너마저 그러면 안 된다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터보 엔진의 페라리들이 이전의 자연흡기 모델들보다 더 빨랐던 거다. 힘이 세니 직선에서야 빠를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코너링과 랩타임마저 우월했다. 이유는 타보고야 알았다. 페라리가 만든 터보 엔진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주 많은 힘을 굉장히 정교하게 뿜어냈다. 터보 지체현상이 없다는 엔진은 많았지만 내 의도에 맞게 정확하게 힘을 내는 터보 엔진은 페라리가 처음이었다. 
그런 페라리 터보 엔진도 단 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다. 바로 사운드다. 488 GTB의 터보 엔진도 꽤 멋진 사운드를 낸다. 하지만 소프라노가 아닌 테너다. 묵직한 소리도 좋지만 아무래도 가슴을 파고드는 울부짖음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단지 더 희귀해지고 더 다가가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페라리의 전통적인 사운드는 마지막 자연흡기인 12기통 엔진이 지키고 있다. 현행 페라리 양산 라인업에서 12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은 페라리의 기함인 812 슈퍼패스트와 오늘 시승한 GTC4루쏘가 전부다.
GTC4루쏘는 페라리에서 아주 특이한 모델이다. ‘아직’ SUV가 없는 페라리에겐 그 역할을 대신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길이 4.9미터, 공차중량 1.8톤의 GTC4루쏘는 2도어 슈팅 브레이크 스타일에 제대로 된 4인승 실내와 사륜구동 시스템까지 갖춘 투어러 모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페라리 기준에 맞춘 이야기다. 4명이 편안하게 탈 수‘도’ 있다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노면이 미끄러워도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GTC4루쏘는 뼛속까지 페라리다. 그 페라리다움을 완성하는 핵심이 바로 F140 V12 자연흡기 엔진이다. 실린더 뱅크각이 65도인 특이한 설계의 F140 엔진은 6리터가 넘는 대배기량에도 8000rpm을 넘기는 초고회전, 초고출력 버전이다. 그나마 순하게 튜닝되었다고 하는 GTC4루쏘의 엔진도 레드존에서 불과 250rpm 전인 8000rpm에서 690마력을 낸다. 실로 엄청난 엔진인 셈이다. 
사실 이 차의 6.2리터 V12 엔진은 동생 GTC4루쏘T의 3.8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아주 간신히 따돌린다. 최고출력은 80마력 높지만 최대토크는 동생보다 6.4kg·m나 낮다. 게다가 동생은 최대토크를 3000rpm부터 뿜어낸다. 배기량이 훨씬 더 크고 실린더가 4개나 많은 까닭에 최고속도는 시속 345킬로미터로 더 높지만(동생은 시속 320킬로미터다) ‘제로백’ 차이는 0.1초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는 동생에게 없는 사륜구동 덕분일지도 모른다. 연비는 동생이 30퍼센트 이상 더 높다. 이성적으로 승부는 이미 끝난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물건이 어디 계산기만 두들겨서 고를 수 있는 물건인가. 페라리 같은 초고가 차들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들에겐 감성적 만족도가 중요하다. 그것을 끝까지 지킬 책임이 바로 기함급인 12기통 모델에게 부여된 것이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12기통의 세계는 범접할 수 없다. 8기통 엔진은 시동을 걸 때 ‘킹킹킹’ 하는 소리를 내지만 60도 간격으로 폭발하는 12기통은 마치 전기모터처럼 ‘이이잉~’ 소리를 낸다. 
연소실 안에 불이 붙는 순간 페라리 자연흡기 엔진은 특유의 고음으로 주변을 한 방에 정리한다. 페라리의 12기통 엔진은 12기통 특유의 우아한 회전과 페라리의 소프라노 사운드가 만난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GTC4루쏘의 운전석에 앉아 매끈한 12기통의 회전감각을 느끼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한 감성 자극이 있을까 싶다. 
GTC4루쏘의 달리기는 밀레니엄 전후의 황금기를 연상케 한다. 12기통 엔진의 출력 특성은 선형적이다. 가속페달을 밟는 양과 속도, 그리고 엔진 회전수에 비례해 출력이 곧게 상승한다. 따라서 생각보다 운전이 쉽다. 가속페달 조작에 따른 출력의 변화를 예상하기가 쉬워 상당히 높은 페이스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중저속 토크가 폭발적이지만 그 이후는 급격히 시시해지는 터보 엔진의 과장돼 있는 비선형적 출력 특성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건 페라리의 신형 터보 엔진도 마찬가지다. 
GTC4루쏘의 조종 감각은 의외로 날 것의 느낌이 강하다. ‘자칫 내가 먹잇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348 후기형이나 F355의 느낌이 약간 남아 있다. 그러나 초고속 영역이 되면 얼른 12기통의 힘을 다 쏟아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페라리의 투어러는 사실 ‘워프 머신’이다. 참고로 페라리는 아직 12기통 엔진에 터보를 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업가 마르키온네 회장도 페라리의 핵심은 확실히 아는 모양이다. 정말 다행이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페라리의 가속감각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갈 때는 등골이 서늘하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안정감이 높아진다.

 

 

 

 

 

 

모터트렌드, 스페셜, 페라리

CREDIT

EDITOR / 류민 / PHOTO / 최민석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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