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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Lifestyle

운전도 섹스도 이제는 매너다

여기 두 가지 매너가 있다. 도로 위에서의 매너와 침대 위에서의 매너, 어떤 쪽이든 매너를 지켜야 한다. ‘MANNERS MAKETH MAN’

2017.10.10

Scene #1. 출근길. 외곽 도로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맨 오른쪽 차로의 장사진에 차 한 대가 끼어든다. 짧게 비상등을 켜 고마움을 표한 끼어든 운전자나, 흔쾌히 간격을 벌려 그 차를 줄에 넣어준 뒤차의 운전자 모두 매너가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Scene #2. 푸른 잔디 펼쳐진 골프 코스. 홀컵에 공을 떨군 선수가 축구 선수 골 세리머니를 하듯 흥겨운 퍼포먼스와 댄스를 펼친다. 언론은 그 선수를 두고 팬들에게 매너를 지킨다고 표현한다.
두 장면 모두 매너를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되는 상황이다. 다만 의미가 조금 다르다. 첫 번째 장면은 전형적인 예의범절로서의 매너다. 누군가를 두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의 매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요구되는 기초 예절인 거다. 두 번째 장면으로 대표되는 매너는 행동거지나 자세, 태도를 가리킨다. 예컨대 어느 로커를 두고 “화끈한 무대 매너를 선보였다”고 표현할 때의 매너다.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면 (사회 통념상)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일반적인 예의·예절과는 거리가 있다.
<모터 트렌드> 편집부가 고고학적 가치 충만한 창간호 섹스 칼럼을 발굴해 내게 전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훌쩍 넘긴 12년 전 칼럼에서 나는 독자에게 ‘구수(口手)를 활용하라’고 충고했더라. 침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입과 손을 쓰라는 것은 예전 섹스 칼럼에서 즐겨 전도하던 지침이었다. 의욕만큼은 충만한 우리—남자든 여자든—에게 부족한 것은 매너라는 생각에, 가장 확실한 행동 강령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구수 타령만 한 게 없었다. 오늘날엔 더 이상 입과 손을 열심히 놀리라는 충고 따위는 필요치 않다. 테크닉과 스킬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계몽이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장면에서의 매너, 곧 섹스라는 경기 매너는 끊임없이 의식하고 시도하고 노력해야 할 태도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 섹스는 공연의 도구가 아니고 관중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파트너는 불특정 다수의 관중 모두를 합친 것보다 소중하다. 마침 내일모레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니, 나는 섹스에서도 전통을 재해석해보자고 제안하련다.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적은 수의 침실을 가진 집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가족과 살던 옛날 부부들은 언제 섹스할 기회를 포착했을까? 간단히 표현하자면 ‘단칸방에 육남매’라고 대표할 수 있는, 어려웠던 시절 대가족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했을 게다. 그들이 다른 가족 혹은 바로 그들의 자녀에 치여 온전한 부부만의 공간이 없었음에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섹스에 도달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과론에 의거해 ‘하늘을 보지 않은 채 별을 딸’ 수는 없는 일, 다산(多産)이 곧 증거다. 그러나 과연 어디서 어떻게?
단언컨대 그것은 섹스라는 활동을 특정 시간(심야)과 특정 장소(침실)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섹스는 밤에 침대에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라는 건데, 최근에 등장한 주장이 아니다. 레트로섹스(Retro-sex) 또는 일종의 섹스 복고주의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권하는 것은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보기’다. 먼저 물레방앗간 클리셰가 있다. 프라이버시 부재에 따른 절박함에서 시도된 부득이한 해결책이 오늘날에 와서는 매너리즘을 타파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좋아서가 아니라 연명을 위해 먹었던 개떡이나 수제비가 현대인들에게 별미가 된 것처럼. 물론 오늘날 방앗간을 찾는 우를 범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럴 때 강력하게 추천되는 공간이 호텔이고 모텔이다.
특히, 숙박이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일부 특화된 모텔은 다채로운 시설과 장비가 구미를 돋운다. 한때는 러브호텔이라고 불렀던 만큼 분위기 자체도 재미있다. 모던하고 근사한 곳은 그런대로, 키치의 극치를 달리는 곳은 또 그런대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건물의 익스테리어와 함께 빤한 의도가 느껴지는 객실의 인테리어에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도 감성적 전희로 작용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객실 문을 살며시 닫기까지,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방앗간에 숨어든 조상이 느꼈을 법한 스릴만큼이나 짜릿한 긴장감도 느껴진다. 이 모든 요소들이 심심해진 입맛을 되돌리는 맵싸한 별식의 양념이 되어주는 것이다.
필시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니, 야외는 또 어떨까. 상황 모델은 이렇다. 부부가 함께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의 동구 밖에서, 집에 돌아가봤자 둘만의 공간이 없음을 예감한 아내가 남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끈다. 무인지경의 산중 전답을 개간하다가 아내가 이고 온 새참으로 기운을 차린 남편이, 시부모와 아이들 점심을 챙기러 돌아가려는 아내를 잠시 만류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야외는 집 바깥의 공간을 총칭한다. 주거가 아닌 생업 공간도 포함된다. 오늘날이라면 상점이나 사무실 등의 업무 공간을 가끔은 용도 변경해보는 것도 좋겠지.
여러 식구가 침실을 공유하던 시절의 부부는 주택 내 모든 공간을 경기장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지금이야 은·엄폐 공간이 부족할 리 없지만 ‘집 안에서의 섹스 투어’는 여전히 효과 각별한 방법이다. 볕 좋은 일요일 느지막한 아침에 소파와 카우치에서 즐기는 께느른한 섹스도 좋겠고, 커피와 토스트와 베이컨 굽는 냄새를 맡으며 주방에서 벌이는 충동적인 섹스도 좋겠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희롱을 시작해 도어록 잠기는 삐리릭 소리를 신호음으로 현관에서 부분 탈의한 상태로 허겁지겁 치르는 섹스도 좋겠고, 모처럼 욕조에 더운물 받아놓고 신혼 때 이후로 잊었던 혼욕의 즐거움을 리바이벌해보는 것도 좋겠다. 
가수와 레이스 드라이버, 스포츠 선수에게만 무대 매너가 필요한 게 아니다. 섹스에서는 우리 모두가 (적어도 상대방에게는) 프로라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어디든 무대로 삼을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화끈한 무대 매너를 촉발하는 방아쇠로도 작용할 거다. 섹스라는 활동에 덧씌워진 시공(時空)의 제약을 벗겨내면 그만큼 더 짜릿해지는 법이니까. 

 

 

 

 

모터트렌드, 12주년 특집, 매너

CREDIT

EDITOR / 김인하 / PHOTO /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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