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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자

속박과 제약 속에서 비로소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디자이너, 양수인.

2017.09.05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소격동으로 향하는데, 늘 설렌다. 이유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MoMA,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쉼터, 그늘, 물’을 주제로 한 설치 프로젝트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우승자의 작품은 미술관 앞마당에 전시되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리는 풍경이 된다. 그 넉넉한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내게 소소한 연중행사가 되었다. 해가 난다는 예보와는 달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8월의 어느 날, 올해의 우승자 양수인과 그의 작품 ‘원심림(Centreefugal Park)’을 마주했다. 바람의 힘을 실어 빙빙 돌아가는 초록의 설치물이 빚어내는 장면은 자연과 비자연의 절묘한 경계에 서서, 생경함과 친숙함을 모두 담고 있었다.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원심림의 다채로운 모습. 

 

원심림 앞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 아이와 디자이너 양수인의 모습. 

 

무엇이든 만듭니다
“?” 
양수인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다가 머릿속에 피어난 물음표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건축, 공공미술, 디자인, 영상, 광고, 브랜딩, 마케팅 그리고 로봇…. 그가 해온 작업에는 경계도, 그 어떤 한계도 없어 보였다. 포트폴리오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를 이해하게 되기는커녕, 점점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맹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저는 디자이너예요. 한 번도 나 자신을 작가로 칭해본 적이 없어요. 낯간지럽잖아요(웃음). 아티스트가 스스로 본인의 작업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면, 디자이너는 철저히 의뢰에 따라 움직이죠. 저는 문제 해결의 당위나 의뢰가 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별 흥미가 없어요.”
‘삶것(Life Thing)’이라는 다소 기묘한 스튜디오 이름에서 소장 양수인이 추구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삶을 위한 이것저것.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집단이다. 그 가운데 건물은 ‘이것저것’ 중 하나일 뿐. 디자인은 곧 문제 해결이라는 신념 아래, 양수인은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영역을 넘나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건축에 뿌리를 둔 그의 포트폴리오에 건축과는 무관해 보이는 작업이 수두룩한 이유다. “문제를 꼭 공간으로만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모순이에요.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의 80% 정도는 해당 분야의 외부에서 온다는 말이 있죠. 자기 분야에 정통한 채로 다른 분야에 열리면 새로운 접근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에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 당선작인 ‘원심림’은 쉼터, 그늘, 물을 주제로, 도시인에게 가치 있는 팝업 건축물이 필요하다는 문제 상황에 회신한 양수인의 카드다. 숲을 의미하는 ‘원시림’과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의 생장 동력인 ‘원심력’, 그 두 의미를 함의하는 원심림은 원심력을 이용해 부풀어 올라 펼쳐지는 나무 형태의 구조체다. 나무이면서 나무가 아닌, 이 기묘한 구조체가 미술관 마당에 여럿 세워져 하나의 숲을 형성하는 원리다. 회전하는 속도에 따라 우산 형상으로 변하는 이 원심목은 가볍고 경제적이며 설치가 용이하고 (비교적)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는 ‘원심림’을 구상하기에 앞서 기존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작을 꼼꼼히 공부했다. 작품을 별개로 바라보았을 때의 완성도나 의미도 중요하지만, 실제 미술관 앞마당에 놓였을 때 직면한 문제들-이를테면 마당의 돌을 깡그리 들어낸다든지, 무게가 상당해 설치에 애로사항이 있다든지-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환경’이라는 단어도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압박하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건축물은 어차피 친환경적일 수 없다며, 어떻게 하면 덜 ‘반친환경적’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관건은 무게였다. 무게를 과감히 덜어낸 건축물이 과연 가능할까? 바람개비처럼 작은 것을 돌리는 일부터 시작해 점점 규모를 키워가면서 형태도, 소재도 변화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에 안착했다. 시원한 초록색을 입은 시멘트 미장용 플라스틱 메시 소재로 만든 나무는 아주 잔잔한 바람에도 가뿐하게 돌며 아름다운 숲의 일부로 변신한다. 돌면서 비로소 완연한 형태를 갖추는 나무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원심림’ 앞에 선 사람들을 단순히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불러들인다. 해의 위치에 따라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벤치 역시 놀이의 하나로 작용해 참여를 종용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공의 나무 아래 서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쉽고 평등한 설치 작품으로서의 ‘원심림’의 가치를 되새긴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아파트와 폐공장 복합 문화 공간의 설계 모형.

 

훈련과 제약의 상상력 
원심림을 비롯해 육군사관학교 내 원불교 교육 시설, PKM 갤러리, 고개집 등 그간 양수인이 해온 공간 작업을 살펴보면 다양한 영역만큼이나 방식이나 결과물도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그의 스타일을 하나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늘 새로운 시도 안에서 실험과 도전을 거듭하는 그는 의외로 학창 시절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건축학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차르트나 서태지가 아닌 바에는, 창의성도 결국 훈련으로 된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그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무한한 제약 조건 안에서 의뢰인의 요구를 모두 현실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피어난다. 의뢰인의 요구가 많고 타이트할수록, 비현실적 상상이 더해질수록. 속박과 빡빡한 제약 속에서 비로소 상상력의 나래를 펼친다. 마치 벨트를 채워야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처럼.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그가 의뢰인 앞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무엇이든 들어드린다’는 마음가짐의 이 디자이너 앞에서, 건축주는 너그러운 아빠를 둔 철부지 딸, 혹은 능수능란한 심리상담가 앞에 놓인 환자가 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깊은 공감으로 응대하는 대신 건축이라는 기호학 안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아 제시한다는 것이다. 건축가로서 양수인만의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보다는, ‘양수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그런 맥락에서다. 
닥치는 대로. 그는 늘 그랬다. 닥치는 대로 작업하면서 문제 해결 방법에 어떠한 한계를 두지 않는 것. 양수인은 현재도 다양하고, 복잡다단하고, 터무니없는 숱한 의뢰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는 인천 폐공장에 더하는 복합 문화 공간 건물, 한 동짜리 아파트, 신해철을 추모하는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이자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말인 ‘이상한’ 일들이 그에게 언제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를 일이다.   

 

 

더네이버, 젊은건축가, 양수인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이재안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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