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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더 비싸게 주고 너를 살 이유는?

시빅 Si도 훌륭한데 굳이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타입 R을 사야 할 이유가 있을까?

2017.09.01

어느덧 10세대 10세대까지 선보인 혼다 시빅은 6세대에 타입 R이, 8세대에 Si가 최초로 등장했다. 둘 다 시승해봤는데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름은 혼다 마니아들의 충성심과 욕망을 자극한다. ‘Si’가 그렇다. 반면 ‘타입 R’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유럽의 핫해치 광팬들이 시빅 타입 R을 만끽하는 걸 본 지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마침내 미국에도 이 충격적인 도로 위 로켓이 당도했다. 그리고 시빅 타입 R이 시빅 Si보다 조금 더 강력하고 단호하며 거침없다고 생각했다면 잘못 판단한 거다. 조금이 아니라 훨씬 그렇다. 물론 가격 차이를 보면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더 비싼 값을 치르고 타입 R을 살 가치가 있을까?

 

시빅 Si: 예리한 회칼 같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조금 더 빨리 달려서 훨씬 나은 Si가 되자’고 외치던 혼다의 기조는 동급 최강이 되고자 했던 다른 브랜드에 귀감이 됐다. 쿠페와 세단 모두 선택 가능한 신형 Si 역시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줘야 한다는 임무를 완수했다. 일반형 시빅과 비교하면 서스펜션은 좀 더 단단하다. 하지만 동일하게 이뤄진 보강 작업 덕분에 기본형 Si도 두 가지 모드를 지원하는 적응형 댐퍼를 갖추게 됐다. 일반과 스포츠 모드 사이에 승차감이나 핸들링 특성의 차이는 미묘하다. 단, 거친 도로를 달리거나 빠르게 속도를 높이거나 세차게 코너를 공략하면 다르다. 정교하게 연마된 날이나 서슬 퍼런 칼로 토마토를 자르는 것처럼, 시빅 Si를 압박하거나 엉망진창으로 몰아넣기 전까지는 뚜렷한 차이를 알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형 혼다 Si는 가장 날카로운 회칼 혼야키같다.


본격적으로 운전할 때 시빅 Si가 반응하고 느껴지는 방식은 인상적인 중립 성향의 핸들링이다. 예상하기 쉬웠고 약간의 언더스티어를 즐길 수 있었다. 일부 회전 구간에서는 무게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하는 트레일 브레이킹을 사용하며 매우 쉽게 뒤가 밖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 구조의 앞바퀴굴림차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무적의 자세제어시스템은 스포츠 모드에서 한계를 매우 높게 가져간다. 거의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다.


개선된 듀얼 피니언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말끔한 도로에서조차 지나치게 무겁고 꿈틀꿈틀 움직인다. 그럼에도 바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방향이 정밀하게 제어돼 코너 중반에서도 라인과 자세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장치가 들어간 차라면 이쯤은 다 할 수 있다.

 

최신식 운전석 Si는 쿠페든 세단이든 다양한 전자장비가 들어간다. 10개의 스피커로 450와트 출력을 내는 오디오는 HD 및 위성 라디오를 지원하고 USB와 블루투스 연결도 가능하다. 여기에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들어갔다.

 

이 차급에서 시빅 Si가 독보적인 점은 기계식 차동제한장치(LSD)에 있다. 대부분의 접지력을 확보한 앞바퀴에 토크를 보낸다. 그 결과로 MT 8자 테스트에서 25.4초라는 경쟁력 있는 시간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쉐보레 카마로 RS와 폭스바겐 골프 R, 마쓰다 MX-5 클럽과 비슷한 수준이다.


신형 Si의 직렬 4기통 1.5리터 터보 엔진은 가까스로 200마력을 넘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극은 엔진회전수 중반쯤 터져 나온다. 26.5kg·m의 토크가 쏟아지는 2100~5000rpm이다. 테스트 트랙에서 우리는 레드라인인 6500rpm이 아니라 5700rpm에서 변속할 때 가속이 0.5초 정도 빠르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벼운 클러치다. 페달이 위로 올라오는 사이 동력이 맞물리는데, 그 시점이 모호하다.


명백한 것은 2017년형 시빅 Si의 가치다. 세단이든 쿠페든 스타일에 상관없이 2만4775달러면 우수한 섀시와 고출력 엔진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시빅 EX-T와 비교하면 비슷한 옵션에 역동성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과 2400달러 비쌀 뿐이다. 이 정도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Si다.

 

시빅 타입 R: 이거 뭐 거의 경주차네
캐나다 퀘벡주 몽트랑블랑 바로 남쪽을 지나는 외딴 364번 도로는 마치 캐나다의 뉘르부르크링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이 뉘르부르크링인 듯 몰아붙였다. 이 길은 오르내리는 구간과 산마루,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깊은 코너, 한쪽으로 기울었거나 포장이 고르지 않은 도로 등 진짜 뉘르부르크링처럼 다양한 구간이 신나는 조화를 이룬다.


혼다 시빅 타입 R은 그 코스들을 완벽하게 정복해 나갔다. 엄청난 속도와 칼 같은 제어는 마치 제조사에서 만든 공도 주행이 가능한 경주차 같았다. 혼다가 만든 GT3 RS는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영국 스윈던에서 만든 타입 R은 앞바퀴굴림형 양산차 중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가장 빠른 시간인 7분 43초 80에 주파했다. 한정 생산된 폭스바겐 골프 GTI 클럽스포츠 S를 무려 3초 이상 뛰어넘은 기록이다. 

 

타입 R은 시빅 해치백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앞바퀴를 통해 306마력의 힘과 40.8kg·m에 달하는 토크를 쏟아낸다. 이 과격한 힘 때문에 운전대가 휙 돌아가는 건 아닌지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타입 R의 앞바퀴에 들어간 나선형의 기계식 차동제한장치와 두 개의 축을 추가한 타입 R 특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 덕분에 급가속 시 운전대가 한쪽으로 쏠리는 토크스티어가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여기에 알루미늄 관절을 넣은 새로운 시도로 조향축을 댐핑 스트로크로부터 분리시켰다. 덕분에 스로틀을 활짝 열어도 차가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달려 나간다. 이건 뭐 믿기 어려울 정도다.


뒷바퀴에 들어간 멀티링크 서스펜션 역시 타입 R 고유 부품이다. 더 단단해진 안티롤 바와 스프링, 부싱은 자세를 바로잡고 제어가 원활하도록 돕는다. Si처럼 타입 R의 솔레노이드 밸브 적응형 댐퍼는 매우 다양한 조건에서도 차체를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타입 R의 것이 좀 더 똑똑하다. 댐퍼 스트로크와 중력가속도 센서에서 얻은 정보로 더 나은 적응성을 보이고 보다 세밀하게 제어된다.


즉각적이고 재빠른 조향은 듀얼 피니언 전자 보조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보강해 넣은 덕분이다. 조향비도 가변적이다. 끝으로 갈수록 조향각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각각의 주행 모드에 따라 조향감도 달라진다. 솔직히 주행모드는 +R, 조향모드는 컴퍼트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 운전대에 무게감이 더해지면서 앞 타이어로부터 전달되는 감각이 함께 무뎌졌기 때문이다. 충분히 검증된 섀시이기에 코너의 정점에서도 운전대를 더 꺾어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만일 그런데도 운전자가 굳이 운전대를 더 돌렸다면 차의 앞과 뒤 모두에서 나타날 극도로 정밀하고 직관적인 반응에 직면하게 될 거다.


자연흡기 브이텍(VTEC) 엔진의 매력은 회전수를 8000rpm까지 올렸을 때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었다. 하지만 터보가 들어간 I브이텍 엔진은 야수 같은 매력을 잃었다. 그래도 엔진회전수 6500rpm에서 최고출력을 분출하고 2500~4500rpm에서 최대토크를 뿜어낸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i브이텍 직분사 엔진에는 과급압 0.57바의 터빈이 더해졌다. 아울러 기어가 몇 단에 들어가 있든 대부분의 엔진회전 영역에서 차를 몰아붙일 수 있다. 시빅 Si의 엔진과는 다르게 타입 R은 엔진회전수가 약 3000rpm을 넘어서면서부터 한계회전수인 7200rpm까지 꾸준하게 힘을 쏟아낸다. 세 개나 뻗어 나온 배기구는 불행하게도 그리 특별한 소리를 들려주지 못한다. 엔진 회전 속도에 따라 다르긴 한데 낮은 회전수에서는 뒤에서 조그맣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엔진회전수 4000rpm에서는 실내에서도 살짝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반면 높은 엔진회전수에서는 엔진룸과 실내 사이에 있는 격벽으로부터 상당히 큰 흡기음을 들을 수 있다.

 

최고의 시트 지금껏 본 중 최고의 스포츠 시트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빅에 들어간 시트보다 5.4킬로그램이나 가볍다.

 

하나로 이뤄진 경량 매스 플라이휠 덕에 스로틀을 열어 엔진회전수를 거침없고 재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최종 감속비를 많이 높여 어떤 기어 단수에서든 시빅 Si보다 훨씬 재빠르게 움직인다. 변속은 기대만큼이나 매끄럽다. 하지만 시빅 Si의 6단 수동변속기와는 다르다. 타입 R의 경우 추가된 100마력과 15kg·m의 토크를 받아낼 수 있도록 강화됐다. 타입 R의 클러치 페달은 조작감도 좋고 동력이 맞물리는 시점을 알아채기 좋은 무게감을 가졌다. 또한 기어 단수를 내릴 때 적절한 엔진회전수로 맞춰주는 프로그램이 혼다 최초로 들어갔다.


무게를 1414킬로그램으로 여겼을 때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해보면 1마력당 4.7킬로그램이다. 경쟁모델인 폭스바겐 골프 R의 5.2킬로그램보다 가볍다. 반면 포드 포커스 RS의 4.5킬로그램보다는 약간 무겁다. 포커스 RS와 폭스바겐 골프 R은 모두 론치컨트롤이 들어갔다. 정지 상태에서도 높은 엔진회전수로 고정해 빠르고 강하게 출발하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이를 사용하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시간은 6초 미만이다. 타입 R은 론치컨트롤이 없다. 1단에서도 엔진회전수를 3500rpm 이하로만 허용한다. 이때 타이어가 드라이브 라인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클러치를 꾹 밟고 있어야 한다. 물론 최상의 출발은 클러치를 얼마나 잘 조작하느냐에 달렸다.


타이어는 컨티넨탈 스포트 컨택트 6(245/30R20)이 기본이다. 트레드웨어는 280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바닥에 착 달라붙는다. 시빅 Si의 인상적인 횡가속 수치도 뛰어넘을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혼다는 참 좋은 차야. 타이어와 브레이크만 빼면”이란 비아냥은 이제 듣지 않을 것이다. 앞에 브렘보의 4피스톤짜리 캘리퍼와 구멍을 뚫은 디스크를 넣었다. 타입 R은 트랙 데이에서 다른 차들을 따돌리는 차가 될 것이다. 

 

과연 1만 달러를 더 주고 시빅 Si가 아닌 타입 R을 사는 게 맞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사야 한다. 물론 평균 이상으로 향상된 성능을 보여준 Si의 진가도 충분히 확인했다. 하지만 타입 R이 설명하기 어려운 규모에서 여전히 더 낫다. 경주차를 상대할 수 있는 공도용 차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과 +R 세팅에 의한 말도 안 되는 고속 안정성 및 제어 능력은 타입 R을 포커스 RS나 골프 R은 물론 그 밖에 다른 혼다 모델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시빅 타입 R은 경쟁 모델과 붙어 직선주로에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뉘르부르크링에서 기록을 세운 것처럼 트랙에서는 다른 차들을 뒤로 줄 세울 거다. 옛날 일본 만화 같은 스타일의 겉모습만 수용할 수 있다면 아마 실제 당신의 능력보다 나은 운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혼다에는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고성능차가 없었다. 마침내 타입 R로 우리의 인내심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글_Chris Walton

 

모터트렌드, 혼다, 시빅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Brian Brantley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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