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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고속과 과속 사이

자동차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는데 우리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30여 년 전 그대로다. 이를 상향 조정하고 이용 요금을 소요 시간 기준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2017.08.07

이든이가 뛰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걷기보다 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넘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달리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공원을 헤집고 지친 기색도 없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발이 꼬이며 넘어진다. 아이가 걷는 속도는 대략 시속 2킬로미터,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속도는 어른의 빠른 걸음과 비슷한 시속 6킬로미터 정도니까 녀석에게 시속 6킬로미터 이상은 아직 과속인 셈이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달리기에 적합한 신발을 스스로 동여맬 줄 아는 시기가 되면 과속이었던 이 속도가 갖는 의미도 서서히 변화할 테다. 따라서 속도에 대한 정의는 어느 정도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드라이브를 하다 우연찮게 개통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구리~포천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새로 포장을 마친 도로는 노폭이 넓고 노면은 평탄했으며 커브 구간마저 시야가 좋았다. 터널 구간 역시 적절한 조도를 유지해 외부 구간과 다른 주행 감각을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 표지가 보이자 왠지 모를 부조화가 기억을 자극했다. 30여 년 전, 꼬마였던 내가 기억하던 당시 고속도로 풍경은 지금과 무척이나 달랐지만 제한속도 표지판의 숫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는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소개됐다. 이는 당시 고속도로라는 위용적 존재를 잘 드러낸 숫자였다. 몇 년 후에나 등장한 현대 포니는 부서져라 내달려야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을 수 있었다. 고속 주행이라는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도 아주 적었다. 제한속도까지 속도를 올리면 전방 시야가 몽롱해진다는 경험담도 돌았고 세 자리 속도로 주행한 사실이 당시 드라이버들의 무용담이 되곤 했다. 47년 전,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의 경부고속도로는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행위가 말 그대로 과속이었다. 다행히 누구도 제한속도를 초과해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자동차 제조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동차 회사는 더 빠르면서도 안전한 자동차를 개발해왔다. 최근 출시한 스팅어 GT는 순정으로 시속 270킬로미터를 돌파할 정도로 강력하고, 체감 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쯤 낮게 느껴질 정도로 안정적이다. 낮은 출력의 경차들도 시속 120킬로미터에서 한없이 여유로운 주행성을 보인다. 보디 강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타이어 제조 기술과 첨단 전자제어 안전장비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 다른 국가들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어떨까? 미국은 통상 시속 130킬로미터 내외이고 시속 136킬로미터(시속 85마일)인 곳도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대부분 유럽 국가는 시속 130킬로미터 수준이고 독일에는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도 있다. 자동차 보급이 비교적 늦은 중국은 시속 120킬로미터, 크로아티아나 아랍에미리트 등의 고속도로는 시속 140킬로미터의 제한속도로 운영한다. 막연히 그 나라들의 도로 시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해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제한속도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그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그렇게 달리지도 않는다. 제한속도는 차량의 성능과 도로의 설계상 허용 속도 등을 기반으로 안전 주행에 무리가 없는 수준에 상한선을 그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속도로도 제한속도를 상향 조정하되, 주행속도에 대한 결정권은 각 운전자의 책임 강화와 경제적 비용 기반으로 선택하게 두는 건 어떨까 싶다. 가령 고속도로 진출입 지점 간 통과 소요 시간을 기준으로 해당 구간을 더 빠르게 사용한 이에게는 초과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반대로 기준 속도보다 느리게 달린 운전자에게는 정상가격보다 할인된 요금을 받는다. 사고 발생 시에도 주행속도에 따라 책임의 가중치를 부과한다. 속도 가변형 요금 체계는 고속주행으로 인한 도로 보수나 배기가스 처리에 대한 추가 비용도 확보할 수 있다. 빨리 달릴수록 통행료와 더불어 연료비 지출도 증가하므로 경제적으로 최적인 각자의 안전 속도를 찾게 된다. 아울러 속도 편차를 둔 차량끼리 원활하게 지날 수 있도록 차로 이용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이로써 시간과 비용, 안전을 고려한 속도의 합리적 판단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이라고 모두가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지 않는다. 이든이가 운전대를 잡을 때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얼마일까?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모터트렌드, 자동차칼럼, 고속과과속사이

CREDIT

EDITOR / 강병휘 / PHOTO / 최신엽(일러스트레이션)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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