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여름인지 겨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날, 그녀는 유유히 내 앞을 지나갔다. 어지간하면 곁눈질로만 훔쳐보는데 그땐 가던 길을 멈추고 몸까지 돌려가며 지켜봤다.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와 늘씬한 허리 라인에 침만 꼴깍 삼켰다. 그러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잊으면 안 된단 생각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길바닥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찍어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녀의 이름은 메르세데스 AMG GT였다.

우리나라만큼 비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도 드물다. 사진 찍을 때 ‘나만 얼굴 크게 나왔어. 다시 찍자’라고 말하는 건 일상이다. 얼굴 크기를 줄일 수 없다면 비율이 좋아 보이도록 다리 길이를 늘린다. 많은 멋쟁이들이 발목이 부러질 것 같아도 굽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애인에게 “오늘 비율 되게 좋아 보인다”라고 말해보라.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게 분명하다.

AMG GT의 뒷모습이 매혹적이었던 이유 역시 비율 때문이다. 메르세데르 벤츠의 외장 디자인을 총괄한 로버트 레스닉은 AMG GT를 “비율이 전부인 차”라고 평했다. 벤츠가 전 차종에 걸쳐 적용 중인 ‘극단적인 곡선’ 개념이 반영됐기 때문에 차체 어디에서도 직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신체 건강한 20대 남성으로서 곡선 가득한 AMG GT를 보고 육감적인 느낌을 받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율에 대한 탐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율은 매우 중요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게 ‘황금비율(1:1.618)’이다. 고대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부터 시작해 파르테논 신전, 비너스상, 다비드상을 거쳐 최근엔 신용카드와 아이폰에까지 황금비율이 적용됐다. 더 나아가 성형외과와 주식투자에서도 황금비를 이용해 이익을 낸다. 

그렇다면 비율이 전부인 차 AMG GT의 뒷모습에도 황금비가 숨어 있을까? 직접 재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십수 군데를 이리저리 재어보아도 찾지 못했다. 가장 근접한 수치는 차체 높이(1300mm)를 엠블럼 정중앙 높이(820mm)로 나눈 1.58이었다. 내친김에 다른 차들도 재어봤다. 뒤에서 봤을 때 가장 넓은 부분과 좁은 부분의 비를 구했다. 무작위로 조사한 10대 중 아반떼(AD)가 황금비에 가장 근접했다. 황금비와 가장 동떨어진 차는 페라리 488이었다.

황금비에 따르면 아반떼가 페라리보다 아름다운 차여야만 한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비너스상과 다비드상이 황금비율이니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지만, 아직까지 페라리보다 아반떼의 뒤태를 극찬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이 결과에 수긍할 수 있나?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사실 파르테논 신전, 비너스상, 다비드상, 신용카드, 아이폰은 황금비율이 아니다. 비너스는 1:1.55, 다비드는 1:1.53이다. 아이폰 디자이너는 황금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온 걸작들에는 황금비가 대부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니 아반떼가 페라리보다 아름답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지 않아도 된다. 

황금비율이 허상이었다고 분노할 필요까진 없다. 여전히 황금비율은 존재하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는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고 말하며 의도적으로 인체 비례와 황금비를 이용한 건축물을 선보였다. 유니테 다비타시옹과 르 토로네 수도원이 그 예다. 토요타 엠블럼, 바비 인형도 마찬가지로 황금비율을 사용했다. 아, 지금 읽고 있는 <모터 트렌드>에도 황금비가 숨어 있으니 찾아봐도 좋다. 

GM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묻다
Q1  자동차 디자인에 황금비율(1:1.618)이 적용된 사례가 있나? 
예전부터 황금비율은 자동차 디자인에 활용돼왔다. 대표적으로 애스턴마틴 라피드가 있다. 애스턴마틴은 황금비율을 적용한 디자인을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한다. 예전에는 이런 시도가 더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최근에는 자칫 너무 안정적일 수 있는 황금비율보다는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 우선시되는 추세다.

Q2  자동차 디자인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비율이나 공식이 있나?
특별히 적용하는 비율이나 공식은 없다. 금기 하는 비율은 있는데, 5:5 비율이 그렇다.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거의 죄악시되는 수준이다. 가장 정적이고 길이를 짧아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선도 같은 이유로 지양한다. 차는 평면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모든 각도에서 전부 최적의 비율로 보이게 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Q3  자동차 뒷모습을 디자인할 때 특히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당연히 비율이다. 1:1.618의 황금비율이 아니더라도 시대에 따라, 차종에 따라, 제약을 피해 최적의 비율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디자인 과정에서 비율을 조율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Q4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뒷모습을 고른다면?
포르쉐 911. 뒷모습을 이야기할 때 911을 빼놓을 수 없지 않나. 901부터 991까지 뒷모습의 진화 과정을 보고,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뇌가 들어 있을지 생각하면 경이로울 뿐이다. 거의 모든 부분을 선 없이 순수한 형태로만 빚어냈기 때문이다. 비율이 자동차 디자인에서 거의 전부라고 각인시켜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AMG GT도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모터트렌드, 자동차비율, 디자인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