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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차박과 함께한 하루

처음에는 일출을 보기 위한 도구로 차박을 선택했지만, 남는 건 차박과 함께한 하루였다

2017.08.01

그랜드 체로키는 오프로드 주행 능력이 뛰어나 어디든 가서 차박 할 수 있다. 단,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가지 말 것. 들어가기는 쉬울지 몰라도 나오긴 어렵다.

 

“저는 차박 할 겁니다.” 양양으로 장소가 정해졌을 때 내 머릿속에 스친 건 해 뜨는 바다였다. 한 번도 해 뜨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걸 위해 동해로 간 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다. 보통 일출 보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날씨가 흐려 못 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중 맑은 날에 해가 뜨는 날은 고작 50일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운이 나빠서도 아니고 아예 일어나지 못해 본 적이 없다. 파란 바다를 보면 자연스레 녹색 술병이 생각났다. 바다가 주는 축복인 해산물을 술과 함께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강인한 정신력의 사람 같았으면 술을 먹었어도 기어코 봤겠지만 내 정신력은 말캉한 마시멜로다. 


“해 뜨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으면 바다 앞에서 텐트 치고 자면 되겠구먼.” 말이 쉽다. 바닷가 앞에서 텐트 치고 자는 건 엄청난 노력과 고난을 요구하는 행위다. 텐트를 치는 것부터가 고행이다. 아무리 24개월 육군 만기 전역했더라도 텐트 치는 건 여전히 어렵다. 텐트를 쳤다고 치자. 자야 하는데 잠들 수가 없다. 밤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해풍으로 텐트가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텐트 안에서 밤바다의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편히 잤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마 그 안에선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텐트 안으로 들어온 모래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겠지. 


하지만 차박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일단 텐트를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테일게이트에 연결하는 차량용 텐트를 결합하면 단 5분이면 끝난다. 차가 크다면 차량용 텐트도 필요 없이 뒷좌석을 폴딩한 후 자면 끝이다. 땅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올 일도 없고 격렬한 바닷바람에 차가 흔들릴 일도 없다.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기에 가장 간편하면서도 최선의 방법이었다.


차박을 위한 차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다. 하늘이 해 뜨는 걸 보라고 도와주는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차박을 위한 차로 점찍었던 차가 지프의 대형 SUV인 그랜드 체로키였다. 차박을 위해선 그랜드 체로키의 넓은 공간이 너무나 필요했다. 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는 얘기다.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트렁크 입구부터 조수석까지 완벽하게 평평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그랜드 체로키는 트렁크 입구에서 조수석까지 길이가 2미터 정도 된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나 같은 장신(?)도 몸을 누이기에 좀처럼 부족함이 없다. 너비까지 충분해 두 사람이 몸을 치대지 않아도 넉넉하게 잘 수 있다. 그렇기에 그랜드 체로키에서 남녀 커플이 함께 차박을 하는 건 반대다. 그들에겐 더 아늑한 레니게이드를 추천한다.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기사문해변은 양양 하조대보다 캠핑하기가 좋다. 하조대에 있는 차박 명소를 가보니 해수욕장 개장으로 차의 진입을 모두 막았다. 텐트조차도 칠 수 없다. 녹색창에 기사문을 검색하면 조금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바로 검색 결과에 뜬 ‘기사문해변캠핑장’이다. 해변이면 해변이고 캠핑장이면 캠핑장이지 기사문해변캠핑장은 또 뭔가? 기사문에 가보면 양양의 다른 바닷가보다 텐트가 많이 보인다. 해수욕장 앞에도, 방풍림 뒤에도 텐트들이 즐비하다. 그랜드 체로키 역시 다른 텐트들과 함께 방풍림 뒤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어 차에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면 무료로 텐트를 칠 수 있지만 휴가철의 경우 텐트 크기에 따라 1만~2만원의 자릿세를 내야 한다. 아깝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자리는 캠핑하기 좋게 땅을 다져놨다. 화장실도 24시간 개방해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또 간단하게 불도 피울 수 있다. 음식을 보충할 수 있는 편의점도 근처에 있다.


그랜드 체로키의 테일게이트를 열어 자동차용 텐트를 연결하고, 가지고 온 캠핑용품을 꺼냈다. 차박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 갖출 필요가 없다. 확실한 목적에 따라 짐을 꾸리면 된다. 우리는 밥 해먹을 생각도, 불을 피웠다고 해서 고기를 구울 생각도 없다. 모닥불 하나 피워놓고 이야기 나눌 만한 자리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갖고 온 짐을 풀어 헤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불을 지피는 동안 우리 옆에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캠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짐이 달린 모터사이클이 있었다. 그들은 7번 국도를 모터사이클을 타고 종주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고성부터 내려오는데 오늘이 그 위대한 여정의 첫날 밤이라고. 그들은 조그만 코펠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워 녹색 이슬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울에서 고성까지, 또 고성에서 양양까지 먼 길을 달려온 그들이었다. 


포토그래퍼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음악을 켤 필요도 없었다. ‘스으으으슥, 슥으으으스.’ 쉴 새 없이 파도가 만들어내는 배경음에 준비한 보리 음료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어두운 밤 바닷가 앞에 피워놓은 불이라는 게 참 묘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나누니 말이다. 수련회에 온 어린 날의 나처럼 마지막엔 눈물을 흘려야 이 시간이 끝날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텐트들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우리도 그랜드 체로키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다. 남자와 차에 누으니 기분이 묘했다. 귓가에선 계속 파도 소리가 들리니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내일은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포토그래퍼에게 물었다. 잠시 말이 없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든 안 보든 그게 중요한가요? 일출 핑계로 멋진 차 타고 양양에 와서 이렇게 좋은 시간 보내면 되는 거죠. 여행도 떠나기 전의 준비할 때가 더 좋잖아요. 오늘도 그럴걸요. 내일 해 뜨는 걸 봐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건 해를 보려고 차박 한 오늘 밤이 아닐까요?” 정말 그럴까? 양양으로 출발한 아침부터 그랜드 체로키에 누울 때까지 하루를 곱씹다 보니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왔다.  
글_김선관 

 

 

모터트렌드, 강원도여행, 양양, 차박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김형영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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