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DAILY PICK_Stars&People

빌리가 된 소년들

한국 ‘빌리’찾기는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2017.08.01

15년은 족히 넘은, 아마도 대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조금 특별한 영화로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다.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11세 소년 빌리. (당시로서는) 유명한 배우 하나 없는, 더군다나 특별할 것 없는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발레보다는 복싱이 당연했던 그 시절. 매일 복싱을 배우러 가는 체육관 너머로 빌리는 우연히 발레 수업을 보게 된다. 물론 빌리에게는 발레 따위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 여기는 거대한 산과 같은 아버지가 있다. 
“빌리, 왜 발레를 하니?” 
“그냥 기분이 좋아요.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것처럼요!” 권투 글러브 대신 토슈즈를 신고 거대한 꿈을 향해 뛰어오른 빌리. 꿈과 희망을 좇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 뒤로 안락함과 편안함에 젖은 현재의 살찐 마음이, 오버랩된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빌리, 그가 11월 말 뮤지컬로 돌아온다. 믿고 보는 배우 김갑수, 박정자, 최정원 등이 함께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주인공 ‘빌리’다. 누가 과연 빌리의 주역이 될 것인가. 

 

 

현준(좌)이가 입은 화이트 민소매 톱 1LDK by Seoul, 에릭(우)이 입은 니트 베스트 RECTO.

 

빌리를 찾아라 
만 8~12세. 키 150cm 이하. 변성기가 오지 않고 탭댄스, 발레, 애크러배틱 등 춤에 재능이 있는 남자 어린이. 이 까다로운 조건의 한국 ‘빌리’ 찾기는 2016년 4월부터 시작됐다. 오디션 준비부터 최종 빌리의 탄생까지, 그 지난한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무대 위의 빌리에 앞서, 빌리로 성장해가는 어린 소년들의 과정이 더욱 궁금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레이닝이 잘된 아이라도 스파크, 열정이 보이지 않으면 빌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발레를 잘하는 소년을 뽑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빌리처럼 열정을 품은 아이를 찾는다”는 영국 협력 연출 사이먼 폴라드의 말처럼 ‘빌리’ 찾기는 단순히 춤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최대한 때 묻지 않은 날것의 아이들. 열정,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아이들을 찾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작년 4월부터 시작된 오디션은 3차에 걸쳐 진행됐다. 특히 ‘빌리’는 아역이라는 특성상, 성장 과정과 지구력을 봐야 하는 캐릭터로, 길게는 8개월 짧게는 5개월에 걸친 트레이닝과 오디션을 거쳤다. 지원자 200여 명 중 1차 오디션에 통과한 빌리 후보들은 발레, 탭댄스, 현대 무용, 애크러배틱, 스트리트 댄스, 필라테스, 보컬에 이르기까지, 빌리 스쿨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혹독한 훈련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6일, 하루에 6시간. 어린 친구들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시간이다. 하지만 여러 장르의 춤을 춰야 하고, 2시간 40분 동안 공연을 끌고 나가야 하는 막중한 빌리의 역할상 힘들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지금 만나게 될 다섯 빌리는 1년여의 혹독한 시간을 견디고, 또 다른 빌리를 꽃피워낼 위대한 빌리들인 것이다. 

 

 

지환(좌)이가 신은 양말 GUCCI, 현서(우)의 파이핑 블라우스 SYSTEM, 양말 GUCCI.    

 

5인 5색 빌리의 꿈  
만 열세 살의 천우진,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다섯 빌리 중 맏형이다. “3학년 때부터 탭댄스 학원에 다녔어요. 엄마는 악기를 다루기를 원했지만, 저는 싫었어요. 탭댄스는 춤과 악기가 섞인 느낌이라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여느 춤과 달리 자신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탭댄스의 매력에 푹 빠진 우진이. “어릴 때부터 다른 남자 아이들과 달리 뛰어노는 걸 싫어했어요. 축구도 싫어하고. 여자애들과 노는 게 더 좋았어요.” 운동보다는 현대무용, 발레에 관심이 많았다는 우진이는 운명처럼 빌리를 만나게 됐다. 사실 우진이는 동생들과 달리 걱정이 하나 더 있다. “다치지 않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체력과 변성기가 걱정이에요.” 우진이가 걱정하는 변성기가 부디 (아직은) 오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섬세하고 맑은 우진이만의 빌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너무 착해서 문제라는 네 동생의 떼창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둘째지만 책임감도 강하고 쾌활한 김현준. “원래는 빌리의 친구 역인 마이클로 지원했다가 빌리가 됐어요” 뮤지컬 배우, 가수가 꿈이라는 현준이.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영국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였어요.” 2학년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현준이는 힙합, 팝핀, 비보이 등 스트리트 댄스가 특기일 만큼 만능 춤꾼이다. 그런 현준이에게도 발레는 가장 어려운 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턴도 안 돌아가고, 그럴 때면 짜증이 많이 나요. 근육도 뭉치는 것 같고요.” 배역에 대한 욕심도 다부진 현준이는 똑 부러지는 성격에 활발한 분위기 메이커. 다섯 빌리 중 키가 제일 크고, 힘도 좋아 점프가 강점인 현준이는 그 어떤 빌리보다 강렬하고 힘찬 빌리를 보여줄 것이다.  
얼굴부터 ‘개구짐’이 묻어나는 셋째 성지환. 춤에 소질이 있던 다른 빌리들과 달리 지환이는 전문적으로 춤을 배운 적이 없다. 지환이의 특기는 태권도. “대회 준비를 위해 태권도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캐스팅 디렉터분이 오시더니 오디션 참여를 권유하셨어요.” 빌리에 대해 전혀 몰랐고, 춤을 배워본 적도 없는 지환이. 하지만 발레, 탭, 현대무용 등 춤에 대한 놀라운 습득력은 빌리의 이름을 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환이는 지금껏 보지 못한 성격 같아요. 삐삐 같다고 할까요?” 빌리들이 인정한 분위기 메이커 영순위.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진 정신력 때문일까? 지환이는 끈기가 있고, 욕심도 많은 편이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욱 욕심이 생긴다는 이 당당하고 똘똘한 개구쟁이 지환이의 빌리는 분명 흥미로운 기대감이다. 
막내인 열 살 심현서는 1학년부터 발레를 배웠다. 발레 학원에서 현서만 남자였다니, 극 중 빌리와도 운명처럼 같은 경험을 한 셈이다. “현서는 감성적이고 섬세해요.” “현서는 얼굴은 남자인데 몸은 여자 같아요.” 형들의 말처럼 섬세함을 지닌 현서는 오히려 힘이 좋아서 점프가 좋은 현준이 형이 제일 부럽다고 고백한다. 막내지만 차분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의견을 조곤조곤 피력하는 현서는 어리지만 믿음이 가는 빌리다. 마지막 다섯 번째 빌리, 에릭 테일러는 가장 늦게 빌리에 합류했다. “애크러배틱이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힘들어요.” 다른 빌리들보다 늦게 합류한 터라 쑥스러웠다는 에릭. 혼혈인 에릭은 누가 봐도 잘생겼다. “지겨워요. 잘생겼다는 말.” 뜻밖에도 에릭은 잘생겼다는 말이 제일 싫단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또래 친구들에게 늘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던 에릭. 한편으로 에릭은 얼굴이 잘생겨서 캐스팅된 게 아니냐는 편견의 시선이 싫었을지 모른다. 그 편견은 무대 위에서 보기 좋게 깨줄 참이다. “37개월인가부터 모델을 했어요. 아, 잠깐만요. 엄마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잠시 후 뛰어온 에릭이 외친다. “엄마가 7개월 때부터래요.” 어릴 때부터 모델 일을 한 터라 연기가 강점이라는 에릭. 웃음이, 특유의 밝고 순수함이 매력적인 에릭은 자신만의 활기차고 순수한 에너지를 무대 위에 펼쳐놓을 것이다.   

 

 

우진이가 입은 화이트 민소매 톱 PATAGONIA.

 

<빌리 엘리어트>의 다섯 빌리 천우진, 성지환, 에릭 테일러, 김현준, 심현서(좌로부터). 

 

“현서와 에릭은 연기를 잘해요.” “지환이는 목소리가 좋아요.” 서로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를 풀어놓는 다섯 빌리. “마지막 3차 오디션이 끝나고 모두 울었어요.” 합격 후 기쁨의 눈물이었을 테지? “아니요. 떨어진 아이들 때문이에요.”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순간 ‘아차’ 하는 반성이 뒤따라왔다. 귀엽고, 당차고, 욕심 있고, 섬세하고, 각각의 캐릭터가 빛날 빌리들. 과연 어떤 빌리를 만나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계산 없이, 때로는 맥락 없이, 재잘거리는 다섯 빌리 틈에서, 정신없지만 묘하게 기분이 맑아졌다. 어쩌면 그것은 ‘빌리’의 마법이었을까? 작은 소년의 순수한 꿈의 이야기. 더 이상 ‘작지 않은’ 우리가 들어야 할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더네이버, 빌리엘리어트, 발레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도원 / THE NEIGHBOR

Twitter facebook kakao Talk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