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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Car&Tech

돌아 돌아 캐딜락

레이싱팀 감독 겸 래퍼 김진표가 뒤를 돌아봤다. 꼰대의 차 말고 춤추는 아빠 차 캐딜락 CTS-V가 거기 있었다

2017.07.27

“아빠 제발. 한 번만~ 응? 한 번만 춤추게 해줘요.” 내가 CTS-V를 타고부터 뒷자리에 앉은 애들은 신호대기에 서 있을 때마다 이런 부탁을 한다. 며칠 전 “얘들아, 이거 봐라~” 하면서 트랙션 컨트롤을 끄고 약간의 슬립을 맛보여줬던 것이 화근이었다. 마치 재밌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후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 차는 춤을 춰!”라고 자랑을 하고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나를 졸라댄다.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던 듯하다. 차에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은 아들인데 가끔 “아빠, 그 춤추는 차 이름이 뭐라고?”라고 물어온다. 몇 번이나 “캐딜락”이라고 말해주지만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들에게 캐딜락은 춤추는 차 혹은 재밌는 차라는 인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 캐딜락이 주는 어감에는 여전히 ‘꼰대’ 느낌이 가득하다. 성공한 ‘아버지’ 세대의 차량이고 군사정권 시절에 잘나가던 자동차며, 그래서인지 영화 <드림걸즈>에서 ‘Cadillac car’라는 노래가 흐를 때 감정이입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들이 이 낡은 캐딜락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최근 10년 동안 해댄 것과 해낸 것을 고려하면 아직도 그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진심으로 안타깝다. 그들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으로 온갖 실험을 하는지는 설명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기에 더 그렇다. 비슷한 성격의 경쟁 브랜드 링컨만 보더라도 그들이 젊어지려고 노력한 흔적은 흉측한 그릴을 빼고는 찾기 어렵다. 최근의 컨티넨탈은 “난 젊어지는 건 포기했어. 그냥 나를 기억하는 꼰대들이나 태울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반면 캐딜락은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경쟁자로 삼고 그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다. 그 결과를 판매량으로 논하자면 참담하겠지만 그 무기에 한 번이라도 올라앉아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캐딜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측은하다. 이건 마치 “남자에게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고 말하는 어느 창업자의 심정 비슷하다. 

 

당장 지금 타고 있는 CTS-V만 해도 그렇다. 640마력의 뒷바퀴굴림 4도어 ‘슈퍼’ 세단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V라는 배지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핵심만 콕 찝어 말하면, V는 AMG와 M을 경쟁자로 삼고 있다. AMG와 M은 알다시피 벤츠와 BMW의 고성능 디비전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M이 창업자 마인드라면 AMG는 상속자 마인드에 가깝달까? M은 그게 400마력이든 500마력이든 단 1마력도 허투루 쓰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드라이버에게 정교한 드라이빙 기술을 요구한다. M이 비교적 젊은 이들의 드림카로 자리 잡은 배경, M7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다. 반면 AMG는 500마력 중 약 150마력은 폼으로 존재한다. 태생 자체가 그다지 정교할 이유가 없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상속자는 소비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AMG는 사람들에게 정교함이 아닌 여유를 먼저 선물한다. 


V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AMG 성격에 가깝지만 놀랍게도 AMG보다 조금 더 여유롭다. 사실 8기통, 640마력, 뒷바퀴굴림, 미국차 등의 키워드를 놓고 떠오르는 단어는 ‘무자비함’과 ‘통제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막상 운전을 해보니 놀랍도록 모든 것이 정제돼 있었다. 640마력이 선물하는 것은 순간이동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여유로움’이었다. 엄청난 출력 때문에 트랙션 컨트롤이 일찍 개입하고, 그래서 일반 모드에서 차의 거동을 잃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시트는 형상만 파격적일 뿐 미국차 특유의 안락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일반 모드에서는 벤츠 S 600 부럽지 않게 대단히 푸근하고 여유 넘치는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녀석은 M과 AMG에 없는 MRC(Magnetic Ride Control) 댐퍼를 지니고 있다. MRC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콜벳 ZR1과 페라리 458 이탈리아, 페라리 F12 그리고 CTS-V의 MRC는 별 다섯 개 만점에 여섯 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불규칙한 충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벽돌 길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엔 감동이 일기까지 했다. 델파이가 공급하는 이 자기유체점성 서스펜션을 페라리가 구매해 쓰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 슬슬 MRC의 좋고 싫음이 갈리게 된다. 나는 좋다는 쪽인데 다소 뻣뻣해지는 느낌이 살짝 헐렁해서 출렁거리는 것보다는 안전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뒷자리가 아닌 운전대를 잡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 그렇다. 

 

스포츠 모드로 놓고 전자장비를 끄면, 640마력을 미쳐 날뛰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출발하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스포츠 모드와 트랙 모드에서 배기음이 살짝 커지긴 하지만 640마력 슈퍼세단의 명함에는 부족하다. 반면 스티어링은 레이스카 못지않게 무거워지고 알칸타라로 감싼 림의 그립감도 대단히 훌륭하다. 문제는 그 멋진 스티어링 뒤에 붙어 있는 시프트패들이다. 패들을 당기면 “주인님, 지금 저는 변속을 할지 안 할지 고민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음…, 지금…, 아닌가? 아! 지금! 변속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프트패들은 폼으로 달고 다닌다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스포츠 모드에 놓고 3000~4000rpm을 유지하면서 달릴 때 스로틀 반응과 배기음의 조화가 아주 괜찮은데, 한 박자 느린 변속기 때문에 그 영역대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쉬운 점이 생겼을 때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관용이 생긴다는 점이다. 미국차의 숨기고 싶은 강점이겠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유럽차들에 비해 우리는 미국차에 너그럽다. “미국차…. 니들이 그렇지 뭐.” 

 

최신 자동차답게 준(準)자율주행이나 보조안전 기능도 있는데, 요즘 나오는 유럽산 차의 그것이 신사적이고 주인을 모시는 느낌으로 작동한다면 CTS-V는 친한 친구가 끼어드는 느낌이다. 그 친구는 시동을 걸고 주행을 시작하려 할 때 안전벨트를 시트 쪽으로 당기면서 인사를 건네온다. 장난기 많은 운전자가 트랙션 컨트롤을 끄고 뒷바퀴 그립을 무너뜨리는 순간이나 운전이 서투른 운전자가 갑자기 급정거라도 할라치면 귀신처럼 안전벨트를 힘차게 당겨서 운전자 몸을 시트에 밀착시킨다. 그건 마치 믿을 만한 친구가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다. 차선유지장치를 켜고 있으면 차선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꽤 묵직한 저항과 함께 반대 방향으로 스티어링을 꺾어서 차를 다시 차선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때 역시 “이봐, 지금 조는 거야? 미친 거 아냐?”라는 강한 경고가 섞인 느낌이라 마치 살아 있는 캐릭터를 대하는 듯 정감 간다(물론 버릇없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사실 CTS-V의 가장 큰 매력은, 처음 얘기했듯 ‘테일 슬라이드’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게 매력이라고?” 하며 반발할 수 있지만 기아 스팅어 광고만 봐도 하이라이트는 드리프트 장면 아니던가. 그만큼 차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것과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이를 가르는 기준은 뒤 타이어 트랙션을 운전자 임의로 제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친절하게도 이 차는 트랙션 컨트롤을 해제하는 것도 다른 차들보다 쉽다. ESP 버튼을 3초 정도 누르고 있으면 끝! 이후 할 일은 코너에서 뒤 타이어 그립이 무너지려는 순간 가속페달을 꾹꾹 눌러 더 짜릿해지거나 거기서 멈추거나 결정만 하면 된다. 너무 부담스러운 행위라고? 그렇다면 신호대기 맨 앞에서 녹색 불이 들어왔을 때 가속페달을 조금 더 힘 있게 밟아주기만 해도 좋다. 아마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거다. 

 

CTS-V는 출력을 짜내는 면에선 M에 부족하고 프리미엄 감성품질은 AMG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M보다 훨씬 편안하고 AMG보다 개성이 넘친다. 슈퍼세단을 평가하는 큰 기준은 편안함과 빠름인데 이 차는 이들과 함께 달릴 수 있으면서 그들보다 편하다. 심지어 그 기준에 ‘희소성’을 추가하면 선택은 CTS-V로 크게 기운다. 
V라는 캐딜락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듣고 실소를 머금을지 모른다. 그래도 당신 머릿속의 낡은 캐딜락 이미지가 조금은 지워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캐딜락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메리칸드림이며 춤을 춰서라도 우리를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글_김진표(엑스타 레이싱팀 감독)

 

 

모터트렌드. 캐딜락, 수입세단

CREDIT

EDITOR / 김형준 / PHOTO / PR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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