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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신인 감독 4인의 얼굴

이들이 있어 한국 영화계의 미래가 조금 더 희망차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감독 4인의 얼굴.

2017.07.13

신준 감독의 첫 장편 <용순>은 그의 단편 <열여덟 여름>을 새롭게 각색해 완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용순의 어린 시절,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엄마가 자신과 아빠를 버린 채 사랑하는 남자를 쫓아 떠나는 모습이 영화의 시작이다. 잡고 싶었지만 차마 잡지 못한 그 시절의 아쉬움은 용순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남중, 남고를 거쳐 한때는 공대생(비운의 3단 콤보다!)이었던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용순>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지금 문득 떠올려보니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잘 삐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말이나 화로 표출하기보다는 삐치거나 토라져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혹시 그게 시초였나?(웃음)”
예민하고 좀 유별났던 어린 시절의 치기는 감독이 된 뒤 그의 영화에서 톡톡히 발현됐다. 그가 삶에서 건져 올린 디테일은 영화 전체의 플롯에 힘을 더하는 동시에, 캐릭터 하나하나를 살리는 ‘깨알’ 같은 재미를 부여했다. 거기엔 감독의 세심한 관찰력도 한몫한다. “‘저 사람이 화나서 물건을 집어던진다’보다는, ‘화가 나는데 왜 발을 까닥거리고 있지?’ 같은 의외의 포인트를 포착하는 거죠. 다행히 장면의 기억력도 좋은 편이고요. 디테일에 욕심이 많다 보니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장황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요. 하하.”
<용순>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여고생과 체육 선생님의 로맨스’이지만, 정작 메인 카메라는 로맨스 주변과 로맨스 그 후로 옮겨가 있다. “사춘기 소녀의 감정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로맨스가 전체를 장악해버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거든요. 여러 관계의 연결 과정 속에서 가족과 사랑을 다루고자 했지요.” 그런 까닭인지 선생님과의 사랑에서 자동 연상되는 비밀스러운 교감이나 야릇한 공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성적으로 부각되거나 이상한 상상의 여지가 있는 장면 역시 과감히 제했다. 과한 자극에 취한 한국 영화계에서 담백한 <용순>이 다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감독은 자극적인 요소-이를테면 마약이나 피, 경찰  등- 없이도 다 함께 진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혹시 <용순>이 유작이 되는 건 아닐까?’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은 이렇게 생각했다. 끊임없이 밀어닥친 고난 그리고 때때로 희망, 이러한 도전의 연속 가운데 감독은 달리기 선수인 용순만큼이나 죽을 듯이 달려야 했다. 물이 턱밑까지 차올라 이제 죽겠다 싶을 땐 어쩐 일인지 하나씩 실마리가 생겼다. 그러는 동안 감독도 훌쩍 성장했다. 아프게 낳은 첫 자식, 때로는 자신의 분신, 한편으로는 토닥여주고 싶은 존재 용순의 손을 잡고 감독 신준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에 선입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손님>, <콩나물>, 그리고 첫 장편 <우리들>까지, 모두 아이들이 주인공인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 선뜻 눈이 가지 않은 이유다. 특별히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가 흔히 내포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보자’ 식의 계몽적인 메시지가 어쩐지 불편해서다. 도대체 동심이 뭔데? 어른과 아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어른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나는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그렇다고 아이도 아닐 것이다. 
영화 <우리들>을 보고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도 치열한 에피소드와 넘치는 감정 속에서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동시에, 현재의 나를 떠올렸다. 그렇다, <우리들>은 세대를 관통하는 우리 모두의 얘기다. 만약 영화 제목이 <아이들>이었다면 여운이 이만큼 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기, 질투, 복수, 미움은 아이라고 해서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동심’이라는 말로 아이들을 가두는 건 어른들의 비뚤어진 환상이 아닐까. “한 번도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사람이 나이 들면서 경험과 지식만 늘어날 뿐 내면에서 작동하는 심리나 반응은 어린 시절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감독의 시나리오 출발점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느낀 경험과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현재의 상황과 중첩되면서 살을 붙이는 식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생히 품고 있는 감독은 어린아이들과의 대화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아이들에게 배역을 설명할 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줘요. 그 역할이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대신, ‘이 아이는 지금 이런 상황에 있어. 만약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거 같아?’라고 묻죠.” 윤가은의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연기하듯 보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직접 쓴 시나리오라도 내 얘기를 100% 신뢰하지는 않아요. 초안 단계로 만들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해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쳐요.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데, 특히 <우리들>은 리허설에만 2~3개월이 걸렸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새롭게 발견해간다는 윤가은 감독. 
<우리들>을 통해서는 일상에서 번진 사소해 보이지만 특별한 순간, 감정을 조명했다. 그의 영화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등장인물이 잘 살아갈 거라는 안도감을 준다. ‘과정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믿음을 지닌 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를 만들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감독의 미소 띤 얼굴이 그려졌다.   

 

 

화려한 시작은 때로 족쇄가 된다. 영화과 재학 시절, 졸업 작품 <야간 비행>으로 일찍이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감독 손태겸은 영화계에서 늘 유망주로 분류됐다. 그리고 작년, 첫 장편 <아기와 나>를 완성한 뒤 개봉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났을 때, ‘기대 이상’과 ‘기대 이하’는 말마따나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래서일까. 감독의 눈동자에는 첫 장편을 완성했다는 성취감보다는 담담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줄곧 장편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처음엔 벅차고 설레기만 했죠. 그런데 막상 완성을 하고 나니 내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더라고요. 단편에 비해 더 많은 대중에게 선보이는 작품이잖아요. 제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고요. 나름대로는 치열하게 애를 썼는데, 좀 더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아기와 나>는 속도위반으로 낳은 아들 예준과 아내 순영, 그리고 군 제대를 앞둔 도일의 이야기를 그린다. 막바지 휴가에서 도일은 우연히 예준이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내가 돌연 자취를 감추고, 그 아이를 돌보며 아내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지극히 영화 같은 스토리는 놀랍게도 지인으로부터 들은 실화다. 물론 숱한 디테일과 결말은 그의 시선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동명의 일본 만화 <아기와 나>와는 무관하다. <아기와 나>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가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영화의 처절한 현실에 관객은 충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아이러니에 강하게 이끌리는 그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 이야기를 첫 장편의 소재로 선택한 건 필연에 가깝다. 과연 나라면?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한번은 식사를 하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대뜸 묻기도 했다. 감독으로 하여금 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이 궁금증은 영화를 완성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알 수 없음’에 가깝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떠나간 여자를 좇으며 자신도 몰랐던 애정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더 사랑을 하고, 그래서 애타게 전후 사정을 듣고 싶었던 도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동안 관객이 그랬던 것처럼 감독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의문을 해소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이었을지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손태겸 영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극 중 인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영화야말로 오래 회자되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한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거나 애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는 것도, 파헤쳐보면 각자의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감독의 시선에는 유독 소외된 사람들이 담긴다. 그렇듯 손태겸은 화려한 조명 밖의 사람들에게 그만의 조명을 비추느라 늘 분주하다.   

 

 

“그런데 이 인터뷰, 이렇게 진지해도 되나요?” 인터뷰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때 감독이 내게 물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진지한 사람은 조현훈이 아닐까’ 생각할 즈음이었다. 조현훈 감독의 첫 장편 <꿈의 제인>은 ‘가출팸’(가출 청소년이 원룸, 고시원, 모텔 등에 모여 숙식을 해결하는 ‘가출 패밀리’의 줄임말이다. -네이버 트렌드 지식사전 발췌)을 소재로 한 영화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소통에 서툴기만 한 소현과 그에게 꿈처럼 다가온 미스터리한 존재, 제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꿈의 제인>은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예요.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로부터의 피드백은 저에게 답장과 마찬가지죠. 아주 다양한 종류의 답장을 받았다는 점이 이 영화가 지닌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 아닌, 관객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삼켜 새로운 해석을 뱉어내니까요.” 
진심 없는 위로가 판치는 세상에서 위로를 위한 위로는 힘을 잃었다. 오죽하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차라리 더 큰 힘이 되는 세상일까. 감독은 가출팸의 현실을 미화하려고도, 고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런 방식의 위로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을 뿐. 그리고 절망 속에서 함께한다는 것, 그 가냘픈 ‘연대’에 주목했다. “실제로 가출팸을 현실에서 목도한 후, 리얼리즘으로 희망을 만드는 방식은 아이들에 대한 기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나 사회 구성원이 실제로 아이들에게 희망이나 위로를 허락하지 않아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안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비추기 위해서 극 중 꿈의 일부 같은 ‘제인’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제인이 말한 ‘함께’라는 의미는 인간이 다 같이 뭉쳐서 살아야 한다는 것과는 달라요. ‘네가 어디에 있건 나도 거기에 있을 거야’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는 것,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맏음을.” 그는 인터뷰 내내 <꿈의 제인>을 ‘작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영화가 가져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주연 배우 구교환과 이민지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란히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고, 제한된 상영관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 2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들였다. 
감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방인의 정서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것은 주변 이야기이기도,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창작 과정에서 제가 가진 세계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죠.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이방인의 정서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그곳에 있을 거예요. 영화를 통해 함께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더네이버, 한국영화, 신인감독, 젊은감독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표기식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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