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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취하지 않으리오

경남 함양 개평마을에선 수백 년 된 문화재에 머물면서 무형문화재가 빚은 500년의 긴 역사를 지닌 전통주를 맛볼 수 있다

2017.06.12

방금 증류해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 맑은 액체를 작은 잔에 받아들었다. 알코올 도수가 70도에 달하는 이 술은 이미 사방으로 솔 향을 풍기고 있었다. 아주 조금 입안으로 털어 넣자 처음 접하는, 그리고 조금은 신비한 경험이 몰려온다. 입안에서 솔 향이 폭죽처럼 터지더니 아직 삼키지도 않았는데 향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뇌까지 파고든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독한 중국술처럼 내 식도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은은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솔송주’는 지리산 자락 청정 지역인 경남 함양의 조선시대 이름난 양반 집안인 하동 정씨 가문에서 5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전통 가양주다.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까지 가지고 가 만찬주로 선보이기도 했다. ‘난 왜 지금껏 이렇게 좋은 술을 모르고 무색무취 무향의 이슬만 마셨을까.’ 소주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술은 정말이지 신의 물방울입니다. 똑같은 재료와 노력, 시간을 들여도 그 맛이 다 똑같지 않아요. 그래서 술을 빚는 건 마음을 빚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재료와 시간에 정성이 깃들어야 좋은 술이 나오니까요.” 우리에게 직접 술을 증류해 따라준 박흥선 명인은 대한민국 제27호 식품명인이면서 제35호 무형문화재다. 하동 정씨 16대 손부로 시어머니에게 솔송주 빚는 법을 전수받아 이를 계승 발전시키며 세상에 알렸다. 국가는 그의 전통 계승 정신과 기술을 높이 받들고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고취하고자 무형문화재로 인정한 것이다. 


“형! 우리 지금 문화재 님에게 술을 받아 마신 거야?” 만화가 이크종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술잔을 고이 받들어 슬며시 박흥선 명인에게 내밀었다. 술을 더 달란 뜻이다. 나도 작은 술잔을 두 손에 꼭 감싸 쥐고 이크종 뒤에 섰다. 사진가 박남규도 어느새 카메라를 내려놓고 솔 향 가득한 감탄사를 연발한다. 

 


개평마을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50-6

 

솔송주 외에도 함양 개평 한옥마을은 도착하면서부터 모든 게 좋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혼탁한 날이 이어졌지만 이날만큼은 하늘이 청명했다. 맑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고 그 밑으로 고색창연한 처마가 운치를 더한다. 들리는 소리라곤 이름 모를 새소리와 어디선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뿐이다. ‘이 맑은 풍경 소리는 어느 집 처마이련가.’ 뒷짐을 지고 느릿한 양반걸음으로 마실을 나서본다. 


‘좌 안동 우 함양’이란 말을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함양도 안동 못지않은 조선시대 양반 고장으로 유명하다. 선비들의 학문이 높아 뛰어난 문신과 학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5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개평마을엔 일두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을 비롯해 아담한 고샅길을 따라 풍천 노씨 대종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56호), 오담 고택(경남 유형문화재 제407호), 노참판댁(경남 문화재자료 제360호) 등 유서 깊은 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솔송주 문화원인 ‛명가원’도 이곳을 대표하는 고택 중 하나로 350년이나 됐다. 수백 년 이상씩 된 국가의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지만 대부분 대문을 활짝 열어 지나는 손님을 반긴다. 그런데 손님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는다. 


“안동이나 전주 한옥마을은 유명해서 정말 많은 사람이 찾죠. 하지만 함양은 그곳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이렇게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개평마을 문화재 알리미이자 명가원 홍보를 담당하는 양기영 이사의 말이다. 


 

프리우스 프라임을 제외하고 보이는 모든 것이 수백 년 이상 된 이 땅의 고귀한 유산이다.

 

맞다. 이곳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안동 하회마을과 전주 한옥마을 모두 가보았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마을답게 정말 사람이 많다. 시간과 사람에 치여서 정작 전통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취를 느끼기 힘들었다. 그런데 함양 개평마을은 다르다. 우리가 내려갔을 때도 관광객이라곤 3~4팀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이곳이 안동, 전주에 비해 역사적 가치가 낮거나 경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도 있고, 인근에 1100년 전 만든 한반도 최초의 인공림인 상림이 있으며, 뛰어난 절경의 화림동계곡과 산속 깊은 곳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용추폭포 등 둘러볼 곳이 많다. 모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비경이다. ‘이렇게 좋은 곳이 왜 여태껏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토요타 프리우스 프라임을 타고 함양까지 내려오면서도 약간 걱정했다. 함양에 대해 잘 모르고 개평마을도 알려지지 않아 헛물을 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대도 있었다. 물론 술이다. 난 요즘 들어 한국 전통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책도 사고 인터넷으로 주문해 맛도 본다(전통주는 인터넷 통신 판매가 가능하다). 이크종은 솔송주에 대해 ‘아주 좋은 술’이라고 들었지만 맛본 적은 없다 했고, 박남규는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애주가다. 우린 각자 아름다운 고택에서 향이 가득한 전통주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상상을 했다.

PHEV인 프리우스 프라임은 참 편한 차다. 우선은 운전이 쉽다. 적당한 시트 높이에 앞과 옆 시야가 좋고 운전대가 가볍다. 서스펜션도 적당히 말캉해 승차감도 훌륭하다. 도시에서 타기에 아주 훌륭한 패키지. 그런데 고속도로에서도 프리우스 프라임은 든든한 동반자였다. 공기역학적 디자인으로 바람 저항이 적어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직진 안정성이 뛰어나고 속도를 올려도 예의 그 안정감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흡족한 것은 리터당 27킬로미터나 나온 연비다. 

 

 

명가원, 일두 고택으로 검색하면 상세한 정보와 함께 숙박 예약도 할 수 있다.

 

이곳저곳 취재를 마치고 명가원에 짐을 풀었다. 개평 한옥마을 중 몇몇 고택은 한옥 스테이를 운영한다. 수백 년 된 문화재에서 잠을 청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해가 질 무렵 아담한 개평마을을 한 바퀴 더 돌아보곤(느릿한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랐다. 개평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식당이 있는데, 돼지 목살을 화덕에 구워 내놓는다.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한 고기와 은은한 솔 향을 내면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솔송주의 궁합이 기가 막힌다. 낮에 증류하자마자 마신 소주는 도수가 높지만 청주 상태로 판매되는 솔송주는 13도밖에 되지 않는다. 향이 약간 덜하지만 도수가 낮아 부담이 적고 단아한 맛을 낸다. 


밤하늘엔 별이 흐드러지고 공기는 달달하다.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온도, 거기에 좋은 술과 고기까지 있는 밤이다.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린 그렇게 함양과 솔송주에 촉촉이 젖어들었다. 일러스트레이션_이크종

 

 

모터트렌드, 자동차, 여행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박남규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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