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청산유수다. 또래에 비해 걸음마가 무척 느렸던 딸아이는 대신 그 능력을 언어중추 발달에 끌어모았나 보다. 어느 순간 문장과 문장을 나열하는가 싶더니 이젠 접속사와 관계대명사를 활용한 문장까지 뱉어낸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이웃에게도 “지금 분홍 토끼 신발을 신고 있어요”라거나 “아빠 손 잡고 재미있는 곳에 갈 거예요”라고 늘어놓는다. 타인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견이나 계획, 감정을 나누는 건 꽤나 고차원적인 상호작용이다. 이를 얼마나 능숙하게 처리하느냐가 개개인 사이의 관계부터 사업의 성공, 국격까지 결정하기도 한다. 타인의 목소리가 내 고집보다 작게 들리는 순간, 16차선 대로 같아야 할 상호 소통은 좁은 골목길 일방통행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도로 위를 흘러가는 자동차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운전은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싼 자동차나 보행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반응하고 행동을 조율해야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구조물 안에 갇힌 특수성 때문에 육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불가하다. 일상적인 대화가 청각 정보를 매개로 한다면, 운전 중 대화는 시각 정보에 대한 의존이 필수다. 성공적 대화의 시작이 경청인 것처럼 운전 중 대화는 상대방을 잘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10개가 넘는 클래스에서 각기 다른 스피드의 경주차가 길고도 좁은 트랙을 혼주하는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는 추월 과정에서 종종 사고가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가 다른 클래스의 경주차가 만날 때 지키는 약속이 있다. 빠른 차는 상향등으로 앞차에게 신호를 보낸다. “저리 비켜!”라는 의미가 아니라 “먼저 지나가도 되겠니?”라는 표시다. 느린 상대는 방향지시등을 켜서 자신이 비켜줄 방향을 뒤차에 알리고 트랙 한쪽으로 비켜 공간을 터준다. 두 차의 주행 라인이 엉키지 않게 추월하자는 약속의 일종이고, 동시에 앞차가 뒤차의 접근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대화 창구다. 이를 근거로 두 차 모두 다음 행동을 안전하게 계획할 수 있다. 이런 추월은 양측 페이스에 아무런 방해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24시간 생존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의 도로 위로 돌아와보자. 승리를 위한 경합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겨우 두 자리 속도로 달리면서도 이야기 나눌 여유가 없어 보인다. 우리 고유의(?) 짙은 틴팅 문화도 대화 단절의 벽이다. 상대 운전자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볼 수 없고 그 차 너머에 있는 다른 차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럴수록 상대 운전자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대화를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전방 상황으로 속도를 줄여야 할 때 부드러운 감속으로 제동등을 일찍 오래 켜주면 어떨까? 혼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뒤따르는 교통 행렬에게 전방 상황을 알리듯 말이다. 차로 변경에도 예고가 필요하다. 미리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로 중앙에서 가고자 하는 쪽 차선으로 조금 다가가 주변 차량에게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도로가 만나는 구간에서 흔히 겪는 일도 있다. 나란하게 달리는 두 대의 차가 한 차로를 두고 동시에 양보하려다 동시에 가속하면서 타이밍이 엇갈리는 경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동작을 적극적으로 취하면 좋다. 이왕이면 내가 먼저 양보하는 동작을 보여주면 더 멋지지 않을까? 

상대 차량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점점 많은 목소리가 보인다. 자꾸만 차로 한쪽으로 붙어 달리는 자동차는 차체 감각이 익숙지 않은 초보 운전자일 확률이 크다. 흐름보다 느리게 간다고 경적을 울리면 더 당황할 수 있다. 반대로 차로 좌우를 흔들거리며 달리는 차는 스마트폰이나 피로 등으로 주의력이 흐트러진 상태인 경우가 많다. 짧게 경적을 울려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것이 안전하다. 모자에 불을 밝힌 택시는 손님을 찾기 위해 도로보다 인도를 더 많이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독 제동등이 자주 점멸하는 차가 있다면 약속에 늦었거나 마음이 다급한 상황일 수 있으니 차라리 공간을 만들어 보내주는 게 좋겠다. 뒤따르는 차의 하이빔을 받으면 기분이 상한다는 운전자를 종종 본다. 이건 공격이나 침해의 메시지가 아니라, 각자의 의도와 움직임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대화이자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소통 능력과 교감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든아! 우리 얘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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