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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도예가, 이헌정

봄볕 유난한 어느 날 고즈넉한 다산성곽길을 찾았다. 도예가 이헌정이 호기심 넘치는 공간 하나를 오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바다 디자인 & 아틀리에 캠프 B. 지중해의 하얀빛과 아일랜드의 영감을 품은 빨간 문이 손짓하는 그곳에 이헌정이 있었다.

2017.05.22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2층 게스트하우스.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와 눈부신 하얀색, 여기에 컬러를 더한 이헌정의 작품들. 봄빛이 더해진 공간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몇 년 전 이헌정의 양평집을 찾은 적이 있다. 흙을 빚는 그의 작업 특성을 담뿍 담아낸 아틀리에와 집으로 이루어진 그곳. 일명 캠프 A라 이름 붙여진 그곳은 도예가 이헌정이 손수 지은 공간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하듯 작업하는 자신의 삶을 녹여내듯 그는 이곳을 집 대신 ‘캠프’라고 불렀다. 탐험가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치듯 그 역시 자신만의 견고한 베이스캠프를 친 셈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서울, 그것도 다산성곽길에 흥미로운 공간 하나를 열었다.   
“옛날 서울 느낌이 고스란히 밴 이 동네가 너무 좋았어요.” 신당동의 조용한 주택가. 10여 년 전 우연히 봐둔 다산성곽길 아래 바로 그 동네다. 마치 인연처럼 작년 이곳을 다시 찾게 된 이헌정은 아내와 상의도 없이 덜컥 일을 저질렀다. “이 동네 느낌에서 많이 벗어나지 말자는 게 가장 큰 틀이었죠. 그러기 위해 새로운 재료, 유행하는 재료는 최대한 쓰지 말자 싶었어요.” 양평집, 아틀리에 캠프 A가 그의 손을 거쳤다면 이번 캠프 B는 남의 손을 빌렸다. “직접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제 작업을 할 수도 없고요.” 그와도 인연이 깊은 공간 디자이너 전범진, 장병익, 신경옥이 6개월에 걸친 리뉴얼 작업을 맡았고, 바다 디자인 & 아틀리에 캠프 B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미리부터 말하지만, 이곳은 집이 아니다. 얼마 전 다녀온 아일랜드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1층의 빨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헌정의 도예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장과 작은 카페 공간이 드러난다. 브런치와 음료를 즐기며 작품 감상이 가능한 1층, 갤러리 & 다이닝 공간으로 활용 가능한 지하, 게스트하우스를 목적으로 한 2층으로 이루어진 아틀리에 캠프 B. 그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지하 갤러리란다. “이곳에서 혼자 음악을 즐기기도 해요.” 반지층처럼 고요한 빛이 스민 지하 공간은 그 덕에 더욱 운치를 더한다. 그가 지하 공간을 꼽는 사이, 에디터는 2층 공간에 푹 빠지고 말았다. 주변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듯 넓은 사각 창과 화이트로 분장한 이 공간. 구조 역시 심플하다. 일자 구조에 침실과 거실, 부엌을 나란히 배치한 구조로, 부엌과 거실 사이에는 하얀 리넨으로 경계를 지었다. 눈부신 빛과 하얀 리넨이 드리워진 풍경. 창문 너머로 바람만 살랑, 하고 불면 여지없이 그리스 산토리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죠. 아무것도 없이, 벽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하고요.” 거실 바로 옆으로는 그야말로 텅 빈 공간이 자리한다. 하얀 명상의 공간처럼 말이다. 온전히 시간을 즐기며 삶 속에서 이헌정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 테이블로, 화병으로, 그릇으로, 오브제로…. 아틀리에 캠프 B는 일상에서 자신의 작품을 체험하고 경험하기를 바란 그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공간이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삶 속 갤러리인 셈이다. 현재 2층 게스트하우스는 남아 있는 법규상의 문제로, 아직은 지인들을 위한 대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하 1층에는 이헌정의 가구, 오브제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이닝, 카페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며, 테이블, 스툴, 그릇 등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다. 

반지층 구조로, 빛이 더해져 아늑함을 전하는 지하 갤러리. ‘사람’을 모티프로 한 이헌정의 작품이 빛을 발한다. 

화려한 색감을 더한 이헌정의 사각 접시 위로 새가 날아들었다. 

 

그만의 견고한 베이스캠프  
“도예를 음악으로 치면 독주고, 건축은 심포니죠. 건축의 외형보다는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가 궁금해서 건축을 배운 거죠.” 도예, 가구, 오브제, 건축 등 사실 그에게 도예가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은 지 오래다. 지난 30여 년간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여행하듯 장르 여행을 펼쳤다. 하나 그를 이끄는 베이스캠프는 역시 세라믹. “세라믹 하면 중후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요즘 제 작업은 더 화려해진 것 같아요. 채도가 높은 색을 즐겨 사용하죠.” 그의 말마따나 옐로 테이블 위로 총천연색 나비가 노닐고, 바다색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조명과 스툴에선 파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연의 그것들은 총천연의 색과 손잡고 어느 순간 미지의 터전을 만들어놓는다. “저는 달항아리를 좋아하는데, 그 시대의 문화상, 정신상을 반영하기 때문이죠. 저도 다른 맥락의 달항아리를 만들어야죠. 그 시대의 달항아리를.” 조선 시대의 달항아리가 어떤 역할을 했다면 지금의 달항아리는 답습이 아닌 또 다른 역할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 시대의 달항아리, 그는 그것을 찾아 여전히 빚고 또 헤매는 중이다. 
“제 작업은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저 여행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쫓아갈 뿐이죠.” 도예를 넘어 설치, 건축, 가구라는 특별한 탈것을 타고 떠나는 여행. 물론 그 여행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다. “손도 대기 싫을 때가 많죠.” 재미있는 건 작품이 술술 풀릴 때는 오히려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 외려 외로움이, 괴로움이 바닥을 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그는 덧붙인다. 바닥을 치고 끝끝내 올라오면서 느끼는 그 무엇. 그의 30년은 마약처럼 그것을 찾아 헤매는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종착지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국내는 물론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건축가 노먼 포스터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할 만큼 인정을 받았으니 여행의 과정은 제법 그럴싸한 셈이다. 
“1년에 한 번씩 미국 서부의 LH프로젝트에 가요. 동양인은 저 1명인 어마어마한 시골로, 미국 사람들조차 모르는 곳이죠.” LH프로젝트는 일종의 작가 스튜디오 개념으로, 몇몇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미술 프로그램이다. 그는 1년에 한 번 이곳으로 여행하듯 떠난다. “‘Camp’는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의미하죠. 양평의 A캠프, 그리고 이곳 B캠프. 또 다른 캠프를 늘릴 수도 있고, B캠프가 이동할 수도 있고요.” 그의 베이스캠프는 자유롭게 증식, 자생 중이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사진을 찍고, SNS를 남기지만 그는 이 한마디로 여행을 말한다. “기록을 가슴에 남기는 거죠.” 저 밑바닥에 있던 기록은 어느 순간 그의 감정을 흔들어놓는다. 그는 늘 가슴속 이야기에 충실히 귀 기울였을 뿐이다. “작업을 하는 것도 여행이죠.” 마음으로의 여행. 그 여행길엔 늘 고통이 따랐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견고한 베이스캠프를 지지 삼아서. 

 

게스트하우스의 커다란 통창 너머로 주변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얀색으로 물든 게스트하우스에 이헌정의 오브제 작품만이 색감을 더한다. 

다산성곽길 아래의 고즈넉한 동네, 이헌정은 그 정취를 아낀다. 그는 걷고, 여행하는 것을 지극히도 즐긴다. 

통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새 생명을 얻은 지하 계단. 기존 계단을 허물지 않고 빛이 흐르는 고즈넉한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더네이버, 도예가, 이헌정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박우진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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