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가 전기차 1만4400대를 보급하기로 했지만 목표 달 성은 쉽지 않다. 가장 전기차 보급이 활성화된 제주 또한 지난해 7000대 목표 달성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개인 구매가 워낙 저조해 렌터카 활용 방안과 택시까지 동원했지만 이용자가 많지 않아 결국 도청 임직원들이 구매에 나서 간신히 목표 대수를 맞췄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언론의 겉핥기 보도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앞다퉈 구매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실제로 못 사서 안달인 일이 벌어졌으니 그게 쉐보레 볼트 EV다.

수익 대부분을 내연기관에서 얻는 자동차 회사가 테슬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러면서 테슬라가 대용량 배터리를 활용해 전기차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테슬라의 전략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자동차 회사는 최대한 전기차 시장에 늦게 참여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존중했다. 빠르게 진입할 경우 오히려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니까.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가 단거리 전기차로 시장에 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연기관을 장거리 전기차로 대체하면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질 것도 명확했다.  

하지만 GM은 이런 암묵적인 동의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어차피 서서히 전기차로 시장이 변해간다면 차라리 테슬라보다 나은 제품으로 시장에 참여해 자동차 시장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원천 차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일단 성공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볼트 EV 수입 예정 물량 400대를 사기 위해 2000명이 몰렸다. 1회 충전으로 383킬로미터를 가는 전기차를 21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비자가 매력을 느낀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전기차 보급 메카인 제주도청 관계자의 예측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기차를 사려는 사람은 오로지 주행거리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볼트 EV가 나오면 모든 구매자가 그쪽으로 몰릴 것입니다”라고 했다.  

쉐보레 볼트에 대해 제임스 김 한국지엠 사장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하지만 현재까진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판도를 바꾸는 역할은 해낼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 시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 범위를 국내 시장으로 좁히면 게임체인저라 부르기 아직 이르다. BMW는 i3 EV의 주행거리를 200킬로미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기아차도 조만간 주행거리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쏘울 EV 1.5세대를 내놓을 계획이다. 주행거리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원가 부담이 높은 배터리 용량을 키우기보다 자동차 회사가 가장 잘하는 경량화와 효율 높이기에 집중한 덕분이다. 실제 볼트에는 60㎾h의 배터리가 탑재된 반면 르노삼성 SM3 Z.E.는 26㎾h, 현대 아이오닉은 28㎾h로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볼트 EV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통적인 내연기관의 강자인 GM이 판도를 이끌기 위해 실질 구매가 가능한 제품으로 내놨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하이엔드 시장에 진출해 스스로 판매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GM은 대중적인 제품으로 볼트를 만들었다. 물론 테슬라 또한 고급형에서 벗어나 이제는 보급형 전기차로 승부를 걸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때는 기존 완성차업체들의 거센 시장 방어 제품이 등장해 경쟁에 어려움이 닥칠 수밖에 없다. 기본 주행거리 300킬로미터 이상의 전기차가 1~2년 내에 쏟아질 텐데, 이때는 서비스망이 부족한 회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르노삼성과 현대차는 승용보다 기름값 비중이 높은 1톤 소형 트럭을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를 써야 할 필요성이 없는 일반 소비자보다 전기차를 사용할수록 경제적 이득의 증가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정부의 1톤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이끄는 중이고, 현대차는 1톤 포터의 동력을 전기로 바꾸면 된다. 연간 10만대가량의 소형 화물 시장은 EV 판매로 제조사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고, 소비자로선 전기 활용을 통해 화석연료보다 저렴한 연료비를 체감할 수 있어서다. 나아가 EV 시스템 개발회사인 ‘알트이(Alt-e)’는 노후 경유차를 1톤으로 개조하는 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전기차 시장은 승용보다 소형 상용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비용의 절감은 주행거리가 많을수록 실질 체감도가 높고, 그만큼 혜택도 커지는 구조여서다. 나중에야 현재 화석연료에 부과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전기로 옮겨붙겠지만, 현재는 승용보단 1톤 소형 상용의 전기화가 더 시급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쉐보레 볼트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게임체인저가 되려면 소형 상용이 대안이고, 쉐보레는 소형 상용 제품이 없으니 게임체인저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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