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목련과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어느 컨버터블 안에서의 그 순간을. 난 그때 유리창 너머의 풍경과 온전히 하나가 됐다. 주위의 빛과 바람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몄다. 그저 지붕을 걷어냈을 뿐인데 모든 사물이 살아서 춤을 췄다. 정말이지 굉장한 경험이었다. 사실 봄엔 뭘 해도 행복하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번 봄엔 꼭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때 그 기억만큼 강렬한 하루를. 그래서 ‘봄날의 데이트’라는 기획이 잡혔을 때, 난 주저 없이 지붕을 열 수 있는 차를 타겠다고 했다.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법? 그런 거 필요 없다. 이 시기에 오픈톱 모델은 ‘치트키’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와 고백하지만 난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어딜 가도 좋을 것 같아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함께 들을 CD를 두어 장 챙기고 그녀를 태우러 가는 길에 꽃다발 하나만 샀다. 우린 북한강을 따라 무작정 올라가기로 하고 올림픽대로로 팔당대교를 건넌 후 몇 개의 터널을 지났다. 그런 다음 지붕을 열고 음악을 틀었다. 그렇게 우린 1년 중 며칠밖에 없는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들어갔다. 눈처럼 날리는 꽃잎과 쏟아지던 햇살에 우린 말을 잃었다. 난 어색한 대화로 그 순간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았으리라. 귓가에는 그저 바람 소리와 음악만이 맴돌았다. 우린 북한강 변 어딘가에 있는 작은 정원이 딸린 카페로 들어갔다. 봄바람에 실컷 취한 우린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내 눈에는 그녀가, 그녀의 눈에는 내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 그 공기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다. 아마 난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바람과 음악의 하모니 SL의 오디오 사운드는 어떤 로드스터보다 또렷하고 웅장하다. 지붕을 열고 오디오 볼륨을 높이면 바람과 음악이 온몸을 어루만진다. 

봄을 만끽할 최고의 차는 역시 컨버터블!
차를 고르는 조건은 간단했다. 부드러운 승차감에 좋은 오디오를 갖춘 2인승 로드스터. 그렇게 메르세데스 벤츠 SL 400이 낙점됐다. 포르쉐 박스터, BMW Z4, 벤츠 SLC, 아우디 TT 등의 콤팩트 로드스터가 열심히 손짓을 했지만 거절했다. 박스터와 Z4는 시끄러워서, TT는 오디오가 별로라서, SLC는 조금 딱딱해서 싫었다. 아무리 봐도 SL 400만 한 차가 없었다. 만약 SL 63밖에 없었다면 다른 차를 찾았을 거다. 그 차는 봄날의 데이트를 즐기기에는 너무 과격하니까. 하지만 신형 SL 400의 V6 터보 엔진은 아주 차분하고 매끈하게 회전한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오픈 에어링의 낭만을 단둘이서 이만큼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는 차가 또 있을까? 

지붕을 열기 위해 커버를 열고 레버를 당겼다. “잠깐만요” 하고 차를 세워 흥을 깰 필요도 없었다. 시속 40킬로미터 이하라면 이 거대한 철제 지붕을 언제든 열거나 닫을 수 있다. 나는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 시트를 데우고 히터와 에어스카프를 켰다. 고급스러운 승차감도 좋았지만 SL 400이 마음에 들었던 건 오디오가 가장 컸다. SL의 음색은 그 어떤 로드스터보다 또렷하고 웅장하다. 초저음역을 내는 서브우퍼를 대시보드 아래에 넣고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센터 스피커 등으로 고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제약이 많고 음악 감상이 어려운 로드스터를 위한 독특한 설계다. 이런 설계는 SL 데뷔 이후 S 클래스를 거쳐 C 클래스와 E 클래스에도 도입됐다. 역시 벤츠는 작업 좀 할 줄 아는 차다. 글_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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