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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TREND_Lifestyle

역사와의 조우

400년 역사를 지닌 최초의 여관 유선관. 그곳에서의 하룻밤은 그 자체가 역사적이다

2017.04.28

빗방울이 떨어진다. 처마에, 마당에, 툇마루에, 소나무에.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냐마는, 이곳에선 중력의 질감이 다른 것처럼 더 깊고 그윽하며 촉촉한 소리를 낸다. 때마침 멀지 않은 사찰에서 무겁고도 진중한 종소리가 깊은 어둠 속에서 아주 낮게 흩어진다. 깊고도 깊은 사색에 빠져들고 싶은 시간. 이곳은 400년이란 길고 긴 역사를 간직한 한반도 최초의 여관 유선관(遊仙館)이다. 
“형! 밥 먹어요.” 사색의 시간은 아주 짧았다. 사실 모든 생각이 허기에 집중돼 사색이란 걸 할 기력이 없었다. 유선관은 과거 대흥사를 찾는 신도나 수도승들의 객사로 잠도 자고 밥도 먹는 곳이었다. 즉, 여긴 밥도 해준다는 말이다. 사실 유선관 주변에 식사할 수 있는 곳도 없다. 
방에 앉아 있으면 큼지막한 밥상이 들어온다. 마당 한편에 놓인 100여 개의 항아리와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건대 분명 혀를 희롱하는 음식들이 기가 막힌 맛을 선사해줄 것이다. 더군다나 여긴 맛의 고장 전라도 아닌가. 

 

 


유선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376

 

반찬이 16가지에 시래기된장국까지 큰 밥상이 좁게 느껴진다. 모든 반찬이 맛깔스럽지만 특히 상 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꾸덕꾸덕하게 말린 우럭조림은 감히 천하 일미라 하고 싶다. 그래, 우린 이걸 먹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6시간을 달려온 거였다. 
오늘 아침, “형! 나 한국에서 운전한 지 10년은 된 거 같아요.” 만화가 이크종과 함께 하는 여행기 첫날부터 그는 운전을 안 하겠다는 굳은 서약과 맹세를 던졌다. 뭐, 운전시키려고 이크종과 함께하는 여행을 기획한 것은 아니니 별 상관 없다. 그는 앞으로 여행의 순간순간을 일러스트와 카툰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가 운전을 안 해도 상관이 없는 이유는 운전 잘하는 사진가 박남규와 인턴 에디터 박호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맞다. 남자만 넷이다. 남자들끼리만 모였을 때 하는 이야기는 아주 뻔하다. 정치, 스포츠, 군대, 자동차, 여자. 화두가 몇 개 없으니 대화는 길지 않았다. 더구나 봄 햇살이 목덜미를 간질이며 어서 잠에 빠져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형! 나 어제 밤새 작업했어요.” 이크종이 가장 먼저 취침을 선언했다. 그렇게 가장 어린 박호준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셋은 눈을 감았다. 

 

 


렉서스 ES 300h는 운전이 쉽고 편해 장거리 여행에 든든한 동반자가 돼주었다. 연비도 좋아 주유 한 번 안 하고 서울-해남을 왕복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가는 길은 참 멀고도 멀었다. 그럼에도 비루한 몸뚱이를 건사할 수 있었던 건 렉서스 ES 300h 덕분이다. 조용하고 편하면서 안락하다. 더불어 몸에 착 감기는 느낌까지. 이 차는 탈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지난해 여름 여러 렉서스 모델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도는 여행기에서도 난 줄곧 ES 300h만 탔다. 
해남까지 두세 번 쉬고 도착하니 부지런히 서둘렀음에도 오후 4시가 가까웠다. 처음 간 곳은 송호 선착장. 무슨 목적을 두고 이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느 관광객처럼 남해의 풍광과 어촌의 정경을 보고 싶었다. 
뭐, 사실 별거 없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 배들이 갯벌에 살포시 얹혀 있고 그 배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그림처럼 앉아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참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풍경이다. “아주머니! 지금 뭐 하세요?” ES 300h 뒷자리에서 잠을 아주 잘 잔 이크종이 우렁찬 목소리로 한가로운 시간과 공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몸뻬 차림의 아낙이 허리를 펴고 뒤돌아본다. “바지락 캐지. 여긴 뭐덜라고 왔당가?” 이크종보다 목소리가 크다. “그냥 이것저것 사진 찍으러 다녀요.” “여가 뭐 찍을 게 있다고.” 마치 두 사람이 아는 사이 같다. 그런데 바지락칼국수에 들어가는 그 많은 바지락을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줍는 줄은 전혀 몰랐다. 
바지락 아낙과 인사하고 유선관으로 향했다. 유선관은 두륜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흥사에 있다. 두륜산은 수백 년 수령의 동백나무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동백꽃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가을이면 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에 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고 한다. 

 

 


‘ㅁ’자 구조인 유선관 마당 한 가운데 아담한 중정이 있다. 어느 방이든 방문을 열면 이 작은 중정이 보인다.

유선관은 숙박뿐 아니라 등산객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해물파전과 도토리묵 등을 판다. 둘 다 먹어봤는데 도토리묵을 추천한다.

이곳에 자리한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창건됐으니 올해로 1474년 된 사찰이다. 삼국,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그 긴 세월 동안 삶에 지친 민초들의 마음에 평온과 안정, 위안을 주는 곳이었을 게다. 그게 종교의 힘이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대흥사를 찾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종교적 이념이 다르다 하여 기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곳은 굳이 대흥사가 아니더라도 자연이 선사하는 기쁨만으로도 충족스러우니까. 
400년 전통의 유선관은 앞서 말한 것처럼 대흥사 손님맞이용 방이었다. 100년 전에 건물을 새로 건축하고 40여 년 전부터 다시 여관 영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에 외형은 그대로 두고 마당을 넓히고 아궁이를 보일러로 개수해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100년 전 그대로인 툇마루와 굵은 대들보 등은 군데군데 해지고 기울어지기도 했다. 
사실 유선관은 100년 후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편하고 익숙한 구조는 아니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고 100년 전 건물이니 방음이 잘 될 리 만무하다. TV도 침대도 없다. 이불 몇 채와 작은 앉은뱅이책상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이곳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다. 우린 매일매일 바쁘게 또 바쁘게 무언가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담한 마당을 거닐며 작은 연못에서 노니는 금붕어를 보거나 유선관 바로 옆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는 것뿐이다. 주변을 거닌다 해도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새어드는 달을 보는 게 고작이다. 
적막할 만큼 고요한 곳이니 생각이 생각을 덮을 정도로 깊은 사색을 하기에 좋다. 하지만 이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불을 펴기도 전에 잠에 빠져든 상태가 될지 모르니까. 이곳까지 내려오는 내내 가장 깊은 수면에 있던 이크종이 그랬다. 그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덕분에 새벽 3시 잠들어 있는 천지 만물을 깨워 중생들이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대흥사 도량석과 새벽 예불 소리까지 들었다.

 

 

이불을 개고 코골이 삼인방을 깨워 부랴부랴 땅끝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지를 해남으로 잡은 이유는 땅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땅의 끝은 다른 말로 땅의 시작이니까.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보며 새롭게 시작하는 여행기가 잘되길 바라본다. 이달부터 독자들은 토요타·렉서스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그림과 사진이 함께하는 색다른 여행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해남 땅끝과 유선관이다. 
여행은 일상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또 다른 일상을 맞는 동력이다. 여행자들은 여행의 모든 순간순간이 기적과 같은 치유의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이런 기운이 <모터 트렌드> 여행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란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여행, 유선관

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박남규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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