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레빈슨을 들을 수 있는 자동차는 렉서스밖에 없다. 가뜩이나 조용하다고 소문난 렉서스인데 끽소리도 내지 않는 ES 300h가 시승차로 걸렸다. 마크 레빈슨을 마치 벌거벗긴 채로 시험하는 기분이다.
차에 들고 탄 음반은 세 개다. 아델의 <25>와 비욘세의 <레모네이드(Lemonade)>, 영화 <라라랜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두 장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작과 한 장의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작이다. 마크 레빈슨이라면 당연히 특별하게 검증된 음악으로 상대해야 한다,

마크 레빈슨은 렉서스의 설계부터 생산 과정에 참여하며 오디오 시스템을 적용했다. 생생한 음질은 물론 전력 소모와 시스템 무게도 고려했다. 

먼저 아델의 <25>를 틀었다. 첫 번째 곡 때문이었다. ‘헬로(Hello)’. 아델은 이번 앨범을 통해 사운드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사운드의 부피감을 끌어올렸고 리듬에 공명감을 높였다. 그렇게 기존 모습을 탈피하고자 했다. 그래서일까? 그나마 이전의 아델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이 ‘헬로’였다.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아델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깔끔했다. 후렴구로 이어지면서 악기가 쌓이고 볼륨이 올라가며 공명이 짙어졌다. 마크 레빈슨 스피커도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입체적인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아델은 소리의 높낮이가 정확히 구분될 만큼 치밀한 사운드스케이프(Sounscape)를 구성했다. 마크 레빈슨은 아델의 이런 노력을 그대로 재생했다. ‘러브 인 더 다크(Love in The Dark)’ 같은 곡은 각 악기가 들리는 위치와 각 음의 높낮이가 하나하나 느껴질 정도로 뚜렷하고 생생했다.

하지만 낮은 음이 강조될 때마다 스피커가 떨렸다. 일상에서 즐길 때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본격적인 감상을 위해 소리가 온몸을 감쌀 만큼 볼륨이 높을 때면 여지없이 스피커가 떨렸다. 아울러 낮은 음들이 바닥에서 소리를 탄탄하게 받쳐주지 못했다. 소리가 울리는 위치 자체가 높아서 전체적인 사운드를 약간 가볍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비욘세의 <레모네이드>를 듣기 전 부담이 생겼다. 비욘세는 리듬 앤드 블루스와 소울, 힙합 등에 음악적 뿌리를 둔 음악인이다. 아델보다 리듬감과 베이스가 강조됐을 게 분명했다. 굵고 진한 리듬과 베이스를 마크 레빈슨이 받아낼 수 있을까?

비욘세의 <레모네이드>는 베이스와 리듬이 모든 음악에서 바탕을 이룬다. 하지만 의외로 <25>만큼 소리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가벼운 느낌의 퍼커션, 장식 같은 미디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스피커의 부담은 덜했다. 베이스 볼륨도 <25>보다 낮았다. 

마크 레빈슨은 비욘세의 <레모네이드>를 재생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종종 베이스를 들려주는 스피커가 찌르르 떨었지만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소리를 건조하게 들려주는 느낌도 별로 의식되지 않았다. <레모네이드>에는 힙합부터 컨트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녹아들었고 수많은 악기가 여기저기 들어가 있다. 어찌 보면 산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앨범이다. 앨범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각각의 트랙이 정말 뛰어나지만 장르의 혼재와 사운드의 다양성이 집중력을 흩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뛰어넘어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비욘세의 탁월한 보컬 때문이었다. 보컬 위주의 편곡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그녀의 보컬 덕분이다. 아델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 비욘세가 좀 더 낫다.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25>와 <레모네이드>라면 비욘세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을 받고 트로피를 꺾어 비욘세에게 영광을 돌린 아델의 심정을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엄청난 두 앨범을 들으니 <라라랜드>의 OST는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뮤지컬 음악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25>나 <레모네이드>처럼 완성도 높은 사운드와 음악적 실험을 기대하긴 어렵다.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는 배제하는 게 뮤지컬 음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지 못한 채 OST만 듣고 그 감동을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라라랜드> OST는 영화를 보고 들어보는 편이 좋겠다.   글_고정식(<카미디어> 기자) 사진_송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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