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깊이를 확인하려면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포용하고 인정하는지를 보면 된다.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차를 요구하는 소비자 구성은 사회성이나 독창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그 제품이 팔리는 시장에 따라, 경제적 변화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태초의 자동차가 나왔을 때부터 정해진 답 없이 여러 변형이 나왔다.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제작사의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소비자들이 느꼈던 불편을 해결하면서 발전했다. 하지만 모두 살아남진 못했다. 그 차가 팔리는 시장의 선택으로만 살아남거나 사라졌다. 

지금도 자동차 회사들은 전 세계에서 팔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비용을 들여 만든 차가 더 많은 곳에서 팔린다면 최선의 결과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 1990년대 월드카라는 개념으로 나왔던 많은 자동차가 그랬다. 여러 회사가 공동 개발한 차를 배지와 이름을 바꿔 파는 방식인데, 막상 성공한 차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면 소비자 취향에 맞춘 차를 내놓기가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시작부터 짬뽕이나 잡탕밥으로 했으니 양념이나 조리 방법을 조금 다르게 한다고 근원이 바뀔 리 없다.

결국은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걸 더 잘할 때 성공한다. 독일 브랜드가 좋은 예다. 전 세계적으로 벤츠, BMW, 아우디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이고 폭스바겐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 세계 1위는 폭스바겐 그룹이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젤 게이트 사태 때문에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판매량이 반토막 났지만, 독일차 점유율은 여전히 60퍼센트가 넘는다. 독일과 유럽 주행 환경에 맞춘 탄탄한 핸들링과 다운사이징 엔진을 적극 활용한 뛰어난 기술력에 최근 들어 고급스러움이 더해진 실내 등이 성공 요인일 것이다. 

그런데 독일차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사실로 이들을 자동차의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자동차에 절대적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는 각각 평가 기준이 달라야 한다. 목표 고객에게 맞는지, 판매가격은 적당한지, 그에 맞춰 성능은 어떤지 살펴야 한다. 애초 목표가 다른데 무조건 하나의 기준만을 적용해 평가하는 건 평가가 아니라 왜곡이다. 

이런 오류는 자칭 차를 안다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저런 차를 타본 후 독일차가 가진 특정 부분의 우수성을 절대적으로 믿고 다른 차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건 그 차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편협한 시각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옳다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주관은 필요하지만 취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취향과 기준을 구별하지 못하면 평가를 할 수 없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독일차에 편중된 시각으로 국산차나 미국, 일본차를 평가하면 어설픈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론칭한 링컨 컨티넨탈에 대한 평가가 그랬다. 왜 미국산 럭셔리 세단에 독일차 잣대를 들이대는가? 물론 대세가 독일차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크고 넓은 차체와 부드러운 승차감을 ‘공간 낭비가 심하고 출렁인다’고 표현하는 건 지나쳤다. 또 독일차에 비해 조립 품질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부분이 그렇다는 지적은 없다. 간격이 넓어 보인다는 느낌을 독일차보다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특히 승차감이나 핸들링에선 특성이나 목적과 무관한 평가가 나온다. 차체 길이가 5미터를 훌쩍 넘는 미국산 세단이 가져야 할 핸들링 특성은 무엇일까? 날렵하고 빠른 반응? 탄탄하고 롤이 거의 없는 즉각적인 핸들링? 컨티넨탈은 안정적인 직진 성능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우선이다. 산길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굽이치는 고속도로나 국도에 어울리는 차다. 고속 안정성도 시속 200킬로미터에서가 아닌 미국 환경에 맞춰 시속 140킬로미터 이내의 여유로운 크루징을 봐야 한다. 왜 모든 기준이 아우토반에 맞춰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이 차를 만든 목적과 방향이 아니다.  

이런 관점은 국산차에도 마찬가지다. 새 차가 나오면 독일차 기준을 내민다. 물론 제작사에서 그렇게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유럽 주행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럽에는 부드럽지만 끈질기게 노면에 붙어 있는 프랑스차, 스포티함과 고급스러움을 함께 지닌 영국차, 비현실적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탈리아차도 있다. 독일만 유럽 자동차 회사인 건 아니다. 

자동차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절대적 기준은 있을 수 없다. 많은 독일차가 여러 세그먼트에서 잘 만들어진 모델들을 팔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기준이라 할 순 없다. 독일차가 만든 기준 이외에도 자동차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노면 진동을 잘 걸러내는 미국차가 있고, 운전이 쉽고 오랜 시간 변치 않는 성능을 내는 일본차의 특성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국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전자장비와 편안한 시트를 제공하는 국산차도 있다. 각각에 따라 만족하는 소비자는 다르다. 게다가 이런 세분된 소비자의 요구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하나의 물건으로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 모든 차는 나름의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은 독일차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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