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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코스와의 협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스물일곱 살의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아직도 할 말이 많다.

2017.03.14

1 나란히 놓인 포브라더스 체어에 앉은 디자이너 문승지. 2 포브라더스의 두 번째 버전인 이코노미컬 체어. 

 

제주도, 코스(COS), 북유럽 스타일.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다. 문승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패션 브랜드 코스와 협업한 첫 한국 가구 디자이너이고, 북유럽은커녕 해외 여행도 가보지 못한 그가 만든 의자는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숱한 매체에 실렸다. 문승지의 의자가 스웨덴 패션 브랜드 코스의 눈에 든 4년 전부터 그는 수도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왔다. 혹시 디자인보다는 말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아닐까? 인터뷰에 앞서 일말의 편견이 생겼음을 고백한다. 


“인터뷰는 어디서 해요? 옷은 뭘 입죠? 가구는 뭘 촬영할까요? 저의 작품이 놓인 공간이 몇 곳 있는데, 먼저 사진 보내드릴게요!” 인터뷰이로부터 그렇게 여러 번 전화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만나기도 전에 난 이미 그와 친해진 기분이었다. 인터뷰 당일, 미리 도착한 협찬 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에디터를 기다리던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20대였다. 거침없는 당돌함, 끓어넘치는 에너지는 첫인사를 나눈 찰나에도 내게 전해졌다. 촬영과 인터뷰가 이어진 약 2시간 30분 동안 내내 눈 속에 반짝이던 총기! 그는 이 순간을 명랑하게 즐기고 있었다. 


문승지는 최근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팀 레너트와 샌더가 감독한 영상 프로젝트 ‘뮤지컬 체어스’를 통해 약 3년 만에 코스와 재회했다. 뮤지컬 체어스는 가구 디자이너 6명이 의자 5개를 놓고 의자 뺏기 게임을 한다는 콘셉트의 광고 캠페인이다. 캐나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덴마크, 한국의 디자이너가 각국의 대표 격으로 참가한 셈. 이 가운데는 한국에서 이른바 북유럽 스타일로 대변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디자인 하우스 ‘헤이’의 공동 설립자 메티 헤이도 있었다. 그 옆에는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수식어를 단 또 다른 디자이너 문승지가 있고.  

 

 

북유럽 스타일이 뭐길래 
“그래서 도대체 북유럽 스타일이 뭔데?” 
문승지가 하는 작업마다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면서 그의 머릿속엔 늘 물음표가 떠다녔다. ‘나는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인데, 대체 왜?’ 그렇게 평가받는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명징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이유를 간절히 알고 싶었고, 직접 그곳에 가서 눈으로 보고 느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호기심과 객기로 그는 마침내 비행기표를 손에 쥐었다. 최종 목적지는 덴마크. 북유럽에서도 물가 높기로 악명이 높은 덴마크로 떠나는 그의 수중에 들린 돈은 단 200만원이었다(놀랍게도 그는 1년 넘게 그곳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처음 코펜하겐에 도착해 오롯이 혼자 한 달을 지냈어요. 그런데 저, 혼자 있는 거 잘 못 견디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친 척하고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덴마크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가 호스트하는 파티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초대요? 당연히 안 받았죠! 그런데 운 좋게도 거기에 있던 한국인 스태프와 만나서 친해지고 나니 그다음엔 헨릭이 저보고 ‘헤이 프렌드’라고 하더군요. 친구의 친구라면 당연히 자기 친구라면서요. 저는 ‘나, 네 전시 대림미술관에서 봤어!’라는 말로 화답했죠.” 


그렇게 네트워크를 넓혀가면서 다양한 덴마크 아티스트를 친구로 두고 덴마크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하게 됐다. 코펜하겐은 그가 꿈꾼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다가 한번 문을 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변신하는 덴마크 사람들에게서 제주도 사람의 정서와 향기를 느꼈다. 코펜하겐은 그에게 낯선 도시가 아니라 제2의 제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다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디자인 감성은 시종일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웬만한 갤러리보다 수준이 높은 동네의 크고 작은 가구 숍까지, 그에게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말하는 북유럽 스타일과 그들이 느끼는 그것은 전혀 달라요. 한국에서는 파스텔 톤 컬러에 아기자기하고 딱 떨어지는 디자인을 북유럽풍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진정한 북유럽 스타일은 사람들의 마인드에서 나와요. 집집마다 살고 있는 사람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죠. 덴마크에는 ‘휘게’라는 문화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가까운 사람들과 편한 소파에 앉아 촛불 하나 켜놓고 ‘오늘 뭐했어? 어제는 뭐했어? 오늘 본 영화 아주 감동적이더라’ 이런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거죠. 휘게를 중요하게 여기니 집 안을 꾸미는 데 공을 들일 수밖에요. 평범한 사람 누구나 각자 자기 집의 스타일리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셈이죠. 특히 소파에 투자하는 걸 아끼지 않더군요. 가구 디자이너에게는 아주 감동적인 풍경이죠.” 

 

1, 2 포브라더스 체어가 전시된 핸드픽트 호텔. 3, 4 네일 브랜드 데보라 립만과의 협업 작품. 5 목재의 낭비 없이 완성되는 의자 포브라더스 체어. 6 자신의 작품 사이사이를 감상하듯 걷는 문승지.

 

이야기를 디자인하다 
사실 문승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북유럽보다 ‘스토리텔러’다.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에 그의 디자인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달라지니까. 말하자면, 그가 디자인하는 건 제품 그 자체의 하드웨어 이전에 ‘이야기’라는 소프트웨어다. 대표적으로 코스와 협업한 포브라더스 체어가 그렇다. 포브라더스 체어는 엄청나게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의 이슈를 담은 의자다. 목재 한 판에서 의자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디자인하고 잘라 붙여 버려지는 나무가 전혀 없도록 하는 원리다.


“제품 자체를 스토리로 엮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해요. 이야기로부터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거죠. 그 흐름에 억지가 있어서는 안 돼요. 그래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칠 때도 많은데, 제 디자인 안에서 그걸 해결해가는 게 저만의 작업 방향이에요. 안 되는 것은 과감하게 플랜 B로 가는 거죠. 자연스러운 서사,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여줄 것인지가 제게는 중요해요.” 


그의 디자인은 크게 보면 스타일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묶인다. 이야기 속에서 형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채 뻗어나간다. 굴곡진 디테일과 간결한 선을 지닌 이코노미컬 체어가 다소 투박한 포브라더스 체어의 두 번째 버전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앉기 편한 의자는 아니었기에 사용 목적이 제한된 포브라더스 체어를 좀 더 스탠더드한 버전으로 만든 것이 이코노미컬 체어다.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완성되는 그의 디자인에서 불필요한 수식어와 군더더기는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 때로는 디자인적 욕심마저 버린다. 평소 진하고 톤다운된 초록색을 좋아하는 그가 유독 가구에서 컬러 사용을 절제하는 이유다.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포브라더스 체어와 이코노미컬 체어의 컬러가 화려해지면 메시지가 중화될 것 같았거든요. 포브라더스는 나무 본연의 컬러, 이코노미컬 체어는 파스텔 톤을 선택했어요. 사람들이 오직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요. 눈이 편하면 메시지 전달에 방해를 좀 덜 받을 거 같아 최선의 선택을 한 거예요.” 


다분히 정적인 가구 디자인만 보고 상상한 문승지라는 인물이 실제로는 너무나 동적인 사람이라 놀랐다. 에너지의 힘을 믿는다는 그는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닥치는 대로. 문승지의 작업 방식도 그렇다. 만들고자 하는 가구가 있으면 공장으로 뛰어가고 한국에서 한계가 있다면 중국으로 간다. 돈이 없으면 돈이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 거침이 없는 그의 삶의 여정을 듣다 보니 기개 넘치는 대학생의 첫 배낭여행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행할 때는 기대 반 걱정 반인데, 사실 저는 기대만 해요. 그게 자신감으로 치환되는 거 같아요.”
역마살이 단단히 꼈다고 말하는 그의 방랑벽은 디자인에도 온전히 묻어난다. 의자 디자인, 공간 스타일링, 패션 매거진과의 작업, 패션 브랜드나 호텔과의 협업 등 그 영역도 방대하다. 디자인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지치지 않는 여행자다. 그의 여행길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수치로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디자인을 좇는 문승지의 여정은 여전히 기대만으로 가득할 것만은 분명하다.  

 

더네이버, 가구디자이너, 문승지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김잔듸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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