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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의 관찰자, 안규철

평창동, 그곳에서 우리가 만난 건 개념미술가가 아니었다. 안규철, 그는 시인이거나 문학가일지 모른다. 하물며 예술가를 가장한 서툰 과학자일지 모른다.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알 수 없는 전시 제목을 들고, 뿌옇게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그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2017.03.13

그는 마치 중독자처럼 작업실에 앉아 ‘노동’을 즐긴다. 켜켜이 먼지 쌓인 작업실의 흔적이 그 노동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사물의 이면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처럼, 작업실 안과 밖의 안규철을 카메라에 담았다.   

 

평창동 언덕길, 그것도 굽이굽이 끝을 향해 다다를 즈음, 그의 집 주소를 찍은 내비게이션이 멈췄다. 한데 텅 빈 도로뿐, 집의 대문조차 보이지 않는다. 비탈진 평창동의 지반 덕에 도로에서 보면 집은 교묘히 감춰진 채다. 당혹감도 잠시, 트레이드마크 같은 반백 머리를 뽐내고 나타난 안규철 작가가 반갑게 손짓을 건넨다. 1층 거실로 들어서자 하얀 창 너머로 평창동 특유의 평온한 풍경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감탄사마저 부질없는 풍경이라니. “구기동 쪽에 살다가 이사를 온 지 2년 정도 됐어요.” 넉넉한 풍경과 그의 단출한 삶의 흔적이 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작업실은 이쪽입니다.” 1층 거실을 축으로, 지하 1~2층 아래로 내려가면 그의 작업실이 자리한다. 구조상으로는 지하지만, 비탈진 지형 덕에 사방이 빛으로 스민 그의 작업실은 그 어떤 작품보다 빛나고 있었다. 조각, 설치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 그의 작업 특성상 온갖 잡동사니가 난무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정돈된 모습이다. “큰 목재 같은 걸 다룰 때는 학교의 작업실을 이용하고, 이곳에서는 드로잉을 하거나 소품 위주의 작업을 하죠.” 그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잉태되는 소리 없는 공장. 한쪽 벽면에는 그의 취향을 보여주는 책, 특히나 문학 관련 책들이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채다. 그에게 또 하나의 재주(?)가 있다면 바로 글쓰기. 조소과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했으나 문학, 연극 등 다른 장르에 관심이 높았던 그. 실제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7년간 잡지사 기자 생활을 했고, 책도 출간했을 만큼 글 쓰는 일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글 쓰는 것은 천성 같은 건데요. 그 덕에 그림 그리는 놈이 글을 쓰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아야 했죠.” 누군가에게는 미술가의 신분으로 문학 잡지에 매달 글과 그림을 연재하는 그가 한곳에 열정을 쏟지 않는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터. 하나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품을 보면 그의 진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문학을 하기엔 자신이 없었죠. 그런데 그것이 제 작업의 가장 좋은 출발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공통점은 감정이죠. 그리고 그 접점은 언어를 같이 쓴다는 거고요.” 그는 이러한 언어(글)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업 요소로 끌어들인다. 이는 그의 전시 제목에서도 목격된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는 마종기 시인의 시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유행가의 단골 주제처럼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린 ‘사랑’. 대체 그는 왜 청춘도 아닌 지금 다시금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어놓는가. 그는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 잊혀지고 사라진 ‘보이지 않는’ 사랑을 조용히 끄집어낸다. 그 모습은 마치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문학가이며 철학자일지 모른다는 단서는 그의 작품 어디에서건 발견된다. 못 8600개가 촘촘히 박혀 있는 벽. 그 벽을 채운 것은 다름 아닌 메모지다. 그 메모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워하는 것, 부재하는 것의 이름들로 채워진다. 물론 이것을 채워나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수만 개의 단어로 채워진 그리움의 그것. 안규철은 이를 ‘기억의 벽’이라 이름 붙였다. 이뿐인가. 9개의 동심원으로 구획된 연못 속에 놓인 물고기 9마리를 통해 무심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고독이 교차하는 역설의 풍경을 던지는 ‘아홉 마리 금붕어’, 1000명의 관객이 국내외 문학 작품의 필사에 참여하는 ‘1000명의 책’, 높낮이가 다른 화분과 무관하게 자신의 키를 키워 수평을 이룬 ‘평등의 원칙’ 등 그의 작업에는 늘 농익은 철학자의 질문이 배어 있다. 시인의 고뇌가 읽힌다. 그 때문일까. 안규철의 작업은 개념미술이지만 문학적이며 따스한 삶의 연민마저 느껴진다.

 

 

1 거실 너머로 넉넉한 평창동의 풍경이 덤으로 펼쳐진다. 어느덧 봄이 오려는 듯, 유난히 볕 좋은 그의 집이다.  2 홈이 파인 나무와 나무 공을 가지고 실험 중인 안규철.  3 동그란 원형의 궤도를 따라 구르는 구슬. 이번 전시에 설치할 ‘머무는 시간 2’의 모형으로, 그는 마치 과학자처럼 구슬을 굴리며 매일 실험을 펼쳤다.  

 

거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안규철의 작업실. 사방이 빛으로 싸인 그곳에 앉아 그는 아이디어를 드로잉하고 실험을 펼친다. 그 모습에서 얼핏 아인슈타인을 본 것도 같다.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당신만을 위한 말’은 옛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해요.” 두꺼운 진회색 펠트로 목재 구조를 감싼 낯선 구조물. 마치 추상 조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3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간의 전시가 문학적인 서사를 구성했다면 이번 전시는 사물의 상태와 물성에 주목한다. “펠트라는 소재는 방음 장치 역할을 하죠. 사람들이 귀와 얼굴을 파묻고 속삭이는, 일종의 고백 장치라고나 할까요?” 펠트천은 외부의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지만, 역으로 아무것도 밖으로 되돌려주지 못하는 무거운 침묵을 상기시킨다. “이 펠트 조각은 세상의 말이 사라지는 소실점이자, 우리의 비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며, 진실과 거짓 너머 영원한 침묵으로 이어지는 통로인 셈이죠.” 이 조용한 침묵 덩어리 앞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아도 좋다. 그 어떤 부끄러움 없이 말이다. 


“작가는 아무것도 안하고 중력이 다 한 셈이죠(웃음).” 그가 난데없이 꺼내 보인 것은 마치 웜홀처럼 중심부로 갈수록 기울어진 형태의 구조물과 작은 구슬. 얼핏 형태만 보면 모기향의 구조와 닮았다. ‘혹시 젊은 시절의 아인슈타인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첫 만남 후 가진 몇 초간의 상상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그즈음이었다. “이 구조를 직접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기울기를 3cm로 했더니 구슬이 굴러가지 않더군요. 다시 6cm, 9cm, 그것도 안 돼 11cm까지 기울기를 조정한 후에야 완성됐죠.” 원래는 원 궤도를 따라 들어간 구슬이 다시 바깥으로 되돌아나오게 설계하고 싶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한데 이 구조가 왠지 낯설지가 않다. “맞아요. 원래 아이들 장난감에 있는 것이죠. 아무것도 아닌데 재밌잖아요. 아이들의 장난감을 크게 확장한, 어른 장난감이라 할 수 있죠.” 중력에 의해 정해진 궤도를 따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슬. 만약 이 구슬처럼 우리의 인생도 매일 똑같다면? 이 끔찍한 생각에 빠질 무렵, 그가 또다시 무언가를 꺼내 보인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홈이 파인 나무와 나무 공. “움직이는 레일처럼, 전시장 벽면에 ‘ㄷ’자, 혹은 ‘ㄹ’자 형태의 나무 궤도를 만들고, 그 위에서 나무 공을 굴리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죠. 가만히 굴러가는 공을 보고 있자면, 묘한 중독성이 있어요. 마치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계속 보게 되죠.” 중력에 의해 흐르는 이 시간. 시작과 끝이 있는 이 시간 속에서 우리가 ‘머무는 시간’은 지금 어디쯤일까.    


“이건 그냥 의자인데, 다리가 배를 젓는 노로 변형된 모습의 의자죠. 재미있는 건 의자인 상태를 포기해야 노를 저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죠.” 머물고 있으면 떠나고 싶고, 떠나야 하면 반대로 머물고 싶은 마음. 이는 유학시절부터 그의 마음을 흔든 근원의 질문이기도 하다. 의자이지만 불가능한 노가 되려는 꿈, 양인데 맹수가 되려는 꿈. 그는 불가능한 꿈,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사물을 통해 되묻는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그렇다고 머물 수도 없는 우리의 삶을 향해서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생기는 보름달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달을 그리는 방법’, 검색창에 친 단어의 예문들을 일일이 캔버스에 써내려간 작업 등 그의 말마따나 ‘엄청난 삽질’로 이루어진 평면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이러한 메커니즘의 굴레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 질문하지 않죠. 그렇다면 왜 올라가야 하나? 영(0), 마이너스면 안 되나? 우리는 이러한 질문 없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그는 세상은 감옥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누구보다 먼저 그러한 질문을 해야 할 사람 역시 예술가일 것이라고. 


“제 작품 앞에는 개념미술이라는 딱딱한 라벨이 붙어 있죠. 사람들의 감정, 언어, 이 공통의 것들을 미술 안으로 가져와 건조한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간을 향한 내밀한 시선. 그 때문일까. 얼핏 무미건조해 보이는 개념미술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문득 그의 재주는 글쓰기도, 예술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가 가장 잘하는 재주는 우리가 놓친 평범한 사물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를 누구보다 끈질기게 관찰하는 기막힌 능력일지 모른다.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도구(삶)의 이면들. 안규철이 들려주는 ‘당신만을 위한 말’이 더욱 듣고 싶어지는 이유다.

 

1 Wall of Memories, 2015, Nails, Paper, Steel, and Wood, 520×1400cm, Courtesy the Artist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Photo by Lee Euirock,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2 Words Just for You(Drawing for Installation), 2017, Wooden Structure, Felt, Approx. 120×160×50cm 3 Nine Goldfish (Detail), 2015, Stainless Steel, Bubble Generator, Underwater Pump, Motor, Water, Goldfish, 400×400×30cm, Courtesy the Artist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Photo by Lee Euirock,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4 Principle of Equality, 2014, Pots and Wooden Stand,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and Hite Collection, Photo by Lim Jang Hwal,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5 Two Bicycles, 2014, Bicycles and Iron,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and Hite Collection, Photo by Lim Jang Hwal,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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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박우진 /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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