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DAILY PICK_Car&Tech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관

교차로 진입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이제 막 뛰기 시작한 아이처럼 달려드는 대신 잠시 기다려 다음번에 이용하면 된다

2017.02.27

이든이는 또래보다 늦게 걷기 시작했다. 거의 반년 가까이 늦게 걸음마를 뗐지만 그 이후로 이든이의 보행은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다. 걸음마를 뗀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걷는 것보다 뛰어다니는 비중이 훨씬 많아졌다. 기어 다니던 소싯적(?)에는 거실을 가로지르는 데 3분은 족히 걸리던 아이가 이젠 3초면 같은 공간을 통과한다. 놀랍고 신기하다. 워낙 걷고 뛰기를 좋아하다 보니 점점 외출 기회도 늘어난다. 신발장에는 어느새 아이의 신발 여러 켤레가 들어섰다. 그중엔 언제 운전을 시작할지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둔 녀석의 드라이빙 슈즈도 보인다. 외출 때마다 무슨 신발을 신을까 심사숙고하는 딸아이의 찌푸린 미간을 보는 건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위해 신발을 더 사주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얼마간의 고민 끝에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면 녀석은 까치발을 딛고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출발 신호를 받은 경주차처럼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탓에 엘리베이터 안의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 따윈 없다. 사람이 가득 차 있거나 누군가 내리려는 사람이 있을 때면 정면충돌도 여러 번 겪었다. 내리려던 사람들은 작은 아이 하나 때문에 통행이 엉켜버리고, 결국 엘리베이터 문턱에서 작은 혼란이 발생한다. 특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라는 특수성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 처음엔 아이니까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습관을 만들어 줄 좋은 기회가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교차하는 공간에 대한 습관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먼저 내리고 탄다는 개념이 아주 익숙하다(물론 그런 기대에서 벗어나는 모습도 드물게 볼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 내부는 제한된 크기의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으로 밀고 들어가봐야 이동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나오려는 흐름을 막아 그 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24개월 이든이에게는 아직 어렵겠지만 우리는 순식간에 이를 판단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내리려는 사람이 있는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그 내부의 상황을 먼저 읽는다. 그다음 발걸음을 뗀다. 경우에 따라 상황이 좋지 않다면 몇 분 더 기다려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한다. 성인들의 아주 일반적 습관이자 이든이와 우리 어른들을 구분하는 차이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도로 위에서는 그런 사람들마저 종종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바로 교차로 꼬리물기다. 교차로는 여러모로 엘리베이터에 비유할 수 있다. 좁은 공간이면서 서로 다른 방향의 흐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비워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꼬리물기를 의도한 경우가 아닌데도 교차로 한가운데 멈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출발 신호 자체를 단순히 교차로 안으로 입장을 허용하는 신호로 이해하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교통 정체에 오래 노출돼 스트레스를 받은 운전자라면 더욱더 신호등이나 앞차의 움직임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차를 움직이기 십상이다. 사실 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것에 불과하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처럼 교차로 안의 상황을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면 된다. 교차로 진입 공간이 비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교차로를 빠져나갈 진출 공간에 내 차가 지나갈 자리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그곳에 확실하게 공간이 있거나, 다른 차들이 가득 멈춰 있다면 오히려 판단이 쉽다. 애매한 경우는 교차로 탈출 공간이 당장은 막혀 있지만 잠시 후면 차들이 빠져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때다. 그런 경우라도 과감히 정지선에 차를 세우고 잠시 기다려보자. 신호가 다시 끊기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들겠지만 그래도 여유를 갖는다. 일반적 교차로 크기라면 정지선 앞에서 출발해 교차로를 통과하는 데 3초면 되니 녹색 신호는 충분히 길다. 설령 그러다 신호를 놓치면 어떠한가? 2분 내외면 다시 녹색등이 들어온다. 붐비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과도 다르지 않다. 괜한 욕심에 꼬리물기로 교차로에 걸쳐 서버리면 연쇄 꼬리물기의 악순환을 자초할 확률도 크다. 다른 차량의 꼬리물기로 자기 신호에 움직이지 못한 운전자는 다음 신호에 진출 공간 확보가 안 되더라도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보복 심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과태료 부과와 다른 운전자들의 분노 어린 눈칫밥과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얻는 건 고작 몇 미터 앞선 위치뿐이다.   
이제 이든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무작정 뛰어들지 않는다. 분주한 교차로에서도 분명 그럴 것이다.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_최신엽

 

 

 

모터트렌드, 자동차

CREDIT

EDITOR / 강병휘 / PHOTO / 최신엽 / MOTOR TREND

Twitter facebook kakao Talk LINE
  • · (주)가야미디어  
  • · 등록번호:인터넷뉴스사업자 서울, 자00454  
  • · 등록일: 2014년 3월 10일  
  • · 제호: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 · 발행인: 김영철  
  • · 편집인: 백재은  
  • · 주소: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81길 6 06195  
  • · 연락처: 02-317-4800  
  • · 발행일: 2013년 8월 1일  
  •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재은  
  • · 사업자등록번호120-81-28164  
  • · 부가통신사업 신고 제 2-01-14-0017 호 통신판매신고 제 2009-서울강남-01075호  

Copyright kayamedia Corp.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