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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TREND_Lifestyle

Daddy, Me, Car

분명 아빠 차에 대해 물었는데 돌아오는 건 자기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7.02.10

1 스릴부터 사랑까지
김정석(29세, IT기업)

면허는 땄는데 차가 없다면? 카 셰어링? 10년 전엔 없었다. 제일 만만한 게 아빠 차였다. 그래서 아빠가 주무시기만을 기다렸다가 동그란 헤드라이트가 귀엽던 2005년형 코란도를 몰래 끌고 길을 나섰다. 주차해놓은 곳이 바뀌면 들킬까봐 커다란 돌을 가져다가 다른 차가 주차하지 못하게 막았다. 꽤 치밀했던 것 같다. 몰래 운전을 한다는 스릴과 처음 느끼는 속도감이 뒤섞여 목적지도 없이 서울 전역을 쏘다녔다.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스무 살이었으니까. 문제는 주차였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공식으로만 배운 주차와 새벽녘 좁은 골목길에서의 주차는 차원이 달랐다. 한참을 낑낑대던 나는 R기어와 D기어를 혼동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고, 차는 뒤가 아닌 앞으로 돌진해 벽과 부딪혔다. 세게 부딪힌 건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확연한 상처가 범퍼에 남았다.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다음부턴 몰래 타지 말라는 말씀뿐이었다. 차는 고치면 되지만 내가 다치면 어쩔 뻔했냐며 오히려 날 걱정하셨다. 훈훈한 결말 덕인지 몰라도 그날 밤의 아빠 차는 스릴, 해방감, 불안, 초조, 후회 그리고 아빠의 사랑까지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2 앞 유리 DNA
신현택(27세, 대학생)
아빠는 차를 타고 나갈 때 항상 앞 유리를 닦으셨다.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에도 예외는 없었다. 앞 유리가 깨끗해야 운전이 잘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앞 유리를 닦다가 사촌 누나 결혼식에 늦은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깟 앞 유리에 얼룩 좀 묻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얼마 전 친구들과 차를 빌려 속초로 놀러 갔다가 깨달았다. 나도 아빠와 같다는 걸. 친구들과 번갈아 운전을 했는데, 유독 나만 앞 유리에 민감했다. 결국 휴게소에 들러 앞 유리 전용 청소도구를 사 깨끗이 닦은 후에야 기분 좋게 운전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아빠처럼 행동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보고 자란 게 이렇게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 좋은 습관인진 모르겠다. 그래도 깔끔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아빠처럼 앞 유리를 닦겠다.

 

3 자동차 이상형
변영화(27세, UN 인권사무소 인턴)
딸은 아빠 같은 남자에게 끌린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동차에 관해서만큼은 맞는 말 같다. 어릴 때 아빠는 일 때문에 트럭을 주로 타고 다니셨는데, 차 안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구들이 가득했다. 흔한 방향제 하나 없었고 쇠붙이 냄새와 고무 냄새만 희미하게 배어 있었던 기억이다. 아빠 차는 복잡했지만 정돈돼 있었다. 그건 지저분한 것과 다르다. 운전석이 다른 차보다 높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승차감이 썩 좋지 않았을 트럭 조수석에 앉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세단보단 시야가 탁 트인 SUV를 선호한다. 흔히 사람들은 스포츠카를 섹시하다고 하지만 난 남자 냄새 물씬한 오프로드 자동차가 훨씬 매력적이다. 군데군데 흠집도 좀 있고 흙탕물도 튄 그런 차. 차 안에 목장갑 한 켤레와 자가 정비용 공구상자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4 자동차만 부자
김다혜(26세, 헤어 디자이너) 
어렸을 땐 아빠 차가 부끄러웠다. 아니, 싫었다. 우리 집은 도시 외곽에 있어서 아빠가 나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줬다. 열 살 정도 됐을 때 아빠 차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걸 처음 느꼈다. 아빠는 자동차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차를 자주 바꿨는데, 그동안의 차들을 대충 떠올려보면 허머 H2, 벤츠 G바겐, 지프 랭글러, BMW M3, 포르쉐 911 정도가 있었다. 이런 차를 끌고 학교 앞에 나타났으니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게 당연했다. 졸지에 난 재벌 딸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복에 겨운 일이지 뭐가 부끄럽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앞머리 스타일만 달라져도 금세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춘기 여학생들 사이에선 민감한 문제였다. 결국 고등학생 땐 버스를 탔다. 어쩌다 아빠 차를 탈 땐 학교와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빠 차가 좋았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차종별, 브랜드별 승차감과 감성이 어떻게 다른지는 많이 타본 사람이 제일 잘 안다. 덩달아 차 고르는 눈이 높아진 건 좋은 걸까? 아닌 것 같다. 난 아직도 마음에 드는 차가 없어 못 사고 있다. 

 

5 땡스, 대디
강형철(28세, 보안업)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연거푸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져 속상한 마음에 어디로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 차를 빌려 한밤중에 자유로를 무작정 달렸다. 당시 신형이었던 2013년형 그랜저는 꽤 잘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상심한 내가 걱정이 됐던지 여자친구도 동승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질주하다 임진각 주차장까지 가서야 차를 멈췄고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등받이를 젖히고 누웠다. 2년 넘게 티 안 내고 날 응원해줬던 가족과 여자친구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났다. 그러자 오는 내내 한 마디도 안 하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내 쪽으로 넘어와 날 안아주며 입을 맞췄다. 전에는 카섹스를 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졸라도 거부하던 그녀가 먼저 다가와서 더 흥분됐다. 인적 없는 휑한 주차장에서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카섹스를 했다. 아빠 차여서 더 자극적이었다고 말하면 불효자일까?

 

6 장난꾸러기
김소은(27세, 간호사)
“차가 힘들어하니까 내려서 좀 밀어라.” 이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고? 아빠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에게 진짜로 이렇게 말했다. 내리막길에선 “셋, 둘, 하나. 청룡열차 내려간다!”라고 외치며 두 손을 운전대에서 놓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옆에 앉았던 엄마가 왜 아빠를 말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만큼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땐 재미있었다. 평소엔 장난기 없던 아빠가 차에서만큼은 유독 유쾌했던 것 같다. 물론 재미는 재미일 뿐, 나는 절대 아빠처럼 운전하지 않는다. 성격상 뭐든 안전해야만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안전운전을 하게 하려고 어려서부터 충격요법을 쓰셨던 걸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그만큼 큰 그림을 그리실 분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7 다시 없을 모과
김한성(29세, 금융업)
아빠 차를 떠올리면 모과 향이 스친다. 인공적인 향을 싫어하셨는지 차 뒷유리 아래에는 항상 노란 모과 두 개가 있었다. 가끔 모과를 가지고 놀다가 향이 손에 배면 운전 중이던 아빠에게 맡아보라고 하기도 했다. 매번 내가 굴리고 던지고 손톱으로 찌른 탓에 아빠 차의 모과는 성할 날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모과를 못살게 굴어도 아빠는 꾸중하신 적이 없었다. 그저 웃으면서 “한성아, 모과가 좋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모과 향이 은은하던 아빠 차는 없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모과 향을 맡아도 감정이 복받치거나 울적해지지 않는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아빠처럼 나도 차에 모과를 넣고 다닌다는 걸 아셨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말이다. ‘역시 내 아들이네’라고 하실지, ‘야, 따라 하지 마!’ 하실지 궁금하다. 

 

8 카 레이서
정찬우(27세, KT M&S)
차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학원 대신 모터쇼에 꼬박꼬박 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바빠진 후에는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이나 잡지를 즐겨 본다. 왜 유독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지 되짚어보면 그 시작에 아빠 차가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수동변속기를 단 차가 흔했다. 1단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기어를 올려가며 가속하는 아빠는 당시 유행하던 만화영화 <포뮬러 레이싱>에 나오는 카 레이서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남자라면 1종 보통이지’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아빠도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를 타지만 나는 여전히 수동 변속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간혹 수동 변속 자동차를 만나면 클러치를 밟으며 변속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어 가슴이 뛴다. 조수석에 앉아 운전석의 아빠를 넋 놓고 바라보던 일곱 살 어린이처럼.  

 

 

 

모터트렌드, 자동차, 운전의추억

CREDIT

EDITOR / 박호준 / PHOTO / 조혜진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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