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MOTOR TREND_Lifestyle

낭만을 찾아서

ITX-청춘 열차에 내가 기억하는 낭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낭만을 발견했다

2017.02.07

처음 춘천 가는 기차를 탄 건 20년 전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춘천에서 대학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혼자 무궁화호 기차에 올랐다. 지금은 휘황찬란한 모습이지만 그때만 해도 청량리역은 낡고 보잘것없었다. 주말이면 역 앞은 MT를 가는 대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어렴풋한 기억에도 기차는 꽤 낡았던 것 같다. 좌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고 출입문 계단에 앉은 사람도 있었다.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끼기기긱’거리는 기차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기차 안은 꽤 소란스러웠다.

청춘과 낭만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경춘선 무궁화호가 사라진 건 6년 전이다. 상봉역과 춘천역을 잇는 복선 전철이 2010년 12월 개통되면서 경춘선 무궁화호도 생을 마감했다. 대신 ITX-청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차가 생겼다. 출발지도 청량리역이 아닌 용산역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근 10년 동안 춘천에 기차를 타고 간 적이 없다. 차를 산 이후로는 서울 근교는 무조건 차를 타고 갔다.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는 춘천까지 가는 시간도 한 시간 남짓으로 빨라져 굳이 기차를 타고 갈 이유도 희미해졌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ITX-청춘 열차를 봤는데 가운데가 위로 불룩 솟아 있었다. 2층 기차였던 거다. 유럽에서 타본 2층 기차를 우리나라에서도 탈 수 있다니! 그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난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지는 청량리역으로 정했다. 춘천 가는 기차는 왠지 청량리역에서 타야 할 것 같아서다.

 

ITX-청춘 열차는 모든 객차가 2층인 건 아니다. 4호차와 5호차만 2층으로 돼 있다. 완전한 2층은 아니고 1.5층쯤 되는 높이다. 기차의 겉모습은 앞뒤로 용이 그려 있는 것만 빼면 지하철과 비슷하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스르륵 문이 열렸다. 생각해보니 20년 전 무궁화호는 사람이 직접 문을 열었던 것 같다. 2층 객실이 있는 4호차와 5호차는 양 끝에 빈 공간이 있고 계단을 내려가야 1층 객실이 나온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2층 객실이다. 천장이 낮아 다락방 같은 기분도 든다. 생각보다 창은 넓지 않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깥 풍경이 재미있다. 색다른 기분이다. 기차는 매끈하고 부드럽게 달렸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옛날 말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기차 안은 더없이 조용했다. 깔끔하고 푸근한 시트와 깨끗하고 산뜻한 실내…. 분명 이전보다 열 배쯤 좋아졌는데 문득 옛날 무궁화호가 그리워졌다. 모든 게 새로워졌지만 낭만이 사라졌다.

 

기차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건 춘천이 아니라 가평이다.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남이섬을 찾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찾은 가평역 역시 몰라보게 달라졌다. 간이역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으리으리해졌다. 가평역에서 남이섬 들어가는 선착장까지 버스로는 20여 분, 택시로는 5분 남짓 걸린다. 택시 요금이 4000원을 넘지 않으니 세 명 이상이라면 택시를 타는 게 낫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남이섬 선착장에는 관광버스가 빼곡하다. 예전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남이섬과 선착장을 오가는 커다란 배가 연신 사람들을 토해낸다.

10월 중순의 남이섬은 아직 가을 옷을 입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여전히 짙푸른 초록색을 자랑한다. 은행나무 길도 노란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산책하는데 청설모와 다람쥐, 토끼가 알짱알짱 주변에서 뛰논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숲길이 싱그럽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눈사람 인형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연인,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달리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선착장역에서 중앙역까지 짧은 구간을 달리는 미니 열차엔 네 살쯤 돼 보이는 아이와 부모가 탔다. 여기저기서 즐거움이 뚝뚝 묻어난다. 가게 앞을 장식한 알록달록 화려한 꽃 화분을 보니 내 기분도 즐거워진다.

 

으리으리한 가평역 시골 간이역 같던 가평역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가평역을 드나드는 승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남이섬 선착장은 가평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다.

가평역에서 춘천역은 기차를 타도 되고, 지하철을 타도 된다. 춘천역 앞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춘천 시내를 관광하기에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시티투어버스다. 춘천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시티투어버스 승차장이 있는데 시간만 잘 맞추면 하루 종일 춘천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다. 춘천역에서 제이드가든, 남이섬을 지나 춘천역으로 돌아오는 A 코스와 신북맛집촌, 구봉산 카페거리를 돌아 춘천역으로 오는 B 코스, 강촌역과 김유정문학마을 등을 들르는 C 코스가 있는데 하루 승차요금 5000원으로 세 가지 버스를 모두 탈 수 있다. ITX-춘천 열차의 승차권을 출력해 보여주면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1000원을 할인받을 수도 있다. 일반 관광버스를 개조해 만든 춘천 시티투어버스는 실내에서 관광버스 느낌이 물씬 났다. 옆 창과 앞유리 위쪽에 빙 둘러 친 자주색 커튼이 옛날 관광버스를 생각나게 했다. 여느 시티투어버스처럼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게 아니라 앞자리에 앉은 가이드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그곳에 대해 설명해줬다.

 

춘천에서 요즘 핫하다는 소양강 스카이워크에 내렸다.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다리다.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유리인데 아래가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높이도 높지 않아 아찔한 기분도 별로 들지 않는다. 끝까지 걸어가자 물고기 모양 동상이 크게 보인다. 음,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이다. 무료 개방 기간이라 돈을 내고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돈을 내고 들어갔으면 화가 났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찾은 상상마당 춘천은 요즘 데이트 코스로 이름 높은 곳이다. 김수근 선생이 지은 어린이회관을 새 단장해 2014년 문을 열었는데 의암호가 앞에 있어 경치가 아주 좋다. 의암호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카페 댄싱 카페인은 평일에도 사람이 꽤 많다. 의자를 마주보게 두지 않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도록 돌려놔 커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따사로운 가을볕이 내려앉은 의암호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마음이 그냥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그리스인가요?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산토리니는 카페 안팎을 그리스처럼 꾸몄다. 조형물도 근사하다.

상상마당 춘천이 요즘 뜨는 데이트 코스라면 구봉산 카페거리는 10여 년 전부터 이름난 데이트 코스다. 춘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봉산 꼭대기에 근사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카페는 그리스처럼 안팎을 꾸민 산토리니다. 바깥쪽으로 넓은 정원이 있어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그 옆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는 바닥과 벽면이 통유리로 된 네모난 전망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설치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실제로 올라가면 발아래가 까마득해 아찔하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인터넷을 뒤져 유명하다는 닭갈비집을 찾았다. 사실 춘천에 있는 닭갈비집은 웬만하면 다 맛있다. 우리가 찾은 우성닭갈비는 30년이 넘었다는데 무엇보다 양이 푸짐하다. 우동 사리까지 더하니 둥근 철판이 꽉 찬다.

청량리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은 새벽 기차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등산복을 빼입은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웠다. ITX-청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청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 웃음소리에 마음이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궁화호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아주머니들에겐 이 시간 또한 새로운 낭만이 아닐까? 


 

진짜 낭만 넘치는 열차 여행
V-트레인 백두대간협곡열차라고도 불리는 V-트레인은 매끈한 KTX와 다르게 생겼다. 무궁화 소화물차를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객차도 세 칸밖에 없는데 지붕 끝까지 창을 넓게 내고, 창밖을 볼 수 있게 벤치처럼 생긴 의자도 달아 관광 열차 분위기가 물씬 난다. 분천역과 철암역을 왕복하는데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협곡을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간에 내려 역이나 마을을 구경할 수도 있다. 요금은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편도 8400원이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철암역이나 분천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 V-트레인으로 갈아탄 다음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 당일 기차 여행을 알차게 즐길 수 있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여행, 기차여행

CREDIT

EDITOR / 서인수 / PHOTO / 조혜진 / MOTOR TREND

Twitter facebook kakao Talk LINE
  • · (주)가야미디어  
  • · 등록번호:인터넷뉴스사업자 서울, 자00454  
  • · 등록일: 2014년 3월 10일  
  • · 제호: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 · 발행인: 김영철  
  • · 편집인: 백재은  
  • · 주소: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81길 6 06195  
  • · 연락처: 02-317-4800  
  • · 발행일: 2013년 8월 1일  
  •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재은  
  • · 사업자등록번호120-81-28164  
  • · 부가통신사업 신고 제 2-01-14-0017 호 통신판매신고 제 2009-서울강남-01075호  

Copyright kayamedia Corp.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