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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TREND_Lifestyle

시트로앙 주택

시대를 건축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다. 그의 건축에선 자동차가 보인다

2017.01.16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들리겠지만 적어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는 자신이 추구했던 건축 철학이었으며, 현대건축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세기 초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가 산업 분야에서 자리 잡던 시기였다. 당시 유럽의 대도시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거리는 더럽고 혼잡했으며 집은 좁고 열악했다. 산업화 때문에 인구 집중은 극심한데 건축은 중세시대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건축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산업화가 생활 방식과 기술 변화를 가져왔듯이 건축도 바뀌어야 한다고 르 코르뷔지에는 생각했다.


그에게 중세시대 건축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럼 현대 건축은?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기능을 잘 갖춰야 하고 사용하기도 편리해야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효율적인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꿈꿨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건축의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8년부터 1921년 사이, 르 코르뷔지에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건축 이론 연구에만 몰두했다. 드디어 1922년, 이론 연구는 다양한 단일 가구를 위한 모형으로 발전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이름인 시트로엥(Citroёn)에서 따온 시트로앙(Citrohan) 주택이다. 당시 첨단 기술로 여기던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을 건축에 차용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시트로앙 주택은 하나의 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 지을 때 사용하는 건축의 설계와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시트로앙 주택은 3층으로 된 단일 가구로 설계됐다. 1층은 가족 공동 공간인 거실과 주차 공간으로 만들고 2층에는 침실을 배치했다. 조리할 때 냄새가 벽을 타고 올라가 집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엌을 맨 위층인 3층에 두었다. 옥상은 테라스로 만들어 가족만의 작은 정원을 꾸몄다. 각 층마다 저마다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능에 맞는 가구를 배치했다. 방 안 가구들은 자동차 부품처럼 금속 틀로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건물 안쪽 벽을 흰색으로 칠해 조명 하나로 방 전체를 밝힐 수 있었다. 바깥벽 역시 군더더기 없는 흰색이다. 시트로앙 주택 모형을 본 파리의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개인 주택을 의뢰했다. 지금도 파리 16구나 근교를 가면 시트로앙 주택들을 만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최초의 공동주택이며, 현대 아파트의 효시가 되는 건축물이다. 완성된 모습을 보고 프랑스인들은 미치광이의 집이라고 혹평을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지을 때 기둥이 하중을 지탱하고 내부 벽이나 바닥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돔이노 시스템(Dom-ino, 집을 뜻하는 Domus와 혁신을 의미하는 Innovation의 합성어)’을 사용했다. 이전까지 건물들은 돌이나 벽돌 등을 쌓아 벽을 세우는 조적식 구조로 만들어져 건물의 표현이 단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돔이노 시스템은 얇은 바닥과 계단,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집을 만드는 방식이라 구조가 단순하고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았다. 먼저 건물에 사용되는 콘크리트와 철근을 공장에서 규격화해 생산했다. 그 재료들을 가지고 자동차 공장의 작업 과정처럼 뼈대를 조립하고 벽을 세우기만 하면 끝이었다. 빠르고, 간편하게, 대량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시트로앙 주택 중 하나인 빌라 사부아를 보면 그의 원칙과 사상이 잘 묻어난다. 

 

그는 집을 짓는 데만 그치지 않고 도시계획까지 구상했다. 도시계획에서 자동차는 생산 방식이 아닌 교통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동차가 인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했기 때문에 이전에 혼재돼 있던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분리한 것이다. 당시 유럽 도시들은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뒤엉켜 있었다. 이미 중세시대 건물들로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걸 갈아엎어야 했다. 결국 도시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 역시 1970년대 이후에 생겨난 계획도시, 신도시들은 그의 도시계획을 받아들여 업무지역과 주거지역을 나눴다. 두 지역 사이 공간에는 넓은 녹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 도시들은 심각한 주택난을 해소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만들었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과 도시계획은 사람보다 차를 우선시하고 기능만능주의를 추구해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쟁과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해 주택 공급이 수요를 도저히 맞출 수 없던 상황이었다. 주거 환경은 위생적, 기능적으로 열악했다. 필요한 기능을 갖춘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라 주장하며 기능이 중심이 된 건축을 지향했다. 


지난해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17개 건축물이 ‘근대 운동에 대한 탁월한 기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번 등재로 그의 건축물은 인류 문명에 공헌한 최초의 현대 건축물이 됐다. 20세기의 시대적 문제인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건축언어를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자동차는 인간 행동의 일부분이다. 건축도 마찬가지일 터. 두 분야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궤를 같이한다.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자동차 때문에 현대건축이 탄생했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건축의 중요한 단서를 자동차가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자동차는 변화무쌍하다.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상용화가 얼마 남지 않았고 빠른 이동성을 위한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는 건축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건축이 응답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미래에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글_김선관 사진_조혜진   

 

 

 

모터트렌드, 건축, 건축가, 건축학, 자동차 디자인

CREDIT

EDITOR / 김선관 / PHOTO / 조혜진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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