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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TREND_Lifestyle

걷고 기다리고 생각하고

자동차 없이 떠나는 <모터 트렌드>의 두 번째 여행. 버스만 타고 서울-울산-부산-마산-서울을 돌았다. 버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2017.01.13

버스를 타고 마산 남부 시외버스터미널은 시계를 20년쯤 뒤로 돌린 것처럼 옛날 모습이다. 주변 풍경도 1990년대 초반에서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10월 12일 09시 41분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버스터미널에 얼마 만에 온 건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대학 다닐 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무언가 ‘꽃청춘’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때는 승차 플랫폼이 상당히 복잡했다. 짐을 머리에 이거나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차창에 매달려 작별의 시간을 놓지 못하는 광경, 매표원이 “대구 2명!”이라고 외치면 부리나케 뛰는 사람,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다. 요즘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승차 플랫폼은 한산하다. 짐을 이고 다니는 이도, 담배를 입에 문 사람도 없다. 예전에 비해 월등히 우람하고 멋을 낸 버스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버스 여행이 옛 시절의 추억 속으로 안내해줄 것 같은 기대를 해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다. ‘울산까지 4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사이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나.’ 중간에 한 번 쉰다고 하니 최소 2시간은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물도 밥도 안 먹었다. 출발 시간이 될 때까지 화장실만 들락거리며 몸속의 수분을 쥐어 짜냈다. 
요즘 고속버스는 문명의 최첨단을 달린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탑승 인원과 좌석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승차권을 기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뜬 QR 코드를 코드인식기에 대면 “학생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11번 좌석입니다”라고 말한다. 모니터로 좌석 위치도 표시해준다. 그렇게 수분 쫙 뺀 몸뚱이를 싣고 서울발 울산행 오전 10시 고속버스가 출발했다.
25인승 우등버스(울산행은 우등밖에 없다)에는 달랑 8명만 탔다. 두툼한 시트에 발받침까지 있고, 항공기 비즈니스석처럼 뒤로 젖혀져 눕는다. 출렁이는 서스펜션에 두툼한 시트까지 승차감이 훌륭하다. 하지만 거대한 디젤 엔진이 만드는 진동과 소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예전 버스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승객들은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본다. 운전으로부터의 해방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선으로 쌩쌩 달리니 알량한 우월감도 든다.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면 내가 탄 버스의 현재 위치와 남은 시간, 거리 그리고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 등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10월 12일 12시 25분 선산휴게소
중부내륙고속도로 구미 선산휴게소까지 2시간 25분이 걸렸다. 버스가 시속 11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없는 것을 감안하면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려 시간을 지체하지 않은 덕분이다. 휴게소에서는 15분 동안 쉰다. 내가 탄 버스 번호를 기억해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버스 중 다른 버스를 타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른 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버스 기사도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때우는 모양이다. 

 

한산한 터미널 풍경 평일이어서인지 울산 고속버스터미널 앞이 한산하다. 서울에서 울산까지는 고속버스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10월 12일 13시 정각 중부내륙고속도로 어딘가
버스 기사에게 이런저런 걸 물어보고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당장 앉으세요!”라는 불호령을 맞았다. 난 어찌 이리도 무지했던가. 주행 중에는 버스에서 움직이면 안 된다. 더군다나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캐묻는 건 더욱 안 된다. 안전을 위해서다. 예전엔 부산까지 입석으로도 다녔는데….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10월 12일 14시 30분 울산 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에서 울산까지 4시간 30분이 걸렸다. 운전하고 내려왔으면 많이 피곤했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길을 찾는 건 아주 쉽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어디서 어떤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다 알려준다. 버스 도착 시각까지 알려주니 걱정이 없다. 그런데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꽤 걸어야 한다. 촬영장비까지 들고 다녀야 하니 마냥 여행 같지만은 않다. 버스에서 내려서 또 걸어야 한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보면서 걷고 또 걷는다. 
취재와 촬영을 마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울산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다)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걷고, 버스 타고, 또 걸었다. 버스비가 1300원이니 세 명 요금이 3900원이다. 주연자동차박물관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택시 기본요금 거리다. 울산은 택시 기본요금이 2800원이다. 싸고 편하면서 빠르게 가는 방법을 놔두고 더 비싸고 불편한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10월 12일 16시 30분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울산에서 부산 해운대로 이동한다. 버스 요금은 4400원. 좌석이 없이 오는 순서대로 줄을 서서 타는 방식이다. 진보라색 커튼과 꽃무늬 시트커버는 뭔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진한 영남지방 사투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울산행 고속버스보다 엔진 소리가 훨씬 크고 진동도 심하다. 휠베이스 밖(맨 뒷자리)에 앉아서인지 위아래로 더 많이 움직이는 것 같다. 변속할 때도 앞뒤로 울컥거린다.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뒷자리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운전기사만 듣는 라디오인가 보다. 전체적으로 뭔가 몽환적이면서 산만하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평소 불면증이 있어 침대에서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데 시끄럽고 진동까지 심한 버스에서 잠을 잔 게 믿기지 않는다. 1시간 동안 자고 나니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이다. 버스에서 내려 우린 또 숙소까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보며 걸었다. 

 

 

10월 13일 11시 50분 부산 시외버스터미널
부산에서 마산 남부로 이동했다. 요금은 7700원. 울산-부산 거리와 주행시간이 거의 비슷한데 요금이 3300원이나 더 비싼 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승차권에는 시간도, 좌석도 없다. 단지 ‘선착순 승차’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다. 이번 버스는 꽃분홍색 커튼을 달았다. 화창한 가을 햇살을 받은 꽃분홍색 커튼이 왠지 모를 야릇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걸 ‘커튼의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또 잠이 쏟아진다. 운전대를 놓으니 편하기는 해도 뭔가 무기력한 느낌이다.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리다 선잠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버스가 오길 기다리고, 출발하길 기다리며 도착하길 기다린다. 

 

부산으로 가요 해운대 전통시장엔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돼지국밥, 곰장어, 씨앗호떡, 회무침 등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10월 13일 13시 8분 마산 남부 시외버스터미널
터미널 풍경은 서울, 울산, 부산, 마산이 비슷하다. 낡은 벤치에 앉은 무표정한 사람들이 TV를 본다. 매표소 아가씨는 매표구의 작은 구멍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하품을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예매하니 매표구가 더 한산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점 아저씨는 아무 목적 없이 효자손을 휘휘 돌리고 있다. 음료수를 사러 온 손님 앞에서도 그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무료하고 한산한 풍경이다. 
마산 남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브라운핸즈 마산점은 차로 7분 거리다. 충동적으로 택시를 탈 뻔했다. 하지만 또 걸어서 시내버스를 탔다. 20분을 달려 가포고등학교에서 내린 후 30분을 걸었다. 등줄기에서 땀이 난다. 하지만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을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 더 가까워진다.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와 장독대 고인 빗물에 멱 감는 이름 모를 텃새는 운전 중엔 보기 힘든 풍경일 테니.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은 1990년대 초반에서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시간을 더듬는 시간여행을 했다. 버스가 안겨준 독특한 경험이다. 

 

10월 13일 16시 14분 가포고등학교 버스정류장
정말 코딱지만 한 정류장인데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버스 운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마산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35분 후에나 도착한단다. 오늘 서울까지 가야 하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터미널행으로 갈아탔다. 이제 걷고 버스 갈아타는 건 일도 아니다. 
마산은 태어나서 처음 왔다. 마산, 진해가 2010년에 창원으로 통합됐다는 것도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모든 게 생경한 곳이다.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보는 이 순간이 마치 시티투어 버스를 탄 느낌이다. 이곳이 어딘지 방송도 해준다. 처음 보는 광경과 스치는 풍경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도 스치듯 지나간다. 마산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느리게 걷는다. 버스는 사람들이 많이 탔는데도 조용하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스마트폰을 본다. 뭔지 모를 무기력한 느낌이 든다. 부산은 부산스럽다. 마산보다 시간이 빨리 가고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든다. 

 

10월 13일 21시 40분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마산에서 서울행 5시 30분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리고 달려 4시간 만에 날 서울로 돌려놨다. 이틀 동안 버스를 열 번 넘게 탔다. 걷고 기다리는 버스 여행은 진력이 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운전대를 놓는 것만으로 시간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다. 책을 보고 이메일을 보내고 게임을 하다 잠을 잤다. 공간의 확장도 버스 여행의 묘미다. 운전은 이동을 위한 공간의 지각이다. 반면 버스는 공간이 사유(思惟)의 수면이 된다. 그곳이 초행길이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운전이 우리에게서 생각과 사고를 빼앗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보통 때라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을 것이다. 그런데 난 스마트폰을 꺼내 버스노선을 검색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45분 정도 걸려 집에 왔다. 버스에는 이동이 주는 사색의 평온이 있다. 이제 가끔은 버스를 타야겠다.   

 

진짜 버스 여행-서울 시티투어 버스
주차 걱정 없이 하루 종일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거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는 강남역에서 출발해 영동시장, 신사역, 가로수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청담동사거리, 봉은사, 코엑스를 돌아 세빛섬, 고속버스터미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서래마을, 교대까지 간다. 파노라마 코스를 추가하면 강북으로 넘어가 홍대, 남산도서관, 명동, 서울 역사박물관, 광화문까지 둘러볼 수 있다. 티켓 하나만 있으면 시티투어 버스정류장 어디에서나 하루 동안 수시로 버스를 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루 종일 서울을 알차고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다. 2층이 오픈 톱으로 돼 있는 버스도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서울은 색다르다. 요금은 도심·고궁 코스가 1만2000원(어른), 서울 파노라마 코스 2층 버스가 1만5000원(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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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 / PHOTO / 정택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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