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든이는 걸음마를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에스컬레이터를 무척 좋아했다. 어설픈 발걸음으로 엄마 손을 붙잡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고는 스르륵 움직이는 그 순간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즐기곤 했다. 녀석이라면 다 큰 처녀가 돼서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나 공항의 무빙워크 타는 걸 좋아할 거다. 이든이 덕에 나도 요즘 에스컬레이터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까지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모두 걸어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아주 기다란 무빙워크가 있는 공항을 떠올려보자. 어떤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거나 창밖 풍경을 여유롭게 보곤 한다. 또 어떤 이는 한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적당한 속도로 걸어간다. 한편 시간에 쫓겨 뛰어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장난꾸러기 이든이라면 바쁜 일도 없으면서 무빙워크를 신나게 달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바삐 가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걸어가는 사람들이 한쪽으로만 있어준다면 원활하게 길을 갈 수 있다. 걸어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서 있는 사람들이 무빙워크 한쪽으로 붙어주면 남아 있는 공간을 통해 걸어오던 속도 그대로 지나갈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두세 부류의 보행자가 마주쳤을 때 서로 불편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통상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는 두 줄 정도의 폭으로 설계한다. 그런데 무빙워크의 두 줄을 모두 막고 일행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뒤에서 달려오거나 걸어오는 사람들이 속도를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이따금 이런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그렇게 두 줄로 선 사람 중 한 명이 비켜 나갈 공간을 만들어주면 비로소 뒤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원래 속도로 걷거나 뛰어갈 수 있게 된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못 들은 체하거나(언어가 다른 경우도 있다) 비켜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빠르게 걸어오던 사람들은 하나둘 멈춰 서서 발을 동동 구른다. 뛰어오는 사람은 두 줄로 걷는 사람 속도에 가로막히고, 걸어오던 사람은 두 줄로 서 있는 사람 속도에 막혀버리는 셈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해소되지 못하면 제각각 다른 속도로 오던 사람들이 행렬에서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즉 모든 사람이 멈춰 서서 무빙워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이든에게 어떤 방법을 알려줘야 할까? 생각보다 간단한 원칙 하나만 기억시켜주려 한다. 서 있든지, 걷고 있든지, 뛰고 있든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한쪽 줄을 비워주면 된다. 나 때문에 두 줄이 나란히 같은 속도로 막혀버리지 않도록 약속된 한쪽으로 공간을 터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작은 움직임 하나가 아주 긴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동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단순한 원칙 하나로 빨리 가려는 사람과 천천히 가려는 사람이 한 공간을 조화롭게 나눠 쓸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사람들 통행량이 많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시행했던 ‘한 줄 서기 캠페인’도 같은 목적이었다.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이런 약속이 지켜진다면,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과 불편 없이 바쁜 사람들은 왼쪽으로 걷거나 뛰어 올라갈 수 있다. 뛰어 오르다 숨이 차면 잠시 오른쪽으로 비켜서서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주면 그만이다. 왼쪽으로 걷는 도중에라도 뒤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오른쪽 빈 공간을 찾아 잠시 비켜줬다 다시 나와 걷는 사람도 요즘엔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통행 흐름과 공간을 배려한 멋진 교통 문화가 점점 자리 잡고 있다. 

이든이도 이런 작은 원칙을 지키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옆 사람과 같은 속도로 가고 싶다면 좌우가 아닌 앞뒤로 서서 다른 속도로 가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열어줄 것. 이런 습관은 이든이가 성인이 돼서 운전을 하게 될 때까지도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사실 고속도로는 수백 킬로미터짜리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와 다름없으니까. 추월차로 지키기와 한 줄 서기 캠페인은 목적이 같다. 속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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