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DAILY PICK_Lifestyle

제주로 간 셰프들

제주에 새로운 미식 풍경을 더한 셰프들의 이야기.

2017.01.03

 

 

제주식 뉴 파인다이닝, 박무현 

근처 꿩 농장에서 가져온 가장 신선한 상태의 꿩으로 시그너처 디시를 낸다.

 

“겨울의 제주에서 가장 맛있는 게 바로 꿩이에요. 추운 겨울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거든요. 꿩을 바로 잡아서 요리할 수 있는 12월부터 3월까지가 꿩 요리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때죠.” 
제주도에서 박무현 셰프를 처음 만난 곳은 그의 일터인 해비치 밀리우 근처의 꿩 농장이었다. 이번 시즌 밀리우의 셰프 특선 요리로 꿩 요리를 선보이는 그는 최근 이곳을 종종 찾는다. “사장님이 끝까지 꿩 납품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애를 먹었어요. 호텔은 모든 계산이 정확해야 하니까 영세업자와 계약 맺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이런 곳에서 싱싱한 재료를 공급해줘야 더 맛있는 요리를 완성할 수 있으니 고집 좀 부렸죠.”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의 수장인 박무현 셰프는 최근 제주의 파인다이닝 신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 팻 덕과 키를 거쳐 ‘2015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가운데 28위에 오른 레스토랑 ‘더 테스트 키친’의 오픈 멤버이자 수석 부주방장이었던 그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 그것도 호텔 레스토랑에 입사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는 만만치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그 결정을 가능하게 한 건 바로 해비치의 ‘푸드랩’. 제주의 식재료를 연구하고 테이스팅하는 데만 온전히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연구소 푸드랩은 실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푸드랩에 몸담은 반년 동안 그는 제주에서 나는 재료와 맛을 찾아 섬 구석구석을 하염없이 떠돌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불쑥 내려 귤을 따 먹기도 하고, 밭에서 캐어 흙을 털어낸 당근을 맛보기도 했으며, 새벽 어시장에서 어부들과 부대끼며 가장 싱싱한 상태의 제주 해산물을 마주하기도 했다. 주방 안에만 있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할 신세계였다. ‘제주’, 그리고 ‘제철’을 늘 최우선으로 삼는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그 성실과 탐구의 시간이 지금의 밀리우를 단단하게 했다. 

“요즘 ‘식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요. 한 가지 식재료에 꽂히면 그 재료의 끝을 알 수 있을 때까지 파헤쳐 가능한 한 많은 조리를 해보거든요. 토마토를 예로 들면 건조한 토마토, 피클로 만든 토마토, 콩퓌, 소르베, 가루, 젤리 등…. 토마토가 낼 수 있는 맛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찾고 싶은 거죠.” 그 결과 탄생한 토마토 아뮤즈 부셰는 박무현의 시그너처로 꼽힌다. 겨울 셰프 특선인 꿩 요리 역시 가슴살과 다릿살을 각각 다르게 조리해 한 접시에 올렸다. 여기에 제주산 감자, 양배추를 곁들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여러 식재료는 입안에서 새로운 맛으로 춤을 춘다. ‘Complexity’. 그는 자신의 요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복합적인 조합과 밸런스에서 나오는 완성도는 생소한 재료를 상대로 겁 없이 덤비는 셰프 박무현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1. 꿩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메인 디시. 2, 3 직접 방문한 구좌 당근밭에서 영감을 얻은 당근 디저트. 당근 디저트에는 당근 케이크, 당근 크림, 당근 소르베가 골고루 올라가 있다. 

 

 

요리로 풀어낸 제주 이야기, 임서형

레스토랑 이름이기도 한 제주 전통 ‘차롱’을 들고 선 임서형 셰프. 

 

“차롱 임서형입니다. 9일에 입국할 예정이니, 인터뷰는 가능할 것 같아요.” 
저 멀리 페루에서 메일 회신이 날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촬영차 그가 페루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지만, 제주의 미식 칼럼에서 임서형을 빠트릴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낸 메일에 흔쾌히 OK 사인이 왔을 때,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임서형 셰프는 제주시 한림읍에서 모던 제주 음식을 내는 원테이블 레스토랑 ‘차롱’의 주인장으로, 최근 제주의 미식 신에서 뜨겁게 회자되는 인물이다. 한식을 전공한 뒤 해외 요리 학교  두 곳-런던 WKC, 뉴욕 ICE-에서 공부한 독특한 이력 이전에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순수 제주 출신의 셰프라는 점이다. 

“서울과 런던, 뉴욕에 머물렀지만 처음부터 최종 목적지는 제주였어요. 제주 사람으로서, 이왕이면 이곳의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제주의 음식을 풀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일종의 사명감이랄까요? 언젠가는 제주를 탐라국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웃음).” 
요리를 사랑해 셰프가 되었지만, 정작 그가 관심 있었던 건 요리 강의나 교육이었다(요리사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차롱을 원테이블 레스토랑으로 만든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 “차롱이 추구하는 요리는 제주 문화를 담아내는 음식이에요. 테크닉으로 따지면 더 우월하고 화려한 셰프가 많겠지만, 저는 왜 이 음식을 제주에서 먹어야 하는지, 이 계절 제주에서 먹는 귤 구이 같은 식재료와 풍습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한 번에 단 4명의 손님을 위해 요리하고 서빙하며 제주의 이야기를 나누는 차롱의 식사 시간은 이 섬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 까닭에 저녁 코스에 이야기를 곁들이다 보면 3시간도 훌쩍 흐른다. 멜젓소스를 곁들인 16시간 동안 수비드한 오겹살찜을 나누며 어릴 때 집에서 돼지를 키운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고, 살면서 먹었던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가 알고 보니 마지막으로 키운 돼지였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제주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밥상에 오른다. 

제주의 맛을 보여주고자 하는 셰프의 야심에 따라 요리의 주재료는 100%, 부재료는 80~90% 제주산을 사용한다. 장은 주로 오일장에서 보는데, 2~3주에 한 번씩 재료가 물갈이되는 시장의 속도에 맞춰 지금 가장 맛있는 제철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매달 개발한다. 제주의 재료와 전통을 담되, 모던하게 해석하고 터치하는 것이 특징. 제주 사람이 아니라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음식이라도 제주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면 기꺼이 메뉴로 낸다. 다소 밋밋한 맛의 빙떡을 디저트로 올리는 까닭이다. 여기에 생강 아이스크림을 더해 맛을 밸런스를 높였다.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재료로 요리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는 임서형 셰프. 해녀 학교를 수료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낚시에 푹 빠졌다. 규모는 작지만 옥상 텃밭에는 허브류와 방울양배추, 파, 치커리 등을 심었다. 
촬영을 마친 다음 날, 제주 민속 오일장에 간다는 그를 따라나서 겨울의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선도 좋은 재료를 찬찬히 훑었다. 장을 보는 틈틈이 오일장의 명물 빙떡을 맛보고 제주산 귤을 까먹었다. 그러는 동안 셰프의 생생한 제주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차롱의 식사가 제주를 여행하는 낯선 여행자에게 얼마나 기분 좋은 경험일지, 새삼 짐작이 되었다.

 

1, 2 조리 과정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아뮤즈부셰. 제주산 감자에는 직접 만든 돼지 엿을 갈아 올린다. 3 16시간 동안 수비드한 통오겹살에 멜젓소스와 완두콩 퓌레, 대파, 제주의 김치 같은 마늘장아찌를 곁들였다. 4 제주 식재료뿐 아니라 그릇, 플레이팅에서도 어쩐지 제주의 맛이 난다. 

 

 

제주에 핀 이탤리언 가정식,허인

라운드어바웃을 통해 먹는 즐거움뿐 아니라 만드는 기쁨을 공유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허인 셰프.

 

“사실 꼭 제주여야만 한 건 아니었어요. 다른 도시를 두고 비교한 것도 아니니 제주를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셈이죠. 그저 언젠가 서울을 벗어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 하나, 그렇다면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효자동의 이탤리언 가정식 식당 두오모의 오너 셰프 허인이 제주도에 키친 앤 디자인 워크스 ‘라운드어바웃’의 문을 연 지는 이제 1년 반 정도 흘렀다. 라운드어바웃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목수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함께 만든 공간으로, 나무로 만든 일용품부터 가구까지, 좋은 식재료부터 요리 수업까지 주방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곳이다. 3개월 단위로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는 주방을 중심으로 요리책과 여행책을 볼 수 있는 서재, 주방 관련 생활용품을 진열, 판매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그와 동시에 공간 디자인 사무실이기도 하다. 

토요반 쿠킹 클래스의 마지막 수업을 하던 12월의 어느 날, 라운드어바웃을 방문했다. 제주시 도남동의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한 라운드어바웃은 목적지를 찍고 이곳에 온 게 아니라면 모르고 지나칠 공산이 크다. 그만큼 요란스럽지 않고 차분한 외관은 효자동 두오모의 요리를 떠올리게 하고, 편안한 공간의 울림은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허인 셰프와 닮았다. 수업이 곧 시작될 11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든다. 쿠킹 클래스는 빛이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내려앉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수업은 그간의 안부를 가볍게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오늘 할 요리 설명과 시연으로 물 흐르듯 흘러간다. 오늘 만들 메뉴는 고구마 수프, 이탤리언 스튜인 비프 스트라코토, 허브 리소토 세 가지. 

“제주도 고구마 엄청 달아~.” 셰프의 푸근한 농담이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수업에서 주방과 테이블의 경계, 사람들 간의 긴장감 따위는 없어 보인다. 이미 3개월간 함께 요리를 만들고 먹으며 온기를 나눠서일까? 수강생들은 마치 허인 셰프의 홈파티에 초대된 것 같다. 아일랜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요리 이야기와 함께 제주, 이탈리아, 서울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핑퐁처럼 오간다. 쿠킹 클래스라지만 오로지 요리에만 집중하는 사람보다는 수업 자체를 즐기는 수가 확연히 많다. 잠시 딴짓하거나 수다를 떠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가도 비프 스트라코토에 들어갈 고기의 향이 피어오르거나 리소토의 허브 향이 진동할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팬 주위로 모여들어 냄새를 맡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한 셰프의 말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아쉽게도 라운드어바웃은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겨울방학을 맞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건 효자동 두오모 하나로 충분한 것 같다는 셰프가 언젠가 제주에 정착한다면 식당 대신 ‘다정한 수프집’을 차릴 것이다. 바람 많고 습하고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제주에서 따뜻한 수프는 그가 제주의 바다와 산, 하늘에서 받았던 것 같은 뜨끈한 위로가 될 테니까. 

 

1 갓 완성된 비프 스트라코토. 요리가 완성될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로 접시에 담아 함께 나눈다. 2 작은 큐브 모양으로 자른 제주산 고구마가 듬뿍 들어가는 고구마 수프. 3 허브 리소토에는 바질, 루콜라, 타라곤, 차이브, 딜 등 각종 허브가 들어간다. 

 

 

 

 

 

더네이버, 여행, 맛집, 요리

CREDIT

EDITOR / 천희란 / PHOTO / 이혜련 / THE NEIGHBOR

Twitter facebook kakao Talk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