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그랜저가 이전과 가장 다른 부분은 서스펜션이었다. 이전 모델들은 좌우로 롤이 있었고 과속방지턱을 넘으면 뒤가 한두 번 더 출렁거렸다. 예전엔 그러한 승차감을 고급스러운 것으로 여겼으니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서스펜션 세팅은 빠르고 정확한 주행이 어렵고 운전재미도 떨어진다. 요즘 고급차는 단단하면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추구한다. 똑같은 충격에서도 서스펜션이 덜 눌려 출렁이지 않으며 부드럽게 충격을 흡수한다. 이런 승차감은 댐퍼와 스프링의 세심한 세팅이 필요하다. 이젠 현대차도 이런 노하우가 생긴 모양이다. 

일반적인 저속 주행에선 바퀴에 꿀이라도 바른 양 노면 굴곡을 부드럽게 타고 넘는다. 속도를 올려도 예의 그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차체는 수평을 유지한다. 과속방지턱을 넘어도 뒤가 튀어 오르는 느낌 없이 적당한 무게감으로 눌러준다. 앞쪽도 통통 튀거나 주억거리지 않는다. 기아 K7을 탈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K7도 그랜저와 마찬가지로 앞 서스펜션에 유압식 리바운드 스토퍼를 달았다. 덕분에 출렁임이 적어 노즈 움직임이 이전보다 간결해졌지만 앞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바퀴가 노면을 꾹꾹 누르는 느낌이 아니라 스프링으로 충격을 줄이는 게 느껴졌다. 그랜저에선 이런 느낌이 없다. 

이런 서스펜션은 단순히 세팅값이 달라져서만은 아니다.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체 강성이 중요하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의 차체 강성이 이전보다 34퍼센트나 높다”고 말했다. 더불어 서스펜션 부싱도 키워 노면 충격을 더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액슬과 토션바의 강성을 높였다. 전체적으로 하체 강성을 높인 것이다.

든든한 서스펜션은 스티어링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을 것이다. 이전보다 감각이 또렷해졌다. 이전엔 노면과의 직결감 같은 게 없었는데, 지금은 앞바퀴가 부드럽고 묵직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현대차는 정밀한 핸들링을 위해 ECU 처리속도를 높였다고 한다. 시승 중 스티어링 반응이 느리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뒤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도 없었다. 

3.0리터 V6 엔진(266마력)은 이전보다 출력이 약간 내려갔지만 초반 토크(31.4kg·m)를 높였다. 덕분에 반응성이 빨라졌다. 언제든 필요할 때 넉넉하진 않아도 또렷한 토크를 낸다. 배기음도 잘 다듬어 듣기 좋다. 
고속에서 묵직함을 잃지 않고 코너에서도 좌우로 쏠리는 느낌이 없는 든든한 서스펜션과, 예전보다 또렷해진 스티어링 감각은 운전할수록 안정적이란 느낌을 줬다. 운전도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솔직히 그랜저에서 이런 감각이 느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대차에서 기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랜저는 모든 게 기대 이상이었다. 고루하지 않고 텁텁하지 않으며 휘청거리지 않는다. 어쩌면 젊어진 그랜저를 필두로 앞으로 출시될 현대차 모델들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실내는 정갈하고 각종 컨트롤러를 쓰기 쉬운 위치에 두었다. 시야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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