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기술의 발달은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게 했고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제조 기술의 발달은 현대인에게 새로운 갈증도 더했다. 바로 ‘특별함’이다. 기술의 발달은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타인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의 몰개성과 획일화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장인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과 돈의 가치는 비례한다는 논리를 적용한다면 장인 정신은 이 시대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정신 중 하나다. 1초에도 몇개의 제품이 찍혀 나오는 공장과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제품의 시장 경쟁력은 비교 불가 수준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듯, 기계와 사람은 결코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는 대상이며, 특히 사람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성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람의 손길이 최상의 가치로 인정받는 분야가 바로 시계 산업이다. 시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품부터 미학적인 요소까지,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을수록 그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에나멜링, 인그레이빙, 보석 세팅 등은 오랜 세월을 통해 숙련된 장인의 기술력과 심미적 관점이 아니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유수의 시계 브랜드 제품이 단순히 시간을 살피는 물리적 가치를 뛰어넘어 예술 작품의 가치를 갖는 데는 장인들의 손길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피아제의 경우를 살펴보자. 현재 매우 소수의 브랜드만이 보석 담당 부서와 하이 주얼리 워크숍을 보유하고 있는데, 피아제의 하이 주얼리 워크숍은 제네바에서 가장 중요한 파인 주얼리 공방 중 하나다. 피아제 인하우스의 주얼러, 금세공 장인, 보석세팅 장인 등은 긴밀한 협업을 통해 하이 워치메이킹의 정수를 보여준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트래디션 오벌’ 시계의 환상적인 골드 브레이슬릿은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정교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피아제는 한 가지 부품이나 링크에도 두 가지의 피니싱 기술을 적용해 극도로  작은 부품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제작한다.

지난 한 달 지루한 일상에 행복한 에너지를 선사해줄 전시가 연이어 열렸다. 우선 지난 11월 갤러리아 백화점의 에르메스 매장 레노베이션 오프닝에 맞춰 열린 <Les métiers du temps-시간을 만들다> 전시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올해 6월 파리 포부르 매장에서 선보였던 전시가 서울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메종 한쪽 벽면에 크리스털 유리공예, 에나멜링, 인그레이빙 등 다섯 가지의 장인 기법이 적용된 시계를 진열해 마치 시계 박물관을 찾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티스트 기욤 엘리우드가 워치 메이킹 전문가들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완성한 디스플레이는 전시에 흥미와 품격을 더했다. 이 전시를 위해 스위스에서 온 페인팅 장인이 현미경을 통해 다이얼 위로 정교한 패턴을 그려 넣는 시연은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인 정신과 전통 문화를 수호하고 계승하는 것을 브랜드의 가치 중 하나로 두는 바쉐론 콘스탄틴 또한 흥미로운 전시를 열었다.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국내 무형문화재 장인의 전통 공예를 후원하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가 2016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에서 공개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빛나는 결과물은 1395년 조선의 밤하늘을 시계 다이얼에 담아낸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더 스카이 오브 1395’다. 조선 시대 천문학의 상징인 천상열차분야 지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이 타임피스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지닌 최상의 에나멜 공예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을 위해 탄생한, 세상 단 하나뿐인 이 제품은 제네바 홀마크 인증을 받았으며, 케이스 백에는 ‘Hommage au Ciel Nocturne de l’année 1395(1395년 조선의 밤하늘을 기리며)’라는 문구가 인그레이빙되어 있다. 나아가 예술 공예와의 접목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온 브랜드 철학은 옥장 엄익평, 칠장 정수화, 금속공예장 조성준 총 세 명의 무형문화재 장인과의 협업으로 실현되었다. 세 무형문화재 장인은 천상열차분야지도 ‘3원28수7정’을 담은 어책과 어책함을 만들었다.

전 세계 인구의 75퍼센트가 핸드폰을 보유하고 있는 요즘, 시계는 시각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만 효용되지 않는다.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보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소유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이자 인생의 기쁨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시간을 만드는 사람과 그 사람을 이끄는 힘, 즉 장인정신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오랜 시간 끊기지 않고 이어져온 장인 정신, 전통 기술을 보존하려는 힘. 이것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계 산업을 유지시킬 유일한 힘이다.

1 388개에 달하는 다이아몬드로 이뤄진 에르메스의 포부르 주얼리 워치. 2 다양한 영역의 수공예 기술을 통해 시계 제조 기술의 기본을 보여주는 에르메스의 슬림 데르메스. 3 론진과 파텍 필립을 거쳐 자신만의 브랜드를 설립한 로저 드뷔는 아직까지도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시계 제작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4 바쉐론 콘스탄틴이 자랑하는 장인 기술인 최상의 에나멜 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더 스카이 오브 1395’.5 유리를 이용해 에르메스 워치의 환상적인 다이얼을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모습. 6 에르메스 특유의 모티프를 표현하기 위해 곱게 갈린 에나멜 파우더를 골드 띠로 만들어진 꽃잎에 채우고 있다. 7 현미경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세밀한 작업이 요구되는 페인팅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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