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이나 연구소는 기업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때문에 기업은 그런 건축물의 생김새나 스타일, 건축 방식, 유지 방식 등으로 지향하는 바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0월 준공된 한국타이어의 중앙연구소 ‘테크노 돔’도 마찬가지다. 한국타이어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에 설립한 이 건축물을 통해 높은 기술력과 창의적인 기업 문화, 국제적인 위상 등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새로 짓는 중앙연구소의 설계를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s+Partners)’라는 건축회사에 맡겼다. 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이다.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는 하이테크 건축으로 이름난 사무소다. 하이테크 건축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양식이다.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첨단 분야에서는 하이테크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그리고 건축에서도 동일한 흐름이 나타났다. 이름처럼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공간과 구조, 설비 등의 요소를 시스템적으로 융합해 구축하는 개념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앞세워 좀 더 높은 난이도로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하이테크 건축의 근거지로 보통 영국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노먼 포스터가 있다.

노먼 포스터는 하이테크 건축으로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아이콘을 만들며 이름을 높였다. 홍콩의 HSBC 빌딩은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인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타워는 그의 대표작이다. 미국 뉴욕의 허스트 타워도 그의 작품이다. 현재 진행 중인 건축물로는 애플의 새로운 사옥이 될 캠퍼스 2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타이어 테크노 돔은 그가 한국에 남기는 첫 번째 자취다. 한국타이어는 테크노 돔을 통해 세계 최상위 타이어 회사로서의 도약과 미래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노먼 포스터의 하이테크 건축은 한국타이어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건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는 이미 테크노 돔과 비슷한 테마의 건축물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 2004년에 준공한 맥라렌 테크노 센터다. 현재 건축 중인 애플 캠퍼스 2 역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돔 아래 정렬 테크노 돔은 10개의 개별 건물 위에 커다란 지붕을 올린 형태로 지어졌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지만 결국 한 팀이란 의미다.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는 미래지향적인 건축을 끊임없이 구체화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 구조와 설비, 전자 시스템까지 함께 설계한다. 그리고 그 하이테크에는 친환경도 담겨 있다. 건축 공간 계획을 통해 자연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면서도 늘 쾌적한 공간으로 유지하는 것을 추구한다. 물론 현대 건축은 많은 부분에서 첨단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은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 아니라 단순히 기계적인 미학이나 물리적인 구축에 국한해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테크노 돔은 좀 더 종합적인 가치로서 하이테크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공간의 환경과 그 건축물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에 건축물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건축물의 대지 선정과 공간을 구축하는 방법은 물론 시공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해 지은 하이테크 건축이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을 통해 이룬 친환경 건축이기도 하다. 에너지 소비 절약을 위해 태양열과 지열 등의 자연 에너지를 이용한다. 자연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물의 외벽을 유리로 만들어 쾌적하게 채광되는 공간을 생성했다. 유리벽으로 인한 온도 상승과 직사광선 같은 문제는 외부에 설치한 인공호수로 일정 부분 조절했고 센서와 패널로 좀 더 보완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친환경 기술이 적용됐는데 테크노 돔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인 리드(LEED,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의 골드 인증을 받았다.

한국타이어는 “테크노 돔을 연구개발 전략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미래 지향적 공간으로서 기업의 철학과 건축 철학을 공유하려 했다”고 밝혔다. 사실 건축물처럼 대중에게 기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좋은 매개체도 없다. 테크노 돔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를 띠고 있다. 어딘지 차갑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인공호수는 친환경의 공간을 상징한다. 타이어뿐만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체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한국타이어의 진취적인 기상과 높은 기술력, 친환경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미가 테크노 돔 전체를 통해 전달된다.

테크노 돔이 나타내는 또 다른 핵심 주제는 소통이다. 한국타이어는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고 소통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환경 조성을 위해 공간의 최적화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연구실은 연구원들이 서로 마주치고 교류하도록 정교하게 동선을 설계했다.

중앙에 넓게 펼쳐진 광장에는 직원들이 편안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마련했다. 난간은 손잡이를 넓게 만들었다. 여기 기댄 채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직원끼리도 소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수첩을 올려놓고 간단한 메모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실에 있는 투명한 상자형 공간인 타이어 워크숍은 실험 재료를 따로 가져올 필요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곳이다. 사무 공간에는 포커스 박스를 설치했다. 집중적으로 업무를 보거나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임원실은 투명하게 개방했다. 수평적 문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테크노 돔에는 이렇게 다양한 가치 아래 유연한 공간과 유기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국타이어 테크노 돔은 21세기 현대 건축과 한국 건축이 고심해야 할 핵심적 문제인 도시 과밀 현상과 환경문제,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제시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물론 초기 투자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건축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용적 측면과 도시의 환경적 의미에서 더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 테크노 돔은 앞으로 많은 기업이 건축의 가치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모터트렌드, 연구소, 자동차부품, 건축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