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을 토요일 저녁에 받아 일요일에 시승하고 월요일 아침에 반납했다. 보통은 주중에 며칠 시승을 하며 촬영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어쩔 수 없었다. 10월호는 추석이 있어 마감을 당겨야 했기에 부득이 주말에 시승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할 시간도 없어 미디어 배포용 사진으로 갈음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시승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그런데 11월호부터는 이것도 어려울 것 같다.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 때문이다. 

요즘 언론, 미디어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업계 종사자 두 명만 모여도 김영란법이 가장 뜨거운 화두다. 오랜 시간 이어졌던 업무의 틀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법령이 어떠한 방식으로 업무 패턴을 변화시킬지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사실 뚜렷한 정답은 없고 의견만 분분하다.  

나도 김영란법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직종에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배포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언론 직종 매뉴얼을 다운로드 받았다. A4 용지로 205페이지나 된다. 몇 페이지 들추다가 덮었다. 익숙지 않은 단어들을 읽기 싫게 구성한 매뉴얼이다. 그래서 각종 소식과 풍문, 때로는 괜찮은 지식도 전달해주는 루트에 접속해 정보를 구했다. 소위 말하는 ‘소식통’이다. 

소식통에서 자동차 전문지와 관련된 소식을 추스르니 우리도 업무 패턴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주말 시승이 안 된다. 기자에게 주말에 차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부정 청탁이란다. 그러니 마감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시승하는 게 불가하다. 독자는 새차 시승기를 다음 달에 봐야 할지도 모른다.   

주중에도 하루만 타야 한다. 차를 이틀 이상 타면 부정 청탁이나 금품 수수로 처벌받는다. 그러니 24시간 안에 시승과 촬영을 병행하거나, 차를 반납한 후에 다시 전달받고 시승 및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을 고사하고라도 시승과 촬영이 잘 진행되면 문제없다. 하지만 꼭 며칠씩 차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모터 트렌드>는 종종 며칠씩 전국을 돌며 기획기사를 진행한다. 이렇게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만들어낸 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이젠 ‘MTEC’(2014년 8월), ‘밀레밀리아’(2015년 7월) 등 전국을 돌며 진행하는 기획은 힘들지 모른다. 더불어 지난해 10월 성대하게 진행된 ‘<모터 트렌드> 패밀리 데이’도, 9월호 별책 부록이었던 ‘시티 헌팅’도 며칠씩 차가 필요하다. 새로운 법의 테두리 안에선 어렵게 됐으니 다른 방식의 새로운 기획을 준비해야 한다.  

해외시승 기사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새차가 출시되면 특정 장소로 세계 자동차 기자를 불러 미디어 시승회를 개최한다. 이때 항공과 숙박이 제공되는데, 이게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 김영란법으로 이런 월드 미디어 시승행사를 보면 특정 기자에게만 제공하는 특혜가 되는 것이다. 

브랜드의 월드 미디어 행사는 전 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준비를 많이 한다. 새차에 대한 자세한 콘퍼런스가 열리고 해당 브랜드의 거물급 인사(수석 엔지니어 및 디자이너)도 자리를 함께해 인터뷰를 진행한다. 덕분에 기자 입장에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국내에서 시승만 할 때보다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 해외시승 기사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차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서스펜션을 만든 엔지니어, 실내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아태 지역 마케팅 총괄 담당자들과의 인터 뷰 기사는 줄어들 확률이 높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터 트렌드> 미국 본지 기사를 활용하거나, 번거롭겠지만 서면 인터뷰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위 내용은 비약이나 확대가 아니다. 남은 건 언론사들이 새로운 법령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콘텐츠의 질을 유지하느냐다. 특히 김영란법은 자동차 전문지에겐 가혹하리만치 큰 변화를 강요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 합법적인 방법으로 변화의 시류에 동참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게 지금 <모터 트렌드>가 안고 있는 숙제다. 

“법 때문에 못 해먹겠다”며 징징대는 부류도 있다. 그 시간에 어떤 콘텐츠를 생산하고 가공할지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법은 이미 제정됐고 곧 시행된다. 그럼에도 푸념만 늘어놓고 있는 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독자 또는 소비자들은 이렇게 변화와 발전의 의지가 없이 푸념만 늘어놓는 조직이나 인물에게 가혹해야 한다. 어차피 언론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독자니까. 만약 <모터 트렌드>가 그러하다면 과감히 등을 돌려도 좋다. 

언론은 지식을 위해 또는 관심사와 취미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콘텐츠(기사)를 소비하는 독자를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김영란법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해도 언론은 독자들의 콘텐츠 갈증 해소의 창구가 돼야 한다. 만약 언론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의 지식 메마름 화살은 김영란법이 아닌 언론으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