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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정성의 한 그릇

모던 한식 비스트로 주옥의 셰프 신창호의 비상.

2016.10.20

 

요즘 청담동의 미식 신이 심상치 않다. 최근 내공과 실력을 갖춘 신진 셰프들이 하나둘 청담동에 새 업장을 차리면서 청담동 미식 풍경에 새로운 바람이 이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모던 한식의 다양한 변주다. 그 트렌드의 중심에 모던 한식 비스트로 ‘주옥’이 있다. 4개월 전, 청담동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느 외진 골목의 반지하에 들어선 자그마한 레스토랑.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는 수수한 간판과 소박한 외관을 지닌 이곳이 데뷔와 동시에 화제의 레스토랑이 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모던 한식을 표방하는 음식점이 넘쳐나는 이 시대, 이 도시에서 말이다. 주옥의 수장인 셰프 신창호를 만나고, 궁금증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장에서 영감을 얻어 서둘러 주방에 돌아오면 수십,
수백 번 실험을 거듭한 끝에 겨우 메뉴 하나가 탄생한다.

당신이 주옥에서 마주할 단 하나의 접시는 신창호의 손이 마르고 닳도록 고민한 과정의 산물이다.”

 

 

 

1 과한 인테리어 없이 편안한 분위기의 내부.

2 신창호가 특별히 아끼는 주방 도구들.

3 식전에 서빙되는 세 가지 맛의 식초.

 

경계 위에서 노는 한식
셰프 신창호의 이력은 꽤 재미있다. 그의 요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건 한식이 아닌 프렌치다. 게다가 한식은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그런 그가 모던 한식당을 연 뒤 이제껏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답은 주옥을 오픈하기 직전 몸담은 레스토랑에 있었다. “주옥의 콘셉트와 요리를 떠올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노부 마이애미예요. 분명 일식인데 일식에 갇혀 있지 않은 느낌이었거든요. 가령 회에 간장을 찍어 먹는 정통 일식에서 뜨거운 기름이나 참기름, 올리브 오일을 뿌리는 식으로 변형을 주는 거예요. 마요네즈나 크림소스를 곁들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시도하니까 일식이지만 일본인은 새로워하고, 외국인은 오히려 친숙해하더라고요.”


노부 마이애미에 몸담았던 1년 반 동안 신창호가 창조한 요리는 수없이 많다. 매주 주방에서 열린 일종의 경합 때문이었다. “당시 노부 마이애미는 이탈리아, 그리스, 한국 등 요리사들의 출신 국적이 다양했는데, 모두에게 ‘노부의 요리에 각자 나라의 정체성을 입히라’는 특명이 주어졌어요. 1주일에 한 가지씩 각자가 만들어온 요리를 함께 먹어보고 그중 가장 훌륭한 요리를 토대로 이 주의 코스를 만들었죠.” 경합에서 기지를 발휘한 신창호의 요리는 수시로 이 주의 코스에 올랐다. 된장찌개를 콩소메로 만들어 생선이나 어묵을 넣기도 하고, 불고기 양념으로 재운 고기로 가라아게를 만드는 등 발칙한 시도를 거듭했다. 정통 한식과는 한발 떨어져, 감각과 기억에 의존한 한식적 터치가 오히려 기발한 결과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주옥을 한식 비스트로가 아닌 한식 요소가 들어간 아시안 프렌치로 만들려고 했어요. 호주의 ‘테츠야’라는 일식 프렌치 셰프가 롤모델이었죠. 테츠야는 프렌치를 일식처럼 간결하고 모던하게 표현할 줄 아는 셰프예요. 최신 조리 기법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고요.” 결국 세상 밖으로 나온 주옥은 신창호가 머릿속에서 처음 구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메뉴를 살펴보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바가 얼추 짐작이 된다. 버터로 볶은 리소토 위에 얹은 갈비찜, 룰라드 방식(육류, 가금류 등을 둥글게 말아 조리한 것)으로 소를 채운 뒤 고추장 소스를 발라 숯불에 굽는 닭갈비, 삼천포 건어물 소스로 맛을 낸 파스타 같은 요리에서 생경함과 익숙함의 경계를 적절히 넘나들 줄 아는 치밀함이 엿보인다. 익숙하지만 뻔하지 않고, 새롭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그 균형을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새 한식의 세계화라는 말들 많이 하잖아요. 한식을 세계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떡볶이처럼 외국인에게 생소한 음식을 있는 그대로 들이밀기보다는 익숙한 조리법 등을 가미해 좀 더 친숙한 방식으로 다가가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1 제주도에서 공수한 생고등어를 이용해 만든 신선한 초회.

2 사소한 부분까지도 완성도를 고집하는 셰프.

 

정성이란 이름으로
주옥에서 처음으로 손님을 맞는 것은 왼쪽 벽면에 가지런히 정렬된 식초병들이다. 요리를 주문하자마자 테이블 위에 놓이는 것 역시 식초다. 이것이 바로 주옥의 시그너처인 수제 식초다. “식초를 직접 만들고 서빙하기로 한 이유는 단순해요.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죠.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요리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식초였어요. 평소 동경하던 미국의 ‘바 타르틴(Bar Tartine)’ 레스토랑은 식초부터 모든 양념과 조미료를 만드는 걸로 유명한데, 그곳을 일종의 벤치마킹한 셈이죠(웃음).”


순전히 맛 때문에 시작했지만 식초를 직접 만들고 요리에 활용하면서 누리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판 식초에 비해 뒷맛이 은은해 속이 편하고 소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위 속 세균을 잡아주고 입맛을 돋우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짜릿한 효과 뒤에 숨겨진, 커튼 너머 주방의 노고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발효 과정에서 금세 맛이 변해 수없이 많은 식초를 쏟아버리기 일쑤고, 한여름 무더위에 식초로 몰려드는 초파리와 사투를 벌이는 고생담을 손님들은 알 리 없다. 그러나 여전히 식초 양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셰프의 정성을 고스란히 식탁에 담아내기 위해서다. 시간과 정성의 집약체인 수제 식초의 맛은 주옥의 거의 모든 메뉴에서 맛볼 수 있다. “한식은 발효의 과학이라고 하잖아요. 나물무침의 새콤하고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하는 ‘킥’도 바로 식초고요. 주옥의 대표 메뉴인 나물과 해산물의 조합에는 반드시 직접 만든 식초를 넣고 무쳐요. 간장, 된장, 고추장류를 드레싱처럼 만들어서 거기다 초를 섞는 식이죠.”


셰프의 정성은 주옥과는 멀리 떨어진 경남 진주에도 자리하고 있다. 처외갓집에 오직 주옥만을 위한 텃밭을 꾸며놓은 것이다. 직접 키운 들깨와 참깨를 짜서 만든 기름은 시판 기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한 맛과 향을 내고, 메인 코스의 퓌레로 들어가는 호박이나 고구마도 비록 간 형태로 접시에 낼지라도 가장 신선하고 품질 좋은 것으로 고집해 가져온다. 이 텃밭에서 난 싱싱한 두릅으로 만든 오픈 첫달의 스페셜 코스는 지금의 주옥을 있게 한 일등 공신. 진주의 텃밭에서 정성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제철 재료는 한껏 물이 오른 상태로 셰프에게 전해지고, 셰프는 그것을 가장 맛있는 요리로 치환해낸다.

 

 

 

1 반지하 공간이지만 입구가 밖으로 나 있어 햇빛이 잘 든다.

2 주옥의 수제 식초를 보관하는 식초방.

 

요리밖에 모르는 요리사
신창호의 일상 대부분은 요리와 관련된 것으로 채워진다. ‘좋은 재료를 공수하지 않으면 과감히 메뉴를 제한다’는 철칙을 엄격히 지키는 그이기에 아무리 바빠도 직접 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레스토랑 근처의 프리미엄 푸드 마켓은 매일 드나들고, 대형 마트도 자주 찾는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곳은 시장이다. “시장에 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새벽 4시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아침 8시에는 가락시장, 점심 영업을 마치면 경동시장으로 향할 시간이죠. 지역 특산물로 가득한 재래시장의 속살을 보기 위해 지방에도 가고요. 시장을 속속 들여다보면 주방에서 팬만 잡고 있을 때는 절대 떠오르지 않을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솟아올라요. 처음 보는 재료는 일단 사고 봐요. 상인들에게 ‘이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요리해 먹어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가르쳐주시거든요. 그래도 정 모르는 건 볶아보고 데쳐보고 여러 가지로 시도해봐요. 그렇게 하다 보면 그중 한두 가지는 분명 성공작이 나와요.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 만들어야 해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순식간에 과일이나 나물 종류가 바뀌는 경동시장은 신창호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미리 짜둔 루트로 가게를 돌며 장을 보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프라이팬과 칼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시장에서 영감을 얻어 서둘러 주방에 돌아오면 수십, 수백 번 실험을 거듭한 끝에 겨우 메뉴 하나가 탄생한다. 당신이 주옥에서 마주할 단 하나의 접시는 신창호의 손이 마르고 닳도록 고민한 과정의 산물이다. 수십 통의 실패작을 쏟아버리고 난 뒤에야 겨우 거둬낸 단 한 모금의 식초처럼 말이다.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김잔듸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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