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ER 조두현
GARAGE CONCEPT 거실
꿈에 그리던 드림카를 그냥 차고에 처박아둘 수는 없다. 늘 곁에 두고 만져도 성에 차지 않을 드림카 아닌가. 그래서 이 멋진 석 대의 차를 거실로 옮겨왔다. 차가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DREAM CARS 베스파 946 엠포리오 아르마니, 포르쉐 박스터 S,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4

고교 시절 친구들은 영화 <비트>에서 혼다 CBR 600F를 두 팔 벌려 타는 정우성에 반해 있었다. 하지만 난 우연히 보게 된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타고 로마를 누빈 베스파에 홀려 있었다. 영화에서 베스파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패션에 가까웠다. 말벌처럼 동그랗게 튀어나온 엉덩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빨리 대학생이 돼서 여자친구와 함께 베스파를 타고 캠퍼스를 누비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산 50cc 스쿠터 비너스를 혼자 타고 다녔다. 그래도 난 아직 베스파를 꿈꾼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베스파 매장을 지날 때마다 쉽사리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한다. 모든 베스파가 아름답지만 특히 946은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으뜸이다. 946은 1946년 베스파가 최초로 출시한 양산형 모델 MP6를 오마주한 모델로 베스파의 종손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지난해 사건이 일어났다.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블랙 슈트를 입은 946이 나온 것이다. 안장과 스로틀은 갈색 가죽으로 감쌌고 차체 곳곳에 아르마니 로고가 박혀 있다. 뒷자리에 얹는 가죽 가방 그리고 리넨 안장과 전용 헬멧 같은 액세서리는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더해주었다. 국내에는 지난해 딱 두 대만 들어왔고 가격은 1946만원으로 사치스럽지만 이미 다 팔렸다. 난 여전히 이 스쿠터를 가슴속 차고 한쪽에 담아두고 있다. 

또 다른 꿈은 포르쉐다. 포르쉐는 한동안 내 컴퓨터와 스마트폰 바탕화면의 단골 모델이었다. 어릴 땐 단순히 디자인 때문에 동경의 대상으로 품었지만 여러 포르쉐 모델을 접해본 지금은 좀 더 진지하다. 나 역시 포르쉐가 뿜어내는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다. 포르쉐에는 누구나 드림카로 삼을 만한 훌륭한 모델이 많지만 내겐 718 박스터 S가 가장 적당하고 충분하다.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버리고 4기통 터보 엔진을 달았지만 최고출력 350마력, 최대토크 42.9kg·m의 힘을 발휘한다. 향상된 전자제어장치와 섀시는 누구나 쉽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도록 새롭게 고안됐다. 911 카레라 S에 있던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도 가져왔다. 무엇보다 갖고 싶은 건 지붕을 열고 바람을 거스르며 달리는 반항심이다.

꿈의 반대는 현실이다. 가끔 현실에 지칠 때면 도시를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4는 현실 도피용으로 제격이다. 이름에서부터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내게 디스커버리 4가 매력적인 건 정통 SUV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각진 디자인과 넓고 고급스러운 실내 공간 그리고 위아래로 분리돼 걸터앉을 수 있는 테일게이트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주행성능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디스커버리를 갖게 된다면 이 차를 강을 건너거나 바위를 오르는 데 사용하지 않을 테다. 어쩔 수 없이 험로를 건너야 할 때 이따금 실력 발휘하는 정도랄까? 오프로드 용도라면 차라리 지프 랭글러 루비콘을 선택할 것이다. 디스커버리 4는 가족과 함께 꿈을 키우기에도 낭만적이다. 가끔 도로에서 디스커버리 4 뒤에 캐러밴을 매달고 어디론가 향하는 가족을 보면 저들은 과연 어떤 삶을 꿈꾸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해주는 디스커버리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