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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TREND_Stars&People

꿈을 좇는 사람들

자동차와 관련 분야에서 꿈을 좇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2016.10.12

 

“꿈을 아직 못 찾았다면 멀리서 구하지 말고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찾으세요. 분명 길이 보일 겁니다.”

 

망치나 연필을 들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박종서(포마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 관장)

 

많은 사람들이 박종서 관장을 보고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디자인 연구소를 이끌며 부사장을 지냈고 퇴임 후엔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그리고 지금은 ‘포마(Forms of motors and arts)’라는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글쎄요, 이 미술관은 꿈이라기보다 계속 무언가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결과물입니다. 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어렸을 땐 한국에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기업에선 디자인과를 의장과라고 불렀다. 국내에 산업디자인의 개념이 생긴 건 1970년대 초다. 미술대학 재학 시절 헌책방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잡지를 보고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 ‘프레젠테이션’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엔 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였어요.” 졸업 후 전자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우연히 기회가 닿아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때 선진화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자동차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자동차 디자인은 꿈이라기보다 주어진 운명과도 같았다.

 

사실 그에겐 연주자라는 숨겨진 꿈이 하나 있었다. 내면의 감성은 음악으로도 잘 나타났다. 트럼펫이나 하모니카, 색소폰 같은 주로 입으로 부는 악기를 정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좀처럼 악기와 인연이 이어지질 않았다. 코넷을 배우려던 때 뇌종양이 찾아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악기를 더 이상 불 수 없어 연주자의 꿈을 접고 말았다. 

 

“꿈을 이뤘다는 건 마음에 평정이 생겼다는 겁니다. 난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리고 있을 때, 손에 망치나 연필을 들고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은 카멜레온의 뼈대와 상어의 아가미 구조를 작품으로 만드는 중입니다.” 그는 환경이 너무 풍족하면 꿈을 꿀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결핍과 갈구는 꿈을 이루는 데 큰 추진력이 된다고 믿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꿈을 아직 못 찾았다면 멀리서 구하지 말고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찾으세요. 분명 길이 보일 겁니다.” 그가 꿈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하세요. 그리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 꿈은 프리우스 PHV로 사하라사막을 종단하는 것 

요코타 기이치로(환경평론가) 

 

요코타 기이치로 씨를 처음 본 건 2014년 부산에서다. 토요타 프리우스로 세계를 누빈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목적지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는 부산모터쇼 토요타 부스에서 그동안 프리우스로 다닌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프리우스를 자랑했다. 꼭 프리우스 홍보대사 같았다.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입니다.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릴 수 있죠. 그러면서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오염 물질도 덜 배출합니다. 전기차는 물론 오염 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기가 없는 사막에서는 달릴 수 없습니다. 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세계 일주의 동반자로 택했느냐고요? 연료 인프라가 열악한 곳에서도 달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 아주 작은 사건이 큰일을 결정하는 불씨가 될 때가 있다. 요코타 기이치로 씨에겐 1999년의 그 일이 바로 그랬다. “LA에서 뉴욕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하던 중에 나사에서 우주 비행사로 있던 와카타 고이치 씨를 만났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주에서 보는 지구가 정말 아름답다고요. 그런데 앞으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의 말에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보며 환경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리우스로 세계를 도는 ‘에코 미션’을 계획하게 됐죠.”

 

요코타 기이치로 씨가 처음부터 환경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최초로 참가한 일본인 레이서다. 그런데 어떻게 환경운동가를 넘어 환경평론가가 됐을까? “파리에서 케이프타운과 사하라사막을 종단하는 랠리에 참가했습니다. 마지막 레이스로 케이프타운의 해안선을 달렸죠. 그런데 도중에 ‘그린피스’라는 환경단체에 진로가 막혔습니다. 자동차가 그 해안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짓밟지 못하도록 도로를 막은 거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요. 그러면서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됐죠.”

 

요코타 기이치로 씨의 에코 미션은 2014년 막을 내렸다. 15년 동안 그는 북미 대륙을 비롯해 5대륙, 10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수소자동차 미라이로 규슈에서 도쿄까지 횡단한 거다. 요즘은 하천 상류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강의 상류를 깨끗이 하면 고래도 자랄 수 있다고 말한 한 환경학자의 말이 가슴에 남아서다.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요? 프리우스 PHV로 사하라사막을 종단하는 것입니다. PHV의 전원으로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먹고 싶습니다.” 프리우스 PHV는 엉덩이에 충전 단자가 있어 가정용 전기로 충전할 수 있다. 차에 충전된 전기를 뽑아 쓸 수도 있다.

 

“꿈은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일으키는 에너지가 바로 꿈입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하세요. 그리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험은 전진하고 있다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게 두려웠습니다. 평생 꿈을 꾸고, 꿈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작품이든 자동차든 계속 만드는 게 꿈이죠

김진우(키네틱 아티스트)

 

그의 꿈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비행기, 배, 탱크 같은 것들에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파일럿인 삼촌은 그의 눈에 너무 멋져 보였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를 꿈꿨다. 그러다 고3 때 미술로 진로를 바꿨다. “한 일주일 동안 고민했던 것 같아요.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게 두려웠습니다. 평생 꿈을 꾸고, 꿈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뒤늦게 입시 미술을 시작해 친구들보다 몇 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됐다. 남들보다 입시 그림을 적게 그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진우 작가는 자신의 꿈을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신인류를 표현한 ‘플라잉 맨’ 시리즈는 곧 20번째 시리즈를 맞는다. 최근엔 이 꿈을 어린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버스를 개조해 이동형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 공간에서 조그만 자동차나 로봇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보려고요. 교육하는 곳이라기보다 함께 꿈꾸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나의 모습이나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얻어 꿈을 꾸며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는 기계의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관심이 깊다. 스스로 연구하고 찾아낸 기계의 움직임을 작품 속으로 가져온다. 차를 분해해 본인만의 스타일로 다시 만들기도 한다. 구형 코란도의 프레임을 가지고 2년 동안 공들여 만든 차 ‘선데이’ 말고도 곧 주행거리 60만 킬로미터를 앞둔 1994년형 무쏘, 구형 지프까지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차만 일곱 대다. “꿈이요? 그냥 이렇게 뚝딱거리면서 작품이든 자동차든 계속 무언가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만입니다. 어떻게 보면 꿈을 이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만들고 싶은 게 많아 아직 못 이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얼마 전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 구글X의 창업자 세바스찬 스런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 연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은 “아직 우리는 세상의 1퍼센트밖에 개발하지 못했다”이다. 김진우 작가의 꿈도 아직 1퍼센트밖에 이루지 못한 듯 보였다.

 

 

 

“차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 말이에요.”

 

꿈? 좋은 프로듀서가 되는 것?

서승한(방송 프로듀서)

 

TV를 너무 좋아했던 걸까? 꼭 프로듀서가 아니어도 됐다. 그저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처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결국 CJ E&M에 입사해 프로듀서가 됐고 그렇게 한 단계 꿈을 이뤘다. 그러다 우연히 <탑기어 코리아> 연출을 맡았다. 자동차를 워낙 좋아했고 영상미에 있어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그에겐 제격인 프로그램이었다. 7년 동안 여섯 개의 시즌을 만들었고 <더 벙커> 같은 다른 각도의 자동차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하지만 어느 한구석이 깔끔하게 해갈되지 않았다. 시청자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렇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차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 말이에요.” 

 

그는 최근 SBS로 둥지를 옮겨 새로운 자동차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색다른 자동차 이야기다. 과연 <탑기어 코리아>에서 못다 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해봐야 알겠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또 다른 시작이라기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제 인생의 마지막 자동차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며 만들고 있어요.” 

 

그는 방송 프로듀서라는 꿈은 이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좋은 프로듀서여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탑기어 코리아>가 주목을 받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땐 경쟁할 만한 자동차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기에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동차 프로그램에서만큼은 독보적인 프로듀서를 꿈꾼다. 그의 전략은 ‘다름’이다. 그리고 늘 어떻게 다르게 만들까를 고민한다. “더 잘 만들어서 이기는 것보다 아예 다르게 만드는 게 스트레스도 덜하고 쉬워요. 그러다 보면 좋은 프로듀서가 될 거라 믿습니다.” 그에겐 장기적으로 또 다른 꿈이 있다. 맛있는 돈가스집을 내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돈가스를 워낙 좋아해서요.” 

먼 훗날 그가 만들어 식탁에 올린 돈가스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 1학년입니다. 어쩌면 제 꿈의 시작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겠어요 

이동호(대학생)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요.”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사실 마냥 꿈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슬로바키아의 벤처기업 에어로모빌과 미국의 테라푸기아는 하늘과 도로를 오가는 차를 만들어 시제품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양산된 모델은 아직 없다. 이동호 학생은 영화 <제5원소>에 나오는 차처럼 언제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차를 꿈꾼다. “어릴 적 꿈은 레이서였는데 위험 부담과 막대한 비용 때문에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꿈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꿈은 이미 10대 때부터 현실화 중이다. 로봇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로봇 제어를 공부하면서 무인항공기 분야를 계속 팠다. 다양한 스타일의 드론과 글라이더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무인항공기 대회에 나가 대학생 팀을 제치고 우승까지 했다. 세종대학교 기계항공우주공학부에 진학했지만 자동차를 좀 더 공부하고 싶어 제대 후 아주자동차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지금 1학년입니다. 어쩌면 제 꿈의 시작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릅니다. 자동차의 기초를 닦은 다음 유학을 가 항공 자동차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할 생각입니다.”

 

그는 인류가 있는 한 자동차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동차로 하늘을 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기술이 아닌 사회에 있다. 3차원 이동을 제어할 수 있는 관련 법안과 사회적 제도가 우선이다. 시내 곳곳에 별도의 이착륙 장소와 작은 관제탑도 필요하다. 면허 발급 기관과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이미 원천 기술은 있습니다. 문제는 양산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일상으로 가져오지 못한다면 원천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죠.” 그의 몸은 꽤 달아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이번 학기 학점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프로 랠리 선수로 가치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이 도전이 우리나라에 모터스포츠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죠.”

 

눈앞에 닥친 기록 경신이 가장 중요해요

임채원(레이서)

 

세계적인 랠리스트가 되고픈 그의 꿈은 날마다 한 뼘씩 자라고 있다. 임채원 선수는 지난해 SBS에서 방영한 랠리 드라이버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더 랠리스트>에서 우승했다. 지금은 현대 모터스포츠의 후원을 받으며 유럽에서 맹훈련 중이다. 그의 꿈은 일단 교육을 잘 마치고 실제 랠리 경주에 출전하는 것이다. “프로 랠리 선수로 가치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이 도전이 우리나라에 모터스포츠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죠. 국내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그는 어릴 때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가 거셌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다 모터스포츠에 빠져들어 레이서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선수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몇 배 이상의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일본 슈퍼 포뮬러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한국인 최초로 2013년 유러피언 F3 9라운드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컸습니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모터스포츠를 내려놓아야 했죠.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모터스포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을 향한 마지막 티켓이었다.

 

10년 동안 서킷을 달렸지만 랠리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 적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처음 접해본 페이스 노트(코스를 답사하며 기록한 노트)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늦깎이 랠리스트인 만큼 부족한 체력과 기술을 보완하는 것에도 여념이 없다. 먼 미래보다 당장의 기록 경신이 날마다의 꿈이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그렇다고 바이크를 놓을 생각은 없어요. 바이크는 늙어서까지 탈 거예요. 단, 제 방식으로요.”

 

바이크를 계속 타고 싶어요

박송이(KTM 정비사)

 

“어릴 때 엄마가 스쿠터를 타셨어요. 저를 종종 뒤에 태워주셨는데 그때마다 정말 좋았어요. 바람이 막 얼굴을 스치는 게 좋았어요. 그러면서 바이크를 좋아하게 됐어요.” 박송이 씨는 지금 KTM에 근무한다. 스쿠터 꽁무니에 타는 걸 좋아하던 꼬마 아이는 10년 후 스쿠터가 아닌 오프로드 바이크의 핸들을 잡았다. 공구를 손에 쥐고 정비까지 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엄마 스쿠터를 몰래 타기 시작했어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바이크 동호회에 가입해 사람들도 만나고, 바이크도 탔어요. 바이크를 타면 온몸으로 속도가 느껴지는 게 정말 짜릿해요. ‘내가 이만큼 탈 수 있게 됐구나’ 하는 뿌듯함도 생기고요. 더 큰 배기량의 바이크를 타고 싶은 욕심도 생겼어요. 그래서 오프로드 바이크 동호회에도 가입했어요.”

 

박송이 씨는 틈만 나면 동호회 모임에 나갔다. 바이크로 산길을 달리는 모습을 볼 때면 그냥 ‘멋지다’가 아니라 ‘나도 저렇게 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라이더들은 산에서 바이크를 타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공구를 집어 들고 직접 고쳤다. 무거운 바이크를 산 아래까지 끌고 내려가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서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려면 정비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크는 공인된 정비 자격증이 없어요. 그래서 자동차 직업학교 정비과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정비 관련 자격증을 땄죠. 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볼 수 없었죠.”

 

겨우 오프로드 동호회에서 연결해준 바이크 가게에서 일하게 됐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어머니는 딸이 바이크를 타는 게 싫었다. 자꾸 다치는 게 마음이 아팠다. ‘기름밥’ 먹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 딸처럼 얌전히 회사에 다니길 바랐다. 박송이 씨는 결국 바이크 가게를 그만뒀다. 그 후로 밥도 잘 먹지 않고 방에만 박혀 지냈다. 어머니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그런데 KTM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는 “또 오토바이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딸을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박송이 씨는 2012년 KTM에 입사했다.

 

“정비도 하고 지난해엔 대회에도 나갔어요. 전 아직도 바이크를 만지고 타는 게 좋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때가 많아요. 제가 맞는 말을 해도 남자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대놓고 말씀하는 손님도 많고요. 처음엔 너무 속상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싶어요. 석 달 전부터 리셉션으로 업무를 바꿨어요. 그렇다고 바이크를 놓을 생각은 없어요. 바이크는 늙어서까지 탈 거예요. 단, 제 방식으로요. 꿈이 하나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전 지금까지 제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은 잠시 쉬어 가는 중이고요. 언젠가 멋진 모습으로 오프로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꿈이에요. 지난해 대회에선 거의 마지막에 넘어지는 바람에 기록이 아예 없어졌거든요.” 

 

 

 

“자동차를 좇아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솔직히 막상 졸업하고 무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취업 나간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이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더라고요.”

 

아직 꿈을 찾는 중이에요

김영웅(고등학생)

 

꿈이 꼭 특정한 직업일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있고 도전 자체가 숭고할 때도 있다. 경기자동차과학고에 다니는 김영웅 학생이 딱 그렇다. 국·영·수보다 자동차가 좋아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진로를 선택했다. “자동차도 공부해야 하는 분야가 많습니다. 국·영·수 못지않아요. 차이가 있다면 이건 정말 재미를 느끼며 능동적으로 공부한다는 겁니다. 어렵지만 재밌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항상 궁금했다. 동력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중에 조금 커서 엔진과 드라이브 트레인의 원리를 알았을 때 느꼈던 희열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자동차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1학년 때 순수하게 정비사를 꿈꿨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고민이 생겼다.

 

“자동차를 좇아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솔직히 막상 졸업하고 무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취업 나간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이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더라고요. 원래 꿈대로 정비사를 하면서 현실을 버텨야 할지 아니면 대학에 갈지, 그도 아니면 아예 다른 분야를 개척해야 할지 한발 떨어져서 넓게 보려고 합니다.” 김영웅 학생은 요즘 어릴 적 꿈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언젠가는 현실에 맞춰야 한다는 걸 예측하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정비사, 기술자, 개발자 등 경계가 모호한 수많은 단어가 마음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중이다. 그렇게 자신을 정제하며 꿈을 찾는 중이다.

 

당장은 수학여행이 꿈이다. 학생회장이기도 한 그는 올해가 가기 전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학교를 설득 중이다. 학교는 안전상의 이유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학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다. “저희는 특성화 고등학교라 졸업 후 대부분 대학교보다 취업을 선택합니다. 그러니 올해가 어쩌면 학창 시절의 마지막일지 몰라요. 공부와 취업도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나누는 것도 제 꿈입니다.” 

 

 

 

“처음 클래식카를 수집할 땐 100대만 모아보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마약 같더라고. 맘에 드는 차가 있으면 사지 않곤 못 배기는 거야.”

 

자동차 박물관을 열고 싶은 게 꿈이지

백중길(금호 클래식카 대표)

 

“이 나이에 꿈이랄 게 뭐 있겠어? 자동차 박물관을 열고 싶은 게 꿈이라면 꿈이지.” 금호 클래식카의 백중길 대표는 40여 년 동안 애지중지 모은 자신의 클래식카가 번듯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서 있기를 꿈꾼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금호 클래식카에는 수십 대의 클래식카가 공터에 그냥 서 있다. 1960년대 서울을 누비던 다양한 종류의 버스부터 택시, 승용차, 트럭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스튜디오라고 써 붙인 널찍한 건물 안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클래식카가 수십 대 있다. 이런 스튜디오가 여기에만 두 개다. “어릴 때 아버지가 운수업을 했어. 택시를 일곱 대 사서 영락택시라는 운수회사를 차렸지. 그래서 늘 차를 보며 자랐어요.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도 돌려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차를 좋아하게 됐지.”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 말 부품업을 새로 시작했다. 그도 아버지를 도와 부품업을 하게 됐다. 차를 모으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말부터다. 자신이 젊은 시절 타던 차가 하나둘 없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시발택시가 없어지더니 곧 새나라도 없어지더라고. 저렇게 그냥 사라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 누구라도 한 대쯤 보존해야 한다는. 어차피 없어지는 차라 비싸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둘 차를 모으다 보니 공간이 부족하더라고. 그래서 텃밭이 있는 집을 사서 텃밭에 차를 세워두곤 했는데 그게 또 법에 걸리는 거야. 왜 채소를 심지 않고 차를 세워두느냐고. 그래서 벌금도 한 두어 번 냈지. 차를 모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차를 세워둘 공간을 마련하는 게 가장 어렵지. 50~60대 되니까 벌어서 주차비 내기에 바빴어.”

 

서울에 차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지자 백중길 대표는 점점 서울 외곽으로 터를 옮겼다. 여주에 오게 된 건 2013년이다. 그런데 이곳 말고도 덕소에 100여 대의 클래식카가 더 있다고 한다. “처음 클래식카를 수집할 땐 100대만 모아보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마약 같더라고. 맘에 드는 차가 있으면 사지 않곤 못 배기는 거야. 부산에 일주일 동안 매일 내려가 사정한 적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1년 동안 찾아간 적도 있어. 원래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성격이 못 되는데 그건 또 되더라고.” 포기하고 싶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1990년대 경기도 고양시에 500평 남짓 땅을 사서 클래식카 60여 대를 모아놨는데 수해로 3일 동안 차들이 물에 잠겨버렸다. 석 달 동안 차를 닦고 살려보려 했지만 워낙 오래된 차라 복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 차들은 모두 폐차했다. “차는 움직일 수 있어야 가치가 있는데 아무리 해도 움직이질 않더라고. 그래서 결국 폐차했지. 그만하자 했어요. 너무 속상하더라고. 다 잃은 것 같고. 근데 또 클래식카가 어디에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달려가더라고 내가. 그냥 좋은 거지.” 클래식카는 그에게 자식 같은 존재다. 그러니 포기할 수가 없다. 백중길 대표의 클래식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걸 상상해본다. 괜히 뿌듯하다. 그날이 꼭 왔으면. 

 

CREDIT

EDITOR / 서인수, 조두현 / PHOTO / 정택 /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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