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90의 최상위 모델인 T8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2.0리터 엔진에 터보와 슈퍼차저를 붙이고 뒷바퀴는 전기모터로 돌린다. 합산 출력이 무려 400마력이다.

“볼보는 럭셔리 카메이커가 아니야.” 만약 볼보를 최고의 럭셔리 메이커로 만들고자 했던 페르 질레하마르(1970~1994년 볼보 CEO)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바이킹 후예의 핵주먹을 먼저 날렸을까? 한때 최고의 PR 매니저였던 그는 온화한 미소로 볼보 제품의 견고함과 안정성 그리고 편안함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했을 것이다. 물론 그 미소 뒤로는 바이킹 도끼를 갈고 있었겠지만. 실제로 그는 볼보를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도끼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프랑스 르노와의 합병. 질레하마르는 3년간 르노와의 합병을 꾸준히 추진했다. 볼보가 럭셔리 메이커로 가는 과정에서 스케일이 중요하다 판단한 것. 하지만 그는 합병에 반대해온 대주주들에게 축출됐다. 이후 스웨덴과 프랑스의 여러 경제 전문가들은 두 자동차 메이커의 합병이 기업의 미래와 국가경제적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볼보는 중형 이하 세단과 왜건이 전부였으니 대형 뒷바퀴 굴림 세단을 가진 독일 브랜드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22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볼보는 이제 대형 SUV도 있고 그것과 섀시를 공유하는 대형 세단 S90도 출시했다.

질레하마르가 볼보의 새로운 기함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지, 기쁜 마음으로 스웨덴 고텐버그로 화환을 보낼지 알 수 없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싱싱한 꽃을 뿌리며 볼보의 새로운 세단을 맞이할 것이다. 이 차는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 렉서스의 좋은 대안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스웨덴 말라가의 눈부신 햇살을 뒤집어쓴 볼보는 의연하고 음전해 보였다. 요즘 차들은 차체에 라인을 많이 넣으면서 음영을 더욱 또렷이 하거나, 곡선과 곡면을 부각해 시각적 자극을 유도한다. 차체가 눈에 잘 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자극적인 방식으로 시선을 동냥질하는 건 왠지 처연해 보이고 쉽게 질린다. 반면 S90은 라인이 많지않다. 곡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라인이 정갈하고 차분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멋을 낸다. 라인을 줄이는 대신 윈도 라인과 도어 하단 등 적절한 곳에 크롬으로 포인트를 주면서 세련미를 더했다.

비율도 안정적이다. 예전 S80과 비교하자면 앞 액슬이 18센티미터 정도 앞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앞 오버행을 줄였다. 그리고 A필러를 약간 뒤로 빼면서 보닛을 아주 길게 만들었다. 볼보의 디자인 수장 토마스 잉엔라스는 “이런 비율이 S90을 우아한 클래식 뒷바퀴굴림 세단처럼 보이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 커 보인다.

실제로도 크다. 2017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보다 길고 넓다. 반면 높이는 낮다. 그리고 2941밀리미터나 되는 휠베이스와 앞바퀴굴림 플랫폼은 넓은 실내공간을 제공한다. 실내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정갈하다. 그리고 독일차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성도 있다. 우선 플라스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실내를 덮고 있는 나무 패널들은 단차가 하나도 없이 일매지다. 나무 사용량이 많아 무겁고 중후한 느낌이 과해지는 걸 조율하기 위해 무광 크롬과 알루미늄 등 반짝이는 소재로 밸런스를 맞췄다. 더불어 디지털 계기반과 세로 형태의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이 차가 최첨단 기능을 듬뿍 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이 차는 운전도 해주고 유사시 스스로 차를 세운다. 클래식과 최첨단 그리고 스웨덴 특유의 질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엔진은 시동을 걸어도 조용하다. 진동도 없다. 살짝 액셀러레이 터를 밟아도 나붓나붓하다. 2.0리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엔진이니 ‘으르렁’은 언감생심. 하지만 요즘은 작은 엔진이라고 출력도 낮으리란 법없다. 슈퍼차저와 터보차저를 함께 쓰면서 최고출력이 320마력이나 된다. 하지만 출력을 우르르 쏟아내지는 않는다. 40.7kg·m의 토크를 2200~5400rpm에서 꾸준하게 밀어준다. 엔진도 액셀러레이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른발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세단의 절대적인 덕목인 운전자와 탑승자의 편안함에 맞는 세팅이다. 그렇다고 S90 T6가 굼뜨다는 건 아니다. 이 차는 터빈에 배기가스가 차는 시간에 슈퍼차저를 돌려주니 답답한 지체가없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이 5.9초이니 느리지 않고 최고속도도 시속 250킬로미터에서 제한되니 힘도 넉넉하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S90과 V90은 차체 안팎의 라인들이 아주 심플하다. 라인도 많지 않다. 대신 소재와 질감으로 럭셔리를 표현했다.

부드러운 엔진 성향에 맞게 승차감도 좋다. 차급에 맞는 승차감이다. 앞 더블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잘 어루만 진다. 타이어가 구르는 질감이 야들야들하다. 20인치나 되는 타이어가 소음도 충격도 없이 구른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이 차는 롤, 리바운드 등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는다. 코너를 돌 때는 약간의 롤이 있고 과속방지턱을 넘으면 뒤가 한 번 더 오르내리며 충격량을 줄인다. 차체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단단해지면서 롤과 리바운드를 서스펜션으로 받아내는 게 독일 세단의 서스펜션이라면, S90은 롤과 리바운드가 생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느낌이다. 탱탱한 승차감은 코너를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돌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S90은 그런 게 없다. 부드러운 시트에 몸을 축 늘어뜨리면 그만이다. 물론 롤 때문에 코너를 빨리 돌 수 없다. 그런데 언더스티어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이 차의 크기와 굴림 방식을 생각하면 꽤놀랍다. 이런 큰 세단을 타면서 브레이킹 없이 코너링을 하는 오너가 있을까? 차급과 이 차를 타는 소비층을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승차감 조율이다.

핸들링은 정확하지만 명민하게 반응하진 않는다. 노면 저항도 운전대로 잘 전달되지 않으니 운전이 무료한 느낌도 든다. 노면과 단절된 느낌까지는 아니어도 정보가 풍부하지 않으니 운전에 심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달리다 보니 몸이 훨씬 편하고 생각도 덜 하게 된다. ‘왜 난 이렇게 좋은 세단을 타면서 노면과 치열하게 싸우려 했을까?’ 말라가 해안길을 달릴 때 이 차는 내게 그 어떤 느낌이나 신경을 요구하지 않았고 날 자극하지도 않았다. 차를 느끼고 그 느낌에 반응하 도록 종용하지 않으니 이동 중 차에 대한 기억보다 말라가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 3미터에 가까운 휠베이스를 지녔으니 뒷자리가 좁을 리 없다. 몸의 굴곡에 맞춰 시트가 착 감기는 느낌이 들정도로 편하다.

볼보 S90이 경쟁해야 하는 독일과 영국 세단들은 아무런 튜닝이 없어도 바로 레이싱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하고 짜릿하며 박력있고 절절 들끓는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레이싱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니 그 혈통의 명맥이다. 그런데 볼보의 새로운 기함은 그들과 정반대에 있다. 앞바퀴굴림 기반이고 말랑하며 절제되고 나긋나긋하다. 어쩌면 자극이 너무 없어 심심하고 무료할 수도 있다. 볼보는 외관 디자인부터 실내 구성, 승차감, 핸들링까지 그 무엇도 자극적인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데 세단이란 원래 가장 편하고 안락하며, 인간을 가장 존중해야 하는 차종이다. 디자인으로 인간의 눈을 희롱하고 핸들링으로 탑승자의 심장을 자극하기보다는 이동하는 순간 최고의 휴식과 평온을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볼보는 진짜 세단을 만들면서 경쟁자들과 완벽한 차별화를 이뤘다. 그렇게 S90은 다르되 틀리지 않고 단순하면서 특별한 세단이 됐다. 질레하마르가 만들려던 볼보가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단을 9월 말에 만날 수 있다.

VOLVO THE NEW S90 T6 AWD

기본 가격 5만7245달러(미국)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4기통 2.0ℓ DOHC 슈퍼차저+터보, 320마력, 40.7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860kg 휠베이스 2941mm 길이×너비×높이 4963×1879×1443mm 복합연비 TBA CO₂ 배출량 TBA 국내 출시 9월 말